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위계관계가 있느냐다. 심지어 가해자의 직위가 높았다면 피해자는 위력에 눌러 반항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할 수 있다.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사안 또한 가해자는 고위직이었고 피해자는 하위직이었다.
가해자가 고위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피해자는 상사에게 성희롱 사실을 보고했고 고용주는 마땅히 매뉴얼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성사안을 해결해 본 고용주는 많지 않다. 더구나 점잖은 학교에서는 더더욱이다. 우리 학교의 관리자들 또한 경황이 없었기에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절대 놓치지 않는 대원칙이 있었으니 바로 '중립'이었다.
관리자들은 예민한 순간에 늘 중립을 강조했다. 권력이 심하게 기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인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사장에게 물어봐야 한다면서 시간을 끌었으므로 피해자는 상당기간 가해자와 얼굴을 부딪히며 지내야 했다.
이들이 중립을 잘 지킨 덕분에 가해자는 사안 발생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근무를 했다. 피해자는 억울해 숨이 넘어갔다. 용기를 내 학교에 도움을 청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후회했다.
학교는 성사안이 발생하면 우선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면 가해자인 것을 어떻게 증명하냐는 것이었다. 가해자가 성희롱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서 관리자들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안이 커지고 여러 기관에서 컨설팅을 받은 결과 이 부분은 명백한 학교의 실수라는 지적을 받았다. 학교는 그제야 마지못해 격리조치를 취했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수개월이 흐른 뒤였다.
나는 답답했다.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방관이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맞고 있는데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손을 놓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피해자가 맞은 것이 확실치 않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가해자의 의지였다. 가해자는 자신이 점차 불리해지자 결백하다고 부르짖었고 자신은 재단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수시로 암시했다. 만약 재판에 가서 자신이 무죄임이 입증되면 학교에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계획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관리자들은 이 부분을 두려워하며 섣불리 행동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피해자가 차후 이들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현재 힘없는 하위직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리자들 덕에 가해자는 의기양양해졌다. 이미 고위직인 데다 학교에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모양새가 되고 보니 급기야 피해자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피해자는 하루하루 시들어갔고 휴직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관리자들이 줄기차게 고수하는 중립이라는 가치는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폭력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중립이 맞는지 다시 한번 따져 물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심지어 나 또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식의 대답을 들으며 이들이 과연 리더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교육의 최전선이라는 현실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성희롱은 어른들 사이의 일이므로 어느 조직에서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인 학교에서 약자가 짓밟히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공정과 정의가 아니던가? 어른들은 지키지 않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맞는가? 어쩌면 내가 이상한 교사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내가 느낀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교사들은 그동안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를 분리해서 가르치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