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걸림 - 정보위주
나는 아무래도 블로그 제목을 좀 과장하는 버릇이 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워킹홀리데이라는 말은 쓸 수가 없다. 만 35세 이하의 한국인이 영국에 2년동안 자유롭게 머물면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이 비자의 이름은 YMS, Youth Mobility Scheme 이다. 워킹홀리데이가 아니다. 이 비자가 워킹홀리데이와 똑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실정 덕분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홀리데이를 가는 사람에게 당연히 실업급여를 줄 수 없겠지. 아무튼 난 홀리데이를 온 게 아니다. 난 외노자가 되러 왔다. 세상이 넓고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와이낫. 또 내 직장 내 어려움이 환경에 따라 바뀌는지 안 바뀌는지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한국 직장의 문제 중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들 몇 가지가 영국에는 없을까 궁금했다.
실패를 거듭하며 열심히 구직 활동을 1년간 한 끝에 구직했다. 그래서 성공기라고 부르긴 하는데, 한국인에게 성공이란 이보다 훨씬 고고하고 위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좀 거짓말 하는 느낌도 든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기간제 계약직이다. 그렇지만 목표한대로 큰 기관에 들어왔다. 9월 입사해서 이제 10월 말이니 두달이 다 되어 간다. 아직도 새내기다.
아무튼간에 제목에 이끌려 클릭한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성공 했는지 말해야 할 것 같다. 크게 대단한 직장도 아니고 크게 대단하게 한 것도 없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나이 (만) 서른 둘에 영국에 왔고 한국에서 사무직 경력이 한 5년쯤 있다. 특별히 어떤 전문분야에 잘 형성된 커리어는 없었다. 블로그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것저것 하며 살았기에... 그래서 지원하면서도 계속 온라인 코스 같은 걸 들었다.
일단 과정을 간단히 공유하자면, 영국 땅에 떨어진 날부터 잡오퍼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3개월이다. 지원은 한 20-30번 사이로 한 것 같다. 많이 낸 편은 아닌데, 낼 때마다 정성껏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맞춤 제작했다. 면접 오퍼 단 한 번 받았고 그 포지션에 잡오퍼도 받은 것이다.
그냥 내가 큰 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큰 곳일 수록 다국적/다문화가 이미 형성되어 있을 것이고 작은 곳은 외국인을 고용하는 리스크를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이건 비자 정책이 어찌 되는지 몰라서 그런 거긴 하다. 이제야 아는 것이지만 비자가 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기간제한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는 있다. 물론 현재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적합한 비자를 제출하지 못하면 잘린다. 아무튼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비자 스폰서를 하지 않으면서 YMS 기간 내에 계약기간이 끝나는 포지션을 집중공략했다. 물론 계약직이 아닌 데도 지원했다. 정 안 되면 temp office 에도 가려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신입 자리를 노렸는데, 이건 좋은 결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영국의 job market이 갓 졸업한 젊은이들에게 지금 좋은 형편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중반부터는 저연차/저연봉이지만 경력이 필요하긴 한 직책을 주로 노렸고 이때 내가 이상적인 경력 수준 (최소 요구사항보다 조금 긴) 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직종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썼다.
집 주소를 이름 바로 옆에 넣고, 대학 평생교육원 같은 데서 수업을 들어서 학력란에 그 대학 이름을 넣었다. (물론 내 학위는 한국 대학교 밑에 썼고, 정확히 평생교육원 같은 데서 강의만 들었다는 사실은 표시했다. 좀 작게...)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내 전략이었다. 내가 채리티숍에서라도 봉사활동을 했다면 그것도 구조상 최대한 잘보이게 넣었을 것이다. (사회불안이 심해진 바람에 안 해서 못 넣음)
한국의 정보를 단순히 직역하지 않고 현지에서 자주 쓰는 단어로 현지화를 했다. 예시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대학 성적을 GPA 4.0 같이 쓰지만, 영국에서는 2:1 같이 별도의 시스템을 쓴다. 이런 것은 현지화 했다. (서른 두살이기에 실제로 대학 성적을 적지는 않았다. 단순 예시임!) 시청에서 했던 활동은 굳이 '어느시 어느단체' 정식명칭으로 쓰지 않고 그냥 municipal 어쩌고라고 의미만 전달되게 썼다. 한국에 살면서 썼던 영어 이력서의 Non-profit 같은 단어는 현지에 살면서 더 많이 접하는 Charity 같은 단어로 바꿨다.
이 전략은 구직 후기에 추가한 것인데, 내 경력이나 학력이 전부 한국이다보니 내가 실제로 이 지역에 살며 비자가 있고 스폰서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은은하게 강조하기 위해 내 개인적인 말을 추가했다. '최근에 이 지역으로 relocate 하였다...' 이런 식으로
지난 직장에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 정부 기관, 대사관 연관된 일을 했던 부분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 name droppping 을 좀 했다. 워낙 큰 회사/브랜드들은 연결되어 일하지 않은 사람 찾기가 더 힘들겠지만 아무튼간 브랜드명을 구체적으로 나열해서 내 요약문에 썼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 때 면접 오퍼를 받았다.
전략은 아니지만 중요한 정보: 런던이 아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런던은 좀더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 자리도 더 많겠지만 사람도 훨씬 많으니까. 나는 영국 중(?)도시에 산다.
사실은 구직 9개월차에 현재 직장에서 면접 오퍼를 받았다. 처음 받은 면접 오퍼라 아주 행복했고 너무 많이 떨었다. 그때 면접에서 떨어졌었다. 낙심해서 구직활동을 잠시 중단 한 채 단기적인 일만 간혹 구해서 하고 있었는데, 지난 7월에 연락이 왔다. 재면접 보지 않고 informal job offer 를 받았다. (일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4명정도 참석했지만, Hiring manager만 질문을 했다. 모두에게 똑같이 물어보는 정해진 질문 5개 정도 받았고 크게 팔로업 질문이나 나를 궁금해 한다는 인상도 들지 않았다. 준비는 진짜 많이 했는데 10분? 15분만에 진짜 속전속결 끝났다. 포지션이 저연차 어드민이라 그런 것인지 사람은 이미 내정하고 면접은 이력서 내용 확인용, 커뮤니케이션 능력 컨펌용(?)으로 가볍게 보는 듯 했다. 좀더 치열한 경우,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 경력직인 경우 면접이 당연히 더 심층적일 거라 예상한다.
informal offer 를 수락한 뒤 conditional offer letter 를 받았다. 여기에는 연봉도 써있다. 뒤에 내가 동종업계 경력이 있고 광고된 기본 요구사항보다 경력이 많으니까 급여 올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offer letter 에 나온 Pay Grade에서 한 단계 올려줬다. 한 단계만 고작 올려준 것이 조금 불만족이었지만 내가 수동적으로 물어보기도 했고 다른 오퍼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감사히 받았다. 이메일 하나 더 써서 몇 백만 원 돈 더 받게 된 것이니 모두들 한번은 협상 시도하시기 바란다. 물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플로우로 요청했다: 인포멀 오퍼 감사합니다. 레퍼런스가 성공해야 포멀 오퍼를 준다는 거 알고 있고 레퍼런스를 잘 제공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내 샐러리를 올려 줄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탐색하고 싶습니다. job description의 desirable experience인 3년 이상의 경력, 같은 업계의 경력이 있고 첫 시작부터 더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다음날쯤 '매니저와 동의하에 한 단계 올려 주겠습니다. 연봉은 얼마얼마입니다. 인포멀 잡 오퍼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답변이 왔다. '네 수락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협상 끝났다.
한국의 많은 포지션은 레퍼런스가 필요없지만 영국은 대체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레퍼런스를 주기로 한 사람의 이름, 직장, 직함, 나와의 관계, 직장 이메일주소를 주면 HR 직원이 연락을 취한다. 그래서 어떤 과정이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국 마지막 직장과 영국 단기 일로 알게 된 분이 레퍼런스를 잘 제공해 주셔서 contract 받고 취업 완료.
첫 출근까지 약 한달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하도 갈 데 없고 속한 데 없는 심정으로 1년 이상을 지냈어서 첫 출근만을 기대하고 고대하며 새 옷도 사보고 했지만... 첫 출근을 못하고 응급실에 가게 되는데... 그 얘기는 추후에 해보자.
영국 직장 새내기 생활 2개월 현재 한국의 직장 문제 중 내가 많이 어렵게 느낀 점들 중 몇 가지는 해결이 되었다. 이것도 자세히 다음에 써보겠다는 다짐만을 남겨놓고 점심시간에 대충 휘갈긴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공사의 구분이 불균형한 점 - 사적인 일로 회사 일에 지장을 주면 절대 안 되지만, 회사 일은 내 개인 영역을 침범해도 되는 문화
근무시간 40시간도 너무 긴 점
없으면 외롭고 있으면 숨막히는 동료 관계 - 있을 때 숨막히는 이유는 신변조사를 너무 빡세게 해서
모국어가 주는 피로함 - 말의 뉘앙스가 크게 다가오는 점, 여러 계층의 존댓말 시스템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음
Photo by Hamish Kale on Unsplash
사진은 내용과 무관합니다 - 사진의 건물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ㅎ_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