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

퀴어작품을 소개합니다 01

by 선우비

동성애, 퀴어, 성소수자, 엘라이, 등의 키워드로 검색될 수 있는 소설과 에세이를 틈나는대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하기 힘든 독립서적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세요. 아는 만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홍예글방)

가는 아이(이정민)

먼지 속에 두서없이 쌓인 감정들(오후와비누)


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

-홍예글방 첫 번째 책

홍예당 출간


2022년 여름, 부산퀴어문화플랫폼 홍예당에서 김비 작가님을 초빙해 ‘나와 가까워지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글쓰기 모임을 열었다.

개성이 넘치는 6명의 퀴어가 참여했다.

석 달에 걸친 글쓰기 교실의 결과물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는데, 바로!


『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 』


수록작----

전인 <가난해질 수 없는 마음>

선우 <오스씨와 나의 아무것도 안 하기: 중년 게이 부부의 제주 한달살이>

효하나 <빤스 수납장>

02 <갑자기,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삭미 <카페 소수>

모리 <또 이렇게 끝내시면 곤란합니다>


고맙게도 다들 잘 썼다고, 어디 응모해보라고 응원해주셔서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게 됐고, 덕분에 지금 이 공간을 분양받았다.

수록작은 브런치북으로 엮여있으니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sandme


책은 46권만 찍고 작가들끼리 나눠 가져서 구할 수 없는 상태다.

다행히 또 한 명의 참여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수록작을 연재 중이니 관심 있는 분은 아래의 블로그에 들어가셔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kpj0440


아랫글은 책에 수록된 나의 후기이다.


부산퀴어문화플랫폼 홍예당에서 김비 작가님을 초빙해 ‘나와 가까워지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글쓰기 모임을 열었다.

이건 꼭 하고 싶다, 간만에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 고민이 없었다.

내가 제주에서 한 달 동안 경험한 것이 바로 ‘자신을 잘 관찰해서 더욱 가까워지기’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삼 개월 동안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자세히, 때로는 제삼자인 양 멀찌감치 떨어져서 계속 나를 보아왔다.

어설프고, 바보 같고, 두려움이 많은 우울증 환자가 그래도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보는 연습을 한 것만으로 큰 성과다.

함께 “뼛속까지 써 내려갔던” 친구들 덕에 더욱 솔직해질 수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마다 기억 도우미를 자청했던 오스씨도 큰 힘이 됐다.

사진이 아닌 책으로 기록된 우리의 여행, 오십 기념 선물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가는 아이 - 이정민

독립출판사 21세기 여성 출간



『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를 출간하고 부산 광안리 소재 비건 카페인 ‘카페 소수’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분이 축하해주시러 오셨는데, 멋진 분이 내 옆에 앉아계셔서 인사를 나누게 됐다.

장편소설 『가는 아이』를 출간한 이정민 작가였다.

꼭 읽어볼게요... 로 인사를 갈음하자마자 바로 알라딘에 들어가서 구매했다.

작가 후기에 “소중한 것을 호들갑 떨면서 자꾸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이 소설에 담겼다.”라고 하셨는데, 소설 속 캐릭터들이 너무 생생하게 움직여서 작가가 직접 알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녀를 좋아하는 소녀, 언뜻 평범하게 시작하는 듯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비치의 노래 ‘8282’처럼 즐거운 반전과 변화가 담겨있어서 앗! 더 집중하며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재기발랄한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언제까지 나를 모른 척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나는 순순히 홍지의 비밀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먼지 속에 두서없이 쌓인 감정들

-오후와 비누

텀블벅 펀딩 에세이


독립출판물과 기성출판물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편집자가 아닐까?

대개는 노련한 편집자가 요즘 독자들의 기호에 맞게 문장을 세련되게 정리해준 책을 선호하지만,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작가들에게서는 조금 더 거친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가 많다.

이리저리 가지를 마구 뻗은 나무처럼, 농약이 닿지 않은 못난이 과일처럼, 어쩌면 해로울 수도 있는 날것의 감정들을 생생한 표현으로 맛보고 싶다.

“그래, 나 이렇게 살고 있지.”

팍팍한 현실에 둘러싸인 당사자성을 거칠게 긁히고 싶다.

그럴 때마다 텀블벅에 들어가 동성애, 퀴어, 게이 등등의 검색어를 넣어보고, 진행되고 있는 문학작품이 있으면 펀딩에 참여한다.

레즈비언 커플인 오후와 비누님의 커플 에세이,『먼지 속에 두서없이 쌓인 감정들』은 펀딩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간신히 참여할 수 있었다.

검은색 연필로 밑줄 그어둔 펄펄 끓는 한 소절을 소개해본다.


동그라미

사실, 우리 모두는 고슴도치와 같다.

가시를 지니고 있지만 완만하게 살기 위해 감추고 있을 뿐, 불편한 시선도, 질문도 익숙하게 넘긴다.

가시가 바르르 떨리더라도, 가시를 접고 접어 설령 본인이 찔릴지라도 무던하게 보이려 애쓴다.

그렇게 접힌 고슴도치는 언뜻 동그라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멋대로 여러 방향으로 솟아난 가시를 한 번에 접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가시도 멀쩡히 날이 서 있지도 않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죽을 수도 없다.

고슴도치의 삶이란 참 퍽퍽한 것이다.

돌을 피하다 부러진 가시에서 흐르는 피를 바로 닦을 수도 없다.

무던해 보이려면 다치지 않은 척 가시를 접고 살 뿐이다.

부러진 가시에서 다시 상처가 나더라도, 그것이 흉터로 남을지라도

우리는 동그라미로 보이려 무던히 애쓰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