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 상황
남보다 먼저 출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것은 문명 발달에 있어서 분명한 이점으로 작용할까? 만약 그렇다면, 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대륙은 남보다 늦게 출발한 대륙이 아니라 먼저 출발한 대륙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명이 발생하기 전 각 대륙의 상황은 어땠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즉, 대륙 불평등의 시초를 알아야 한다.
각 대륙의 역사 전개를 비교하기에 적합한 출발선은 B.C. 11000년 경이다. 이 연대는 빙하기 이후 지질학자들이 현세라고 부르는 시대의 초기와 대략 일치하는 시기다. (연대 측정에는 보정 방사성 탄소 연대와 비 보정 방사성 탄소 연대라는 두 가지 구별 방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보정 방사선 탄소 연대를 사용하지만, 저자는 보정 방사성 탄소 연대가 실제 연대에 더 가깝다고 판단하여 보정 방사성 탄소 연대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전에 앞서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B.C. 11000년경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훑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어마어마한 세월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가장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이론과 동향들만 언급한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 우선, 저자(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부터 태어났다는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인류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리고 인류와 비슷한 종인 유인원의 화석 증거 분포가 모두 아프리카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었음을 유추한다.
동물의 역사와 구별되는 인류의 역사는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 유인원의 한 부류가 몇 갈래로 갈라졌고, 거기서 인류의 계통이 생겨났다. 이후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순으로 진화하면서 아프리카를 넘어 동남아시아 자바섬(약 100만 년 전), 유럽(약 50만 년 전)으로 뻗쳐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완전한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저자가 ‘대약진’이라고 명명한 시기(약 5만 년 전)부터다. 대약진은 인류가 타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인류의 지리적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현생 인류라고 말할 수 있는 크로마뇽인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생존능력 향상을 위한 다기능적 도구나 무기들 그리고 벽화가 출현했다.
그러나 대약진에 관해서 해결되지 않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촉발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다. 이 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언어의 발달로 창의성이 증가하여 가능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다른 하나는 ‘지리적 위치’인데 대약진이 어느 한 지역에서 기원하여 여러 지역으로 팽창한 것인지 아니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기원한 것인지 해결되지 않았다. 다만 전자가 가장 뚜렷한 증거를 보이고 있고, 저자도 전자의 의견을 따른다.
인류의 지리적 범위는 대약진으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를 넘어 극한 지방에까지 뻗치기 시작한다. 즉, 처음 정착지였던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극지방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극한기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의 향상과 도구의 발달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해협을 건너야만 했는데, 이것은 이들이 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시기에 배가 있었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었다.
배를 사용한 것 이외에 지리적 범위가 넓혀진 이유는 인간에 의해 최초로 대형동물들이 대량으로 멸종한 사실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를 지배하고 있었던 대형동물들이 인간이 살기 시작한 후에 모두 사라졌다. 이것은 도구가 발달한 인간들이 모두 죽였거나 간접적으로 제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는 비판자들도 있다. 그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설을 언급하는데, 인류가 도착하기 전까지 수천만 년에 걸쳐 기후변화를 겪으며 생존했던 대형동물들이 왜 인간이 도착하자마자 멸종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대륙은 아메리카 대륙이다. 남북아메리카에 인간이 살았음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유적은 B.C. 1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알래스카 유적들이다. 그다음으로는 미국 및 멕시코 지역에서 B.C. 11000년 직전 몇 세기 동안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이것을 클로비스 유적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아메리카의 인류는 배를 만들 줄 알게 된 인류가 시베리아와 아메리카를 이어주는 베링해협을 건너온 이후로 처음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B.C. 11000년경에 이미 아메리카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이들이 타 대륙으로 퍼졌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대륙마다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기는 각각 다르다. 하지만, 인류가 먼저 살기 시작했다고 해서 문명 발달에 이점을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 책(총 균 쇠)의 설명과 현재 세계의 불평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유라시아의 문명 발달이 가장 빨랐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왜 유라시아 문명이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