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현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게 되면 공급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장 법칙이다. 따라서 수요자 수에 따라 적절하게 공급자의 수가 조절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딱히 조절해 줄 조정자가 없는 경우 시장은 예외 없이 하나의 결론으로 달려간다. 바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저가 경쟁의 늪이다.
현재 국내 보안컨설팅 시장이 처한 상황이 바로 위에서 설명한 경우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수요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보안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너무 많아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많아진 공급자들이 경쟁에 참여하면서 과열경쟁으로 흘러가고, 그 결과 수주를 위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가 입찰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공급자의 수를 조절해 주는 조정자가 없기도 하거니와 보안컨설팅 업체를 설립하는데 아무런 제약조건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보안컨설팅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설사 본인이 보안전문가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언제부턴가 보안컨설팅 업체에서 활동하던 보안전문가들 중 상당수가, 점차 나이를 먹으며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고 독립하고자 했던 꿈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자로 신고하고 기존에 적을 두었던 컨설팅 업체의 협력사로 활동하면서 사업을 영위하다가, 상황이 좀 나아지면서 직원을 한두 명 뽑아 작게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국내 보안컨설팅 업계에서 통상 50명 이상의 보안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있으면 대기업, 30명 이상이면 중견기업에 해당한다. 외부에 많이 알려진 나름 이름 있는 보안컨설팅 업체들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30명 이하의 규모를 중소기업으로 본다. 현재 보안컨설팅 업체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에 해당하며 그중 대부분은 10명 이하 심하게는 5명 이하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소규모 회사들이 너무 많아진 데다 나름 수년간의 업력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단순 협력사로서 하청만 받아 사업하기보다는 직접 경쟁시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찌 보면 당연하고 합당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 결과 너무나도 많아져서 정확한 수도 알기 어려워진 컨설턴트 10명 이하의 작은 소규모 회사들이 수십 명 규모로 운영되는 기존 업체들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요자인 고객사들 역시 이 상황을 눈치챈 것이 저가경쟁의 불을 댕겨버렸다.
고객사들은 사업을 입찰하면서 기존 업체들과 중소기업들을 함께 입찰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입찰가격을 낮추기 위한 고객들의 작전이었다. 고객들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보안컨설팅 업체들이 수주를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할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으며, 그 결과 규모가 큰 업체들 역시 입찰가격 하락의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보안을 중시해야 할 금융회사 및 대기업에서 조차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저가로 수주하게 되면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보안컨설팅 수행 품질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위험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 상황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이제는 저가경쟁의 형태가 아예 시장에 고착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수요처인 고객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최저가 입찰을 외치며 저가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공급자인 보안컨설팅 업체들은 최저가로 제안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 가격을 낮추기에 바쁘다. 작금의 그들에게선 "어떻게 하면 진화하는 침해에 맞서 보안을 강화하고 개선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왜 보안컨설팅 시장이 4D(Dirty, Difficult, Dangerous, Dreamless)라고 불리는지, 왜 젊은 영재들이 보안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