목포, 맛의 도시에서 치킨에 막걸리

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10

by 선우비


여행 전만 해도 목포는 이번 남도 맛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강진과 해남에서는 현지 게이들에게 맛집을 물었지만, 목포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낙지탕탕이, 홍어삼합, 꽃게, 갈치, 쑥꿀레 등 주전부리까지. 가야 할 맛집 리스트만으로도 2박 3일이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댔다. 오스씨는 배탈이 났고, 날씨는 우리가 서점에서 책을 사자마자 일기예보대로 빗줄기를 쏟아냈다. 보양이라도 할까 싶어서 저녁에 먹은 민어조림은 비싸기만 할 뿐, 인상적인 맛을 남기지 못했다. 목포의 첫날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다.

밤새 비가 폭포처럼 쏟아졌지만, 이튿날 아침은 다행히 거짓말처럼 환하게 개었다. 전국이 극한폭우로 난리였지만, 목포는 오히려 고요했다. 오늘은 제발, 좋은 일이 생기려나?

아침식사는 호텔 근처 <해남해장국>으로 정했다. 온갖 유튜브 맛집 소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집이었다. 과연 사람들이 칭송할만한 요건이 없지 않았다. 뼈해장국은 국물이 맑고 고기가 푸짐했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국물은 맹숭맹숭, 고기는 퍽퍽이었다. 부산 사상에 있는 <최뼈다구해장국>을 먹어본 자의 저주랄까, 그 집을 다녀간 이래로 뼈해장국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져버렸다. <을지면옥>에서 냉면 먹고 난 후 세상 냉면 맛이 다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지는 저주 같은 거랄까.


우리는 목포를 이틀에 나눠 즐기려 했다. 첫날은 <목포근현대역사관>을 비롯한 원도심, 둘째 날은 평화광장과 갓바위. 하지만 배앓이 때문에 계획은 바뀌었다. 결국 향한 곳은 목포해상케이블카. 삶는 더위에 걷는 대신 앉아서 전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유달산을 출발해 바다 위를 건너 고하도로 이어지는 케이블카는 무려 3.23km로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고 적혀있었다. 다행히 폭우 여파 때문인지 관광객이 적어 10인승 케이블카를 단둘이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득!


케이블카가 천천히 고도를 높이자, 곧장 유달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멀리서 보면 그저 완만한 언덕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니 바위와 소나무가 뒤엉켜 만들어낸 풍경이 생각보다 웅장하다. 우리는 케이블카의 창문을 열고는 숲의 푸름을 한껏 끌어들였다.

북항 승강장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유달산 승강장을 거쳐 본격적으로 바다 위에 들어선다. 탁 트인 광활한 바다에서 빛나는 윤슬을 기대했는데, 온통 칙칙한 황톳빛이었다. 장맛비가 몰고 내려온 흙탕물이 바다를 덮은 탓이었다.

종착지인 고하도에 내리자 케이블카 승차 때 찍었던 사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토샵으로 기막히게 보정된 얼굴이 피곤 따윈 모르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25,000원이라는 가격에 잠시 망설였지만,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 여행이라 결국 구입했다. 두 사람 여행자에겐 이런 유혹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고하도에는 최근 완공된 고하도 전망대가 있다. 판옥선을 여러 채 겹쳐놓은 듯한 독특한 건축물로, 바다와 섬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목포의 랜드마크로 꼽힌다. 그러나 초현대적인 모습과 달리, 실제로 오르내리는 길은 고행에 가까웠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5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동안 시원한 공기가 나오는 전시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전망대가 아니라 찜질방 아냐?”
오스씨가 투덜거릴 만했다. 정상에 오를 즈음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1층 카페의 존재만이 유일한 숨구멍처럼 느껴졌다.

나쁜 일은 계속 이어졌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모노레일은 날씨 탓에 운행이 중단됐고, 해안 산책로도 막혀 있었다. 안내원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왕복 2km를 더 걸어 불쾌지수를 만땅으로 충전한 건 덤.

돌아오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을 땐 목포 관광에 대한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겉만 보편 참 멋진데 말이지...


곧장 호텔로 가서 얼리 체크인을 부탁했다. 비용이 들더라도 당장 눕고 싶을 만큼 지쳐 있었다. 다행히 준비된 방이 있어 추가비용 없이 곧장 들어가 쓰러져 잤다.

저녁 무렵 눈을 뜨자마자 놀라 외쳤다.
“앗, 갓바위! 노을!”

갓바위는 해안가 기암괴석이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목포의 대표 이미지다. 석양 무렵 붉게 물드는 바위는 그야말로 장관이라 한다. 우리가 숙소를 이곳에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노을 갓바위, 일출 갓바위의 황홀한 풍경 속에 잠기기 위해서!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달랐다. 바다 위를 걷는 해상보행교 아래로, 폭우에 떠밀려온 부유물들이 가득했고 냄새도 고약했다.

"아, 안 풀리네."

사진만 몇 장 서둘러 찍고 도망치듯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기대는 단 하나, 객실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는 평화광장 음악분수쇼였다. 시내 관광까지 포기하고 비싼 호텔을 잡은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전광판에 떠오른 안내 문구.
“오늘 분수쇼는 바다 사정으로 취소되었습니다.”

허탈하게 웃으며 오스씨와 눈을 마주쳤다.
“이 여행에서 제대로 된 게 뭐 하나 있냐.”
“앞으로 비 많이 오는 여름엔 여행하지 말자.”

속초, 고성, 인제, 양양, 설악산, 광주, 군산, 선유도, 강진, 해남, 진도, 목포까지… 줄줄이 이어왔던 우리의 여름 여행이 이렇게 종지부를 찍는구나.

여름은, 역시 지금 내가 하고 있듯이, 에어컨 나오는 집 안에서 글을 쓰며 보내는 게 제일일지도 모른다.

호텔 냉장고에는 해남에서 산 해창막걸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구매 이후 나흘이 지나도록 열지 못한 그 병은 이 여행이 얼마나 꼬여왔는지 보여주는 작은 증거 같았다. 저걸 그냥 부산으로 들고 돌아가긴 싫었다.
“치킨 시켜서 막걸리랑 먹을래?”
오스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목포의 맛이라던 낙지탕탕이도, 홍어도 끝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닭이 도착하고, 잔에 따라낸 막걸리와 함께 첫 입을 베어 물자 의외의 궁합에 웃음이 터졌다.

세상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며, 결국 남는 건 함께 앉아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이라는 걸 새삼 확인했다. 실패투성이의 여정도,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마무리할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았다.

음악분수쇼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술을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는 중.


목포는 끝내 하이라이트가 되지 못했다.

우당탕탕 시작해 우당탕탕 끝난, 그런 여정이었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여행기를 쓰는 내내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에서 좋았던 장면과 황당했던 순간이 차례차례 되살아났다. 여행기를 쓴다는 건 결국 여행을 다시 음미하는 일. 일주일간의 남도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길게 풀어내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여행을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아직 건강한 몸으로 둘이 함께 발길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여행이든 성공적이다.

우당탕탕 일지라도, 세상에 재미없는 여행은 없다.

“그럼 다음 여름에도 또 여행을 갈까?”
“놉! …하지만 내년 이 맘 때가 되면 또 모르지.”

둘이서 웃으며 그렇게 대답을 주고받는 순간, 어쩌면 이미 다음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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