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정교사로 살아남기 7
귀신이 눈에 보이는 영화 속 주인공은 너무나 괴롭다.
귀신 자체도 무섭지만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귀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안해내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사람들은 갈수록 이런 그를 멀리하게 되고 주인공은 결국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내가 처음부터 귀신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순진하지만 멍청했던 노비가 오랜 세월이 지나며 고참이 되고 보니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어쩌면 앞잡이 노비가 될 수도 있었던 자리에 앉아서 몇 년 일을 하다 보니 집안 돌아가는 꼴을 제대로 본 것이다.
물론 나는 앞잡이 후보에서 광탈했다. 양반 집안에 해가 될 수 있는 문제를 겁도 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용기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때까지도 나는 순진했다. 주인 양반이 그동안 본인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진짜 그렇다고 믿은 게 잘못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주인 양반에게 일러바친 노비가 앞잡이 노비 중에서도 넘버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이 넘버원 인지도 몰랐지만 그렇대도 주인 양반이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집안에 분란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인 양반은 길길이 날뛰는 넘버원을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는 꼴을 보였다.
넘버원은 주인 양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둘 중 하나다.
그동안 많은 것들을 챙겨주었거나 약점을 쥐고 있거나.
아무튼 나는 앞잡이 후보에서 탈락한 대신 귀신 보는 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재앙이었다.
나는 주인 양반이 노비들을 어떤 식으로 겁을 주는지, 앞잡이들을 어떻게 구슬려 원하는 걸 가져오게 하는지 훤히 보였다. 또한 교활한 앞잡이들이 순진한 어린 노비들을 등치는 수법도 보이기 시작했다. 순진한 노비들은 자꾸만 자기 일이 늘어나는 것에 피곤해하면서도 주인 양반을 찾아가는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판에서 진짜 실세는 앞잡이들이었다.
나는 이 집안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수시로 화가 났다. 돈만 밝히는 주인 양반, 양쪽으로 사기 치는 앞잡이,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노비들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났다.
영영 희망이 없을 것만 같은 이 곳에서 나는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이 상황은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앞잡이들은 내 뒤통수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본인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자꾸만 없는 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귀신을 보는 사람이었다. 이들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만들어내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주인 양반을 대신해 표 안나게 앙갚음을 하고, 부적응자 프레임을 씌워 순진한 노비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나는 조심스럽고 깐깐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나를 단체로 물어뜯으러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하고 싶으면 이런저런 규정을 찾아보고 반격을 대비한 답변까지 생각한 후에 입을 떼야만 했다.
워낙 원칙 없이 돌아가던 집안이라 이런저런 허점이 많은 것은 이들을 공격할 거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다음부터 좀 더 신경 쓰겠다'는 말 한마디로 사과도 없이 상황을 모면했고 결재 라인 중간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 같은 시답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골몰했다. 결재라인이 정리되면 대단한 규정 인양 이를 공표했다. 업무 간소화 추세와는 정 반대로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보고가 5단 결재다.
이런 식의 비효율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계속 생산되고 있었다.
나는 주인 양반과 앞잡이들이 쑥덕거려 만든 비합리적인 규정이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목격했다. 처음엔 이를 바로잡아보려고 의견도 내고 개선책도 제시했지만 곧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주인 양반은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정작 혜택을 볼 수 있는 순진한 노비들은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은 힘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이들이 하는 짓거리에 흠칫흠칫 놀라고 늘 뒤통수를 확인했으며 행여 실수라도 할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이런 식으로 살다 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라 비틀어가다가 신경쇠약에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