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9
인피니티풀에서 무한대로 꼬인 하루
한국에서 처음 인피니티풀을 경험한 건 코로나 이전, 기장 아난티 힐튼이었다. 풀의 끝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경계가 사라진 듯한 그 느낌. ‘무한대’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 개방감이 너무 강렬해 이후 ‘인피니티풀’을 내세운 리조트들을 몇 군데 더 찾아갔지만, 기대는 번번이 무너졌다. 얕고 넓기만 한 풀에 사람은 넘쳐나, 대중탕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전에 많은 후기를 읽은 탓에 진도 솔비치의 인피니티풀도 별 기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 반, 물 반. 직선으로 몇 미터도 채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왜 여길 왔을까?
“그러게, 왜 그랬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솔비치에서의 하루는 이 여행기의 제목에 있는 불길한 단어, ‘우당탕탕’을 그대로 구현한 하루였다.
시작은 체크인부터.
“예약하신 D동 대신, 수영장과 가까운 C동으로 업그레이드해 드릴게요. 오션뷰입니다.”
“좋죠!”
무료! 업그레이드!라는 말에 신나서 방에 들어서자 깨달았다. C동엔 조리공간이 없었다. 우리가 굳이 D동을 예약한 이유는, 준비해 온 즉석국과 반찬, 해창막걸리 12도를 곁들여 저녁을 싸게 해결하려는 계획 때문이었는데... 아이고, 멍청이들.
“할 수 없지. 뷔페나 가자. 20% 할인쿠폰도 받았으니까.”
좋게 좋게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콜키지를 물으니 5만 원! 결국 막걸리는 냉장고 속으로 직행했다. 어제도 못 먹었는데... 이 더운 날, 이미 맛이 갔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전국이 물난리 비상사태인데, 우리가 리조트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그쳤고, 떠나는 순간까지 쾌청한 하늘이 이어졌다. 명사십리에서 해수욕을 못한 아쉬움을 조금은 보상받는 듯했다.
솔비치 인피니티풀은 1번밖에 이용할 수 없는 여타 리조트들과 달리, 입장 후에도 2시간 정도는 외출이 가능했다. 우리는 물놀이를 즐기다가 2시간가량 뷔페를 이용하고, 다시 풀로 돌아가 야간 수영을 즐기자 계획을 세웠다. 짐은 풀과 연결된 사우나 락커를 이용하면 되니 편리했다. 앞서 인구밀도가 너무 높다고 투덜거렸지만, 풀 위에서 바라본 남도의 바다는 확실히 멋졌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 그 풍경 덕분에 아쉬움이 더 커졌다. 이런 뷰에 진짜 ‘무한대 크기'까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계획대로 4시부터 9시까지, 다섯 시간 내내 먹고, 마시고, 수영했다. 기왕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본전을 뽑겠다는 심산으로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
여행 중 틈만 나면 핸드폰만 들여다본다고 자책했더니, 그걸 고깝게 들은 걸까. 아, 글쎄. 그놈의 핸드폰 녀석이 내 수영복 주머니 속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한 시간쯤 물속에서 버티더니,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이폰 11이면 오래 썼지, 새로 나온 갤럭시플립으로 바꿀 거라는 둥, 흰소리 좀 했다고 그걸 진짜로 믿었던 거니, 이 바보야! 더구나 여행 일정이 한참 남은 이 시점에서, 꼭 그렇게 가버려야만 속이 후련했냐!
내가 핸드폰의 부재로 패닉에 빠져 있던 그때, 오스씨는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하단다. 뷔페에서 잔뜩 퍼먹고, 쉬지도 않고 다시 수영한 게 화근이었다. 할인 가격에 끌려온 리조트에서 새 폰 비용에 배앓이까지 청구서로 받아 들고 말았다. 이럴 수가!
다음 날 아침, 오스씨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밤새 두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침은 건너뛰고, 산책로를 걸었지만, 오스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무래도 뷔페에서 먹은 회가 원인 같아.”
서로 먹은 걸 확인해 보다가 내가 먹지 않은 회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괌에 결혼하러 갔을 때, 마트에서 세일하던 회를 나만 많이 먹고 배탈 났던 기억이 겹쳤다.
“앞으로 여름 여행에서는 회를 먹지 말자.”
남은 시간은 호텔방에서 배를 쓸어내리며 보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블릿을 챙겨 와서 핸드폰의 공백은 메웠다. 그런데 날씨 앱을 보니 오늘 목포는 '물폭탄 예보'였다.
이 정도면 귀엽게 우당탕탕이 아니라 곡소리 나야 할 정도가 아닌가.
어쩌다 마주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물폭탄 예보에 겁을 잔뜩 먹고 리조트를 떠났지만, 목포 시내로 향하는 길은 뜻밖에도 쾌청했다. 하늘은 맑다 못해 햇살이 따갑기까지 했다. 극한폭우? 전조도 없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는 법. 요즘 일기예보는 대체로 잘 맞으니까.
짐을 풀고 곧장 시내로 나섰다. 호텔 근처에서 오래된 적산가옥을 개조한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 보네르>. 직접 빵을 구워 먹는 콘셉트도 귀엽지만, 곁들이는 소스가 하나같이 예술이었다. 특히 계란과 토마토를 곁들인 소스는 왜 목포가 ‘맛의 도시’로 불리는지 단박에 증명해 줬다.
“근데 자기, 배 안 아파? 이거 먹어도 돼?”
맛있다며 쉬지 않고 구운 빵을 집어먹는 오스씨를 흘겨봤다.
“정로환 먹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징징대더니 정로환으로 버틴다고? 이 아저씨는 죽기 직전이 아니면 병원엘 가지 않는다. 본인이 괜찮다니 어쩌겠나. 나는 계속해서 쫀드기도 사고, 크림빵도 사서 뱃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목포에서 찾은 독립서점 두 곳, <구보책방>과 <고호의 책방>. 해남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나도 책을 한 권 샀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부록의 작품집, 『내 손이 사라졌다』.
19세기 유럽의 시선으로 구한말 조선을 다시 그린다는 콘셉트가 흥미로웠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강진 다산박물관에서 만났던 자산어보를 풍자한 카툰 시리즈 '자산업보'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우연이 주는 짜릿함!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여행 중에 이런 경험, 너무 좋다. 우연이지만, 어쩐지 운명 같은 만남!
<운림산방>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발견, 바로 허련에 관한 책도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쳐본 순간, 예상치 못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허련은 자신의 기대 수준에 도달하느냐에 따라 자식들에게도 뚜렷한 호불호를 보이는 편벽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물 좋고 재주 있는 큰 아들 '은'을 편애하고, 왜소하고 재주 없어 보이는 넷째 아들 '형'을 홀대한 일화에서 허련의 편벽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중략)
허련에게서 볼 수 있는 이중적 행태, 곧 자신이 존경하고 따를 이유가 있는 인사에게는 복종과 정성을 다하지만 자기 주변에는 그지없이 엄격했던 양면성은 그의 분열적인 성격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전근대의 가부장적 세계관 때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허련의 경우 그 진폭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훨씬 컸다고나 할까."(김상엽, 『소치 허련』 중)
뭐야, 이 할아버지… 싫다. 심지어 괄시했던 넷째가 훗날 실력이 늘자 다시 귀애했다는 대목에서는, 강남 배경 학원물의 숨 막히는 서열 싸움이 떠올랐다. 나는 책을 살포시 가판대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단순히 싫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질문이 남았다.
‘무엇이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가?’
마침 아침에 읽었던 『철학이 필요한 순간』(스벤 브링크만)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개인이 느끼는 행복한 경험 같은 것으로 쉽게 착각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의 공허함을 알아차렸습니다."
행복은 사막의 소금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르다.
삶의 의미는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더 큰 목적에서 비롯된다고 책은 말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는 치열한 경쟁조차 역설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한 분야의 장인이 된다는 건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니까. 아무리 그 세계가 고통으로 얼룩졌을지언정.
싫고 부럽고를 떠나, 최소한 내 삶은 아직 그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영화 <위플래쉬>를 보고 서양은 아동학대를 떠올리고, 한국은 김연아 엄마를 떠올리는 차이 같은 걸까?”
오스씨에게 묻지만, 답을 기대한 건 아니다.
아이 없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은 늘 난제다.
대체로 무서울 게 없는 퀴어지만, 이런 주제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