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공원 주차장에서(2)
한여름 못지않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6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오랜만에 교외로 드라이브를 떠나는 길이었다. 이쯤 오면 맞는 것 같은데, 도착한 공원의 주차장은 전에 와본 곳이 맞는지 살짝 헷갈렸다. 긴 자전거길을 따라 공원주차장이 대여섯 군데는 있으니 헷갈린 것이다.
6월임에도 기온은 한여름 무더위를 실감케 했다. 서너 살쯤 보이는 아들 하나와 젊은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열을 식히는 모습에서 행복이 느껴졌다. 가족의 것으로 보이는 흰색 SUV옆에 잠시 차를 대고 길을 살피기로 했다. 차에 달려있는 순정 내비게이션은 가끔 믿음을 저버리곤 하니까 그냥 여자의 핸드폰에 있는 카카오맵을 실행시키기로 했다. 자동차 에어컨 송풍구 위에 핸드폰을 거치한 뒤 목적지를 검색하는 중,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뜬다.
또 남자다.
이 여자가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나. 남자는 화가 났지만 침착하게 누구냐며 메시지의 출처를 물었다. 여자는 제 발이 저린 듯 앙칼지게 화를 냈다.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하길 바랐던, 아니 얼버무리거나 차라리 뜨끔한 제스처라도 취했으면 하고 바랐던 남자의 작은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도 팅, 하고 끊어지는 것 같다.
핸드폰을 뺏으려는 남자의 행동이 거칠다. 여자에게 자동차의 좁은 공간은 도망갈 곳 없는 울타리나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힘을 얼마 들이지 않고 여자를 제압해 핸드폰을 낚아챘다. 여자는 새끼를 뺏긴 암컷 맹수처럼 남자의 오른팔을 물어뜯고 거칠게 저항했다. 남자는 왼손으로 서툴게 여자의 핸드폰을 조작하며 물어뜯긴 오른팔로는 여자를 저지했다. 그 과정에 남자의 팔꿈치가 여자의 안면을 강타하고 말았다. 여자의 코와 입은 모래성이 부서지듯 여려서 금방 피를 내비쳤고, 여자는 피를 보고 더욱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 람. 살. 려.!!
경황이 없기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부터 진정시키고자 바둥거리는 여자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피를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이 없다. 여자가 문을 열고 나가면 남자는 ‘여자를 폭행한 세상 천하의 나쁜 놈’이 되는 거다. 여자가 목이 쉬어라 ‘사람 살려’를 외치기를 열 번쯤 외쳤을까. 한 남자가 소란을 들었는지 뜨악한 표정으로 자동차 앞유리를 통해 내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흰색 SUV를 몰고 왔던 아까 그 행복한 가족의 남편이다. 그 틈에 여자가 조수석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염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남자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비틀거리며 멀어지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바람기는 잊을만하면 도지는 고질병 같은 것이었다. 이번엔 또 어떤 놈인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결론적으로 여자를 다치게 했으니 화를 낼 수도, 사과를 할 수도 없는 구렁에 빠져 혼란스러웠다.
자동차 계기판을 보니 밖의 기온은 32도. 여자는 나무그늘이 드리운 벤치까지도 피신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내리쬐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그 뜨겁고 하얀 햇빛이 여자의 일그러진 고운 얼굴과 새빨간 피 칠과 헝클어진 머리를 적나라게 비추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도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 표현하고 싶다. 마음 같아선 여자를 버리고 차를 몰고 가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곳은 민가도 멀어 택시가 들어오기도 힘든 곳이다. 원인이야 어떻든 결론적으로 여자를 다치게 해 놓고 차편도 없는 이런 외진 곳에 여자를 두고 갈 수도 없다. 평화롭고 한산한 공원의 배경에 기괴한 모습으로 뚝하고 떨어진 것 같은 여자. 이 너른 공원 주차장에서 몇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여자를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차를 뒤져본다. 아까 검은 양산을 챙겨 나오는 걸 봤는데, 조수석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다. 뒷좌석 바닥에 떨어진 양산을 주워 들고 용기를 내어 차 문을 열고 나간다.
여자에게 머물던 시선들이 일제히 남자에게 꽂혔다. 다들 신경 쓰지 않는 척,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곁눈질로 하는 그들의 경계심은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있다.
여자에게 다가가며 양산을 들어 보였다. 여자는 다가가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듯 놀라 후들거리는 다리로 더 멀리 도망쳤다. 아직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가까이 더 갔다간 제 발에 걸려 다칠 것 같아 포기하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10분쯤 지났을까. 공원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보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