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정교사로 살아남기 4
나는 내 직장이
고작 이런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누가 봐도 정당하지 못한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동료들은 못 본 척했다. 심지어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나 혼자 씩씩 거리면서 참다가 한마디 하면 쎈여자로 낙인찍히는 과정이 반복됐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인데 화가 나지 않는지 의아했다. 그렇다고 내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어느 노비가 양반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주인 양반은 나를 뽑아줬으니 감사하게 생각하며 비위를 맞추고 산다. 살면서 가끔 다른 노비가 맞고 있는 것을 보면 모른 척 눈감는다. 왜냐하면 주인님은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노비는 이것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다른 노비들끼리 싸우는 것만 봐도 으레 주인 양반의 눈치를 본다. 주인 양반이 뒷배를 봐주고 있는 노비가 있다면 얼른 그쪽 편에 가서 선다.
노비는 필요 이상으로 주인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의견 따윈 없다. 주인의 의견이 곧 내 의견이므로 집안은 아주 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몇몇 튀는 노비들의 의견은 소수의 의견으로 취급해 버리면 그만이다. 어쨌든 늘 다수 의견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므로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노비가 주인 양반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먹고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노비의 품삯이 정작 주인 양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에서는 주인 양반이 좋은 일을 하는데 노비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노비의 품삯을 대신 치러주고 있다.
심지어 노비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주인 양반이 나를 선택해주었기 때문에 품삯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또한 알고 있다.
주인 양반은 자기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노비를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게다가 노비들은 자신을 뽑아줘서 고맙다며 때마다 선물까지 해준다.
자신에게 굽신거리는
노비들을 보며
재밌는 권력 놀이를 하다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놀고 있는 자식 놈을 노비로 꾸며 품삯을 받게 하는 것이다. 노비로서 해야 할 일의 상당 부분은 다른 노비들에게 떠넘기면 되니 자식 놈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이제 양반집의 노비는 다 같은 노비가 아니다. 주인 양반의 자식 놈은 서류상 노비일 뿐 주인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노비들은 이제 곧 주인 양반이 될 가짜 노비에게도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바쁜데 눈알이 돌아갈 것만 같다.
주인 양반에게 자식 놈이 하나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식이 여럿이거나 이웃 양반집의 자식까지 들어오는 요즘은 줄타기가 정말 아슬아슬하다. 온통 지뢰밭이라 어디 가서 마음 편히 말도 할 수 없다.
여기에 앞잡이 노릇을 하는 노비들은 시키지 않아도 눈치가 빠르다. 주인님의 자식이 가짜 노비로 입성하는 순간 음으로 양으로 이들을 보좌한다. 다른 노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일을 떠넘기고, 집안에 위기가 온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노비들은 양반집이 망하면 자신의 일자리도 없어진다는 불안감에 더 많이 일을 하면서도 불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주인 양반의 눈밖에 나는 것보다는 일을 좀 더 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앞잡이 노비는 약삭빠르다. 주인을 등에 업고 순진한 노비들을 등쳐먹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주인 양반이 노비들 모두의 일을 알지는 못하므로 그 틈을 타 앞잡이들은 주인 양반의 의도가 이러하니 네가 일을 더 할 수밖에 없다며 설득한다. 게다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일까지 은근슬쩍 끼워 넣는다.
똑똑하다.
순진한 노비는 이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몇 년 동안 앞잡이 일을 대신하고도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누군가 말해줘도 이젠 어쩔 수 없다며 한숨 한 번 쉬고 끝이다.
착하다.
노비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은 이런 식으로 막강한 권력이 되고 한 집안을 말아먹는다.
나는 주인 양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인 양반도 사람이고 부모다. 주위에서 알아서 떠받들어주는 데 마다할 사람 없고 자식을 손쉽게 취업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다.
주인 양반이 자신의 입으로 노비들에게 과시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노비들은 시키지 않아도 그것이 대단한 것임을 수시로 확인시켜준다. 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것은
주인 양반이지만
그것을
막강한 권력으로 만드는 것은
노비들이다.
갑질을 하는 당사자는 그것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수많은 을들의 입장에선 천인공노할 일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권력이 주어졌던 갑의 입장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힌 행동일 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온전히 달려 있던 우리 또한 평소 특별히 팔다리에 감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나쁜 놈은 앞잡이 노비일까?
나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잡이는 순진한 노비들보다 처세가 빨랐을 뿐이다. 앞잡이 또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기본적 욕구에 충실했을 뿐이다. 좀 더 쉽고 빠른 길을 알아내 이를 이용할 줄 알았으므로 어쩌면 능력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약간의 도덕적 지탄은 받을 수 있겠지만 같은 조직 내에 있는 순진한 노비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이마저도 해당이 안 된다.
결국 나쁜 놈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다.
주인처럼 인사권도 없고 앞잡이처럼 약삭빠름도 없는 대다수의 순진한 노비만 멍청이가 되어버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