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전소 Jun 23. 2020

그래서 나는  금수저를 미워할 수 없다

사립학교 정교사로 살아남기 6


주인 양반의 자식 놈들은
달랐다.



이들은 교사임에도 관리자에 가까웠다.


각종 특색사업이나 환경개선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사업은 교육청 예산을 받아서 하는 것이고 단위가 큰 만큼 학교로 많은 돈이 흘러들어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언제나 교육청 예산 관련 서류는 완벽히 준비되어 있기 마련이다.


 



만약 학교에서 교육청으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아 어떤 공사를 했다면 각종 계약서와 영수증 등 서류만 잘 만들어두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 공사에 어떤 자재가 사용되었고 공사 업체의 대표가 누군지는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1억짜리 공사에 5천만 원이 소요되어도 괜찮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사대금이 부풀려지고 그 차액은 금수저와 그 부모에게 직간접적으로 흘러들어 간다. 학교에 설치된 시설물과 비슷한 것이 금수저의 집 곳곳에 있었다. 교사들 중 눈썰미가 좋은 몇몇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물건을 금수저의 집에서 발견했다. 바로 얼마 전 학교에 새로 설치된 것과 같았다.  


그러니 금수저가 이런 사업에 각별히 관심이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음으로 양으로 떨어지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



학교는 이들의 사업장이다.
 



이들은 교사임에도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거나 훌륭한 시민의식 등을  가르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학교를 어떻게 사업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눈을 반짝였다. 사립학교재단은 생각보다 많은 혜택이 있다고 한다. 공립학교가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을 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국가에서는 학교를 운영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지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 금수저는 이런 혜택에 중독되기 쉽고 급기야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명문 사립학교에서 추구하던 교육이념을 바라는 것은 사치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신성한(?) 공간에서 불법은 좀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을 너무 엄격하게 재는 거 아니냐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어른은 최소한 평균 이상의 도덕성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금수저를 비난할 수도 없다.






평소 깨끗하고 올곧은 이미지로 유명한 동료 교사가 있다.


이 사람은 코로나 사태로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어느 날 급식실에서 식사를 하다 말고 일어나 일장 연설을 했다. 학생들에게 급식실에서 조용히 하라고 지도를 하므로 우리 교사들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식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마침 유난히 목소리가 쨍한 동료 교사가 말을 하고 있던 중이라 함께 밥을 먹던 우리는 무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며칠 뒤 들은 그 선생님에 관한 소문에 나는 구역질이 났다.



학교에서 애지중지하는 동아리가 있다. 근방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치던 이 동아리는 지역 행사에 자주 초청을 받곤 했는데 운영교사는 바로 이 사람이다. 전공과목과 관련성도 없고 일이 많기로 유명한 이 동아리를 오랜 기간 운영해 왔기에 나름 애착이 있고 소신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사실 한 가지는 초청기관에서 행사비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이므로 공식적으로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과 달랐다.


차라리 돈을 받은 것이 학교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돈을 받아서 동아리 운영비로 사용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 올곧은 선생님은 어둠의 경로로 돈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돈은 곧 주인 양반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믿기 힘들었다.



십 수년간 이 동아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란 말인가.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청렴한 선생님이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충실한 개였다니.  왜 이 동아리는 담당교사가 늘 이 사람이어야만 했는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특히 그 비밀이 돈과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청렴결백이라고 얼굴에 씌어있는 이 교사는 결국 아이들을 앵벌이로 이용해 먹은 것이다. 급식실에서 교사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소리치던 그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을 만큼 가증스러웠다. 차라리 그 돈을 본인이 챙겼으면 나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오락게임을 해 봤는가?






오락게임에서 최후에 나타나는 대장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그 앞에 있는 무수한 졸개들을 물리쳐야 한다. 나는 어릴 때 게임을 하면서 막판에 도달했다는 기쁨보다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캐릭터가 불쌍했다. 100판을 이겨야만 알현(?)할 수 있는 나쁜 놈은 나보다 덩치가 열 배는 크고 힘도 무지막지하게 셀 것 같았다.


나는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죽기 일쑤였다. 끈질긴 근성으로 그 앞에 100판을 이겼어도 왠지 모르게 기가 눌렸기 때문이다.  황당하리만큼 순식간에 항복을 선언하고 나면 애초부터 너무 불공평한 싸움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해지기도 했다. 나는 대장을 만나기 전에 너무나 많은 체력 소모가 있지 않았는가. 이런 나를 이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금수저를 욕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욕할 기운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금수저에게 위법을 추궁하려면 그 앞에 늘어서 있는 100명을 죽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수저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너무도 편하게 이득을 취하고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금수저에게 이 게임은 너무 쉽다.


그렇다면 나는 저런 사람이 우글거리는 이곳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철없는 아이였던 그때처럼 악당을 만나자마자 맥없이 무너질 내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 만나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락게임이 아닌 밥그릇이 걸린 생존게임에서 졸개들은 더 똑똑하고 용감하게 그들의 주인을 지켜낼 것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경위서를 잘 쓰는 세 가지 원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