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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Jan 18. 2023

부산에도 동성애자, 퀴어, 게이 커플 많다.

퀴어작품을 소개합니다 02

동성애, 퀴어, 성소수자, 엘라이, 등의 키워드로 검색될 수 있는 소설과 에세이를 틈나는대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하기 힘든 독립서적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세요. 아는 만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말을 제주도로 보내고 성소수자는 서울로 보내라고 했어!   


부산퀴어문화플랫폼 ‘홍예당’ 사무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영남권 성소수자 부모 모임’이 열린다. 

성소수자 당사자(보통 젊은 친구들)와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대부분 내 또래)가 둘러앉아서 순서대로 자신 또는 자녀의 근황을 이야기하는데, 20대 레즈비언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서울에 있는 인권단체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부산에서도 활동하고 싶거든요. 

서울에 가면 훨씬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경제적인 부담도 좀 있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요.”


참고로 이 모임은 진행자의 다음과 같은 멘트로 시작된다.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툴게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간에 말을 끊지 마시고, 어떠한 조언이나 훈계도 안 됩니다. 

그냥 들어주세요.”


그래서 젊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속으로, 

‘어휴, 그러면 안 되지, 그럴 땐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라도 꾹 참고, 

으음, 어머, 끄덕끄덕 정도의 리액션만 할 뿐이다.

어디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할 수 없는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냥 말을 할 수 있는 공간과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다들 이해하기 때문이다. 

굳이 누군가의 조언 없이도 말을 쏟아내다 보면 저절로 해결책이 찾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

그런데, 레즈비언 친구처럼 주위에 조언을 구하게 되면 각자 축적해온 인생 스토리를 맘껏 펼칠 기회가 주어진다.


서울에 있는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가! 가! 무조건 서울로 가!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성소수자는 서울로 보내라고 했어! 

엄마한테 월세 내달라고 사정해서라도 서울로 가!


놀랍게도 애들이건 어른들이건 참석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했다.

서울 인권단체에서 공부 많이 하고 금의환향하거라.

어느 한 사람, “부산에서도 운동할 사람이 있어야 부산 퀴어 문화도 발전하지.”라고 하지 않았다. 

다들 그 친구의 부모라도 되는 양, “내 자식만큼은 이런 데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우짜든동 애의 미래를 생각하면 서울로 보내야….”라고 생각했으리라 짐작된다.

친구도 사실 이미 결심은 섰는데, 응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표정이 꽤 환해졌으니까.     


신이 나서 조언 폭격을 퍼붓고 돌아온 다음 날, 종일 찜찜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평소에 같이 할 사람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하소연해왔던 홍예당 운영자에게 미안했고, 

흔한 꼰대처럼 ‘나 때는 다 지방에서 서울로 갔으니까, 그것이 옳다.’는 오지랖을 펼친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정말 지역에서 퀴어 운동은 대안이 없는지 온 힘을 모아 고민해보지도 않은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그저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대세론에 얄팍하게 편승한 것은 아닐까?

이 거북한 마음은 꼭 풀고 싶어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신기하게도 때마침 텀블벅에서 지방에 사는 퀴어들의 설움을 담은 책 두 권이 각각 펀딩을 진행하고 있었다. 

냉큼 주문하고 기다렸다.     


유학생 - 무무와 별     

텀블벅 펀딩


책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퀴어 7명의 인터뷰를 담았다. 

재미없는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서 문화 기획자로 살아가는 '헤이즐', 

은둔(커뮤니티에 나오지 않는 퀴어를 일컫는 말)들에게 숨어 있지 말고 함께하자 손 내미는 '아메', 

지방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며 살아가는 '댄댄', 

지역에서 청년이 발화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고민하는 오픈리 퀴어 '순정', 

그리고 서울과 제주에서 살아가는 은둔들의 '좌담'이 흥미롭게 펼쳐졌다.     

책에는 지방 퀴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어려움이 생생한 언어로 담겨 있어서, 부산 게이로서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책은 지역 퀴어의 ‘결여’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부족함이 때때로 삶에 대한 풍부한 통찰을 끌어낸다는 걸 다양한 시선으로 드러낸다.


무성애자(에이섹슈얼)인 댄댄님은 소수자로 살면서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전 성애적인 부분을 떼어놓고 사람들과 같이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유성애 중심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과 마음 편히 소통할 수 없어서 가끔 외롭게 느껴지기도 해요.

전 유성애자들의 세계가 가슴으로는 납득이 안 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가요. 

근데 유성애자들은 안 그러는 것 같아요.

어쨌든 그들은 무성애를 겪어보지 못하잖아요. 

그런데도 제가 겪었던 걸 얘기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모쏠 인생 합리화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게 전부예요. 볼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고. 

그에 비해 퀴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넓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단지 퀴어뿐만이 아니라 성별 간의 격차라든가 빈곤, 자본주의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게이 커플인 아메님의 말은 나이 든 게이인 나에게 특히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무래주변에 나이 든 퀴어가 없다면 무언가를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더 보여져야 한다'라는 말에 공감하고,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누군가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 아래, 고래-글, 김교엽 그림, 인예린

텀블벅 펀딩


『유학생』이 전국 단위라면 『물 아래, 고래』는 부산 지역 퀴어들의 이야기다. 

6명이 모여 부산이란 도시가 퀴어들이 살기에 어떤지, 과연 서울로 가야만 하는지,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고 토론하고 있다. 

나의 고민과 맞닿은 지점이 많아서 챕터 하나하나 집중해서 읽었고, 날카로운 지적에 뜨끔하기도 했다.

부산 퀴어들에게는 모든 일에 선례가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커뮤니티와 행사를 찾아 서울로 떠나는 퀴어가 많아지면 부산에는 행사가 열리기 쉽지 않고, 

행사가 열리지 않으니 그 행사를 교본 삼아 또 다른 행사를 열고 퀴어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부산에 있던 퀴어들이 또 서울로 빠져나가며 하나의 순환고리가 형성된다.”


그 결과,


“손들고 먼저 시작할 사람이,

그런 의인이 부산에서 나오기가 참 힘들죠.

영향력 있는 친구들은 다 위로 가니까요.”


이러한 한탄이 쏟아져나온다.     


아,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퀴어로 태어났으면 서울로 가야지.”라는 나의 섣부른 주장이,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김 빼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론이 서울행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같이 여러 가지 시도해보고 고민해보자는 말을 먼저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메님이 말한, 나이 든 게이가 젊은 친구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의미는,

“내가 살아보니까 이렇더라. 이런 게 좋더라.”라고 단정을 지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보니까 이렇더라. 
하지만 너네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세상을 사는 거니까 다른 방식들도 고민해봐.
그러다 내 살아온 인생이 궁금하면 다시 물어보고.”

라며 한 뼘 더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은, 『유학생』의 결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퀴어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하죠."

"우리 여기 있다!"     


지방 게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

홍예당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거나, 

친한 친구들과 다양한 친목 모임을 만들거나, 

이렇게 공적인 공간에 퀴어에 관한 이야기를 쓰거나, 

아무튼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

일단은 그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부산에도 동성애자, 퀴어, 게이 커플 많다. 그러니까 같이 모여서 신나게 놀자!”               



덧붙임: 작년 연말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는데(그 결과물이 지천명의 신년계획 시리즈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노랫말을 지어 부르는 유진솔님도 함께했다. 공연하신 장소 중 한 군데가 『유학생』에 소개된 곳이길래 책을 소개했는데, 인터뷰이로 참여한 헤이즐님과 친구 사이라고 했다. 새삼, 이 바닥이 좁다는 생각과 함께, 열심히 주변을 살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든 만나서 인연을 쌓는구나,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가사가 아름다운 유진솔님의 노래들을 소개해본다.

https://www.youtube.com/@user-lt8bj9rq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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