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뒤지다가 눈에 띄는 한 영상에 관심이 쏠렸다. 그저 흔하디 흔한 전형적인 인터넷 광고 영상이었고, 광고의 주제는 "개인용 열쇠보관함". 이 광고 영상이 유독 내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미국영화의 어느 장면들과 겹치기 때문이다. "진짜 저런다고"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 장면.
미국영화라면 어릴 때부터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로 봐왔던 터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더더욱 익숙한 장면이 있다. 집을 나서면서 열쇠를 문 앞의 매트 밑이나 집 앞 화분 아래에 놓고 나가는 모습. 문 앞 매트나 화분을 들어 열쇠를 꺼내서는 열고 들어가는 모습.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집에 침입하면서 매트나 화분을 들어 열쇠를 발견하고는 빙고를 외치면서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가는 모습. "진짜 저런다고"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영상의 진위에 의심과 의혹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영상 속에 있었다. 매트나 화분 아래에 열쇠를 놓고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제부터는 시건장치가 있는 열쇠보관함을 문 옆에 설치하고 보관하라고 홍보하는 영상. 자물쇠가 달린 열쇠보관함의 모습과 번호를 돌려 보관함을 열고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거기 있었다.
처음엔 영상을 보면서 피식하고 웃고 말았더랬다. 매트 밑이나 화분 밑이 위험한 것은 당연하니 오죽하면 저런 제품까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특유의 직업병이 도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말 보안을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었다.
문 앞에 또는 문 옆에 설치하는 열쇠보관함은 네 개의 번호판을 돌려 맞추어야만 열리는 방식이었다. 영상 속 출연자는 번호를 맞추어 뚜껑을 열어서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출연자 뒤로 열린 보관함이 보였다. 맞춰진 번호를 담고 있는 뚜껑과 함께.
보관함은 문 밖에 고정되어 설치되므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출입자들은 매번 신경 써서 번호를 다시 흩트려놓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보관함의 번호 상태를 열심히 확인하는 것만으로 침입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전보다는 안전해졌는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문제가 생긴 순간. 그렇다. 나는 그때 새로운 취약점이 탄생하는 순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