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끝나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괌 결혼원정기 3

by 선우비

밤새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오스씨도 마찬가지였다. 긴장과 피로가 섞인 탓일지도 몰랐다. 멜라토닌 알약이라도 가져올걸.

꿈에 오래전 세상을 떠난 첫 애인이 나왔다. 자꾸만 나에게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는 꿈이었다. 언젠가 결혼을 하겠다는 말을 처음 꺼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날 꿀 꿈이야, 이게?


우리는 렌터카를 빌려 공항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도착한 명동 커플을 만나면서, 결혼 원정대가 모두 모였다.

숙소에 모여 다음 날 일정을 점검하던 중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결혼식 시간과 보건국 업무 마감 시간이 겹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결혼증명서를 받지 못하고 비행기에 오를 수도 있었다.

모두 휴대폰을 꺼내 들고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돼 마음이 편했는데 역시 여행은 여행이었다.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중에 돈을 주고 대리인을 쓰면 된데요. 한국으로 보내준답니다.”

결국 누군가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행기에 쓸 에피소드가 하나 늘었다.


저녁은 수요일에만 열린다는 야시장에서 먹었다. 분위기, 맛 뭐하나 빠지지 않았다. 야시장 위로 노을이 천천히 번지고, 그 빛 아래서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숙소로 돌아와 술과 안주를 펼쳐놓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이면 정말 결혼하네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결혼을 하러 괌에 와 있다.

“현실감은 없지만 잘해봅시다.”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맑게 울렸다.

10시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삐걱거리며 요란하게 출렁였다.

오스씨와 잠깐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둘 다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 버렸다.

괌에 와서 처음으로 깊이 잠들었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날은 4월 10일이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그날은 타이타닉이 첫 항해를 시작했고, 비틀즈가 사실상 해체됐고, 인류가 처음으로 블랙홀의 사진을 본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거기에 작은 사건 하나를 얹었다.

세 쌍의 한국 게이 커플이 합동 결혼식을 올린 날.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축의금까지 받았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알렸지만 마음껏 축하받지 못했다. 우리는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알리고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커밍아웃은 오래전에 했지만, 가족들은 단 한 번도 우리의 관계를 직접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우리도 굳이 먼저 꺼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방식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번 결혼도 우리 둘만의 역사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런데 지나가듯 이야기를 전했더니 동갑내기 친구 하나가 축의금을 보내왔다.

동네방네 떠들 걸 그랬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하루 일정을 점검했다.

“보건국 문 열기 전에 가서 기다렸다가 문 열자마자 접수합시다.”

서류를 처리한 뒤 바로 시청으로 가면 결혼식을 조금 앞당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웨딩 복장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우리 커플은 반바지와 반팔로 최대한 젊어보이도록, 성민 커플은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 명동 커플은 단정한 캐주얼이었다. 명동 커플은 한국에서 조화로 만든 작고 예쁜 부케까지 챙겨왔다.

모두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30분이었다.

아무리 서류 사냥이 목적이라지만 결혼 준비가 이렇게 간단해도 되나 싶었다.

남자들끼리 하는 결혼이 이렇다.

보건국은 8시에 문을 열었다. 우리는 7시 반에 도착해 1번으로 줄을 섰다. 이미 한 번 해본 일이라 서류 작성은 금방 끝났다.

혹시나 해서 직원에게 물었다.

“몇 시까지 문 열어요?”

그녀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일반 업무는 세 시 반, 결혼 업무는 다섯 시까지 해요.”

그 다섯 손가락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전날 밤 우리를 괴롭히던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보건국에서 두 커플이 서류를 처리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 차 안에 남아 있었다.

“자기야, 나 할 말 있어.”

“뭔데?”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미리 써온 성혼문을 읽기 시작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함께 걸어왔다.

서로 너무 달라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십 년을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싸우고 웃으면서 같이 늙어가자.


읽는 동안 오스씨가 울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차 안은 그렇게 로맨틱한 공간이 아니었나 보다. 에어컨도 지나치게 세게 틀어져 있었다. 어떤 영화적인 장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썰렁한 공기를 뚫고 오스씨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도 사랑해.”

듣고 싶던 말은 들었으니 됐다.


결혼식을 앞당길 수 없었기에, 오후 세 시에 맞춰 다시 시청으로 향했다.

괌의 시청은 우리 동네 동사무소 정도 크기였다. 결혼식이 열리는 시장실도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방이었다. 벽에는 괌 깃발과 미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그 앞에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꽃 장식도, 웨딩 아치도 없었다. 평소에는 회의를 하거나 민원을 받았을 것 같은 평범한 공간이었다.

결혼식에는 증인이 필요했다. 혼자 오는 커플들을 위해 시청 직원이 증인을 서 주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 커플이었기 때문에 증인은 넉넉했다.

시장님이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동양인 남자 세 커플이 동시에 결혼식을 올리는 건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오늘 매우 특별한 날이네요.”

결혼식은 간단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고 그 사이에 시장이 섰다. 그는 결혼 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서로를 배우자로 맞이하겠습니까?”

“예스. 아이 두.”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커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스. 아이 두.”


첫 번째는 성민 커플이었다.

나는 그들을 17년 동안 지켜봤다. 좁은 원룸에서 시작해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집을 장만하던 순간까지 다 기억한다.

그런 두 사람이 낯선 섬까지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도 아닌 우리가 그 결혼식의 증인으로 서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온통 흔들렸다.

혀 끝을 깨물어 간신히 울음을 참고 박수를 쳤다.

두 번째는 명동커플이었다.

이 친구들은 늘 밝고 긍정적이다. 함께 있으면 주변 공기가 조금 가벼워진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성민커플과 달리 두 사람은 시종일관 웃으며 식을 올렸다. 그 모습 덕분에 내 눈에 맺혀 있던 눈물도 어느새 사라졌다. 열심히 핸드폰을 누르며 그들의 함박웃음을 가득 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례가 되었다.

오스씨와 내가 시장 앞에 섰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만 식이 진행될수록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안 돼.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는 벅찬 감정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결혼 선언문을 따라 읽었다.

리허설도 없이, 그것도 낯선 외국에서 영어로 결혼식을 한다는 건 묘하게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마지막 질문이 끝나자 시장이 우리를 바라봤다.

“이제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합니다.”

그 순간 문득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그 시간 자체가 통째로 가슴을 쳤다.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애들이 환호하고 시청 직원들도 함께 박수를 쳤다. 공무원이 의례적으로 치는 박수처럼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축하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키스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괌의 작은 시청에서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마친 뒤 우리는 경치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전문 사진가를 부르지 않고, 우리끼리 찍기로 했다. 그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날 밤 숙소에 모여 장을 봐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다시 결혼식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차 안에서 성혼문을 읽어줬다는 이야기를 하자 다들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성혼문 대신 미리 써온 글을 읽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멋진 날이다.

결혼이라는 말만으로도 벅찬데 여섯이 함께 합동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부산에 게이가 많다고 하지만 이렇게 오래 인연을 이어가며 서로의 삶을 지켜보는 커플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오늘의 결혼식은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이기도 하지만, 여섯 명이 하나의 가족이 되는 날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울고, 좋은 일이 생기면 더 크게 웃으며 서로의 삶을 축하하는 여섯 명으로 살아가자.


오스씨에게 읽어줄 때는 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흘렀다.

다 읽고 고개를 들어 보니 애들도 훌쩍거리고 있었다.

모두 울고 나니 그제야 진짜 결혼식을 했다는 실감이 났다.

수많은 결혼식을 봤지만 오늘이 가장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함을 느끼기까지 참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억눌렸던 행복을 한꺼번에 만끽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그 밤을 마음껏 즐겼다.


그 이후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고, 마침내 천국 같은 열대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돌아오는 우리의 짐 속에는 괌 정부가 발행한 결혼증명서가 여러 장 들어 있었다.

하나는 벽에 걸어둘 것이고, 나머지는 다른 자리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증명서는 또 다른 쓰임을 얻었다.

우리는 부산에서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재작년에 동성 부부도 사실혼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이제 남은 건 동성 커플의 지위를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장받는 동성혼 법제화가 남았다.

법원에 우리가 부부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는데, 괌에서 발급받은 결혼증명서도 그 중 하나다.

처음엔 그냥 20주년 기념 여행의 '일종의 기념품' 같은 거였는데, 의미가 부풀어올라 이렇게 커져버버렸다. 모든 부부에게 결혼이 새로운 출발이듯, 우리에게도 이 결혼은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다.

부디 이 소송이 좋은 결실을 맺어서, 우리의 결혼증명서가 우리나라 동성부부 혼인사의 작은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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