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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자전거 괜히 탔다

영국의 자전거 문화는 한국이랑 너무 다르다!

by 선율

Photo by Tomek Baginski on Unsplash


때는 2023년 9월, 난생처음 유럽에, 영국에, 런던에 갔을 때다. 영국 문화야 유명한 것만 알았지 자세한 건 모르고 그냥 얼떨결에 런던에 떨어졌던 나... (지금은 잃어버린) 환상과 로망으로 약간 설렜던 것 같다. 런던 하면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서울과 반대로 엄청 평평한 지형, 길거리를 활보하는 자전거들, 주말 레저뿐 아니라 도시 속 일부로 녹아있는 자전거 문화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자전거 인프라도 잘 되어 있겠지. 자전거 매너도 좋겠지. 운전자들도 자전거를 많이 배려하겠지.


9월 중순이니 가을 하늘 공활하고 날씨는 맑고 (서울 사람으로서 미세먼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런던 공기는 무척 맑게 느껴졌다.) 바람은 선선-쌀쌀했다. 오후 5시 즈음 워털루 다리 인근에서 일정을 마치고 베이커 스트릿 어딘가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자전거를 타보기로 결정했다. 일단 런던 지하철, 튜브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으며, 버스는 너무 느려서 멀미가 났고, 구글 맵에 경로를 탐색해 보니 5km 채 안 되는 거리여서 자전거가 튜브만큼 빠르다고 나왔다. 그래서 마음을 딱 먹고 인근 샌탠더 Santander 자전거 (따릉이 같은 시스템이지만 샌탠더는 은행 이름이라 좀 정 떨어진다) 빌리는 대여소를 찾아갔다.


서울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20km가량 되는 출퇴근 길을 자전거로 다니던 나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5km 면 정말 가벼운 마실 수준이 아니가. 영국과 서울은 운전 방향이 반대이긴 하지만, 남들을 따라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영국의 수신호는 다른가 싶어 검색해 보니 뭐 거기서 거기였다. 나름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빨리 달려도 봤고, 붐비는 역 근처에서 사람들이나 오토바이를 피해서도 다녀봤고, 자동차랑 나란히 달려야 하는 시내 도로에서도 달려 봤기 때문에 나름대로 다양한 주행환경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사히 목적지에는 도달했지만 주행하는 동안은 정말 계속 후회했다. 고작 5km 달릴 동안 포기할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일단 첫 번째 후회는 대여 비용이 무척 비싸다는 점이었다. 돈 없이 해외 나가면 참 재미가 없다. 이왕 마음먹은 거 한 번은 해 봐야겠어서 해보는 거지만, 튜브와 그다지 금액 차이도 없을뿐더러 기본 1시간인 따릉이와 달리 기본료로 20분밖에 못 탔다. 그 시간을 넘어가면 20분 요금이 다시 빠져나가는데(기억 흐릿하니 믿지 마세요), 그럼 튜브보다 훨씬 비싸진다. 구글 맵 예상 시간이 15분이었고, 큰길을 따라가는 경로이니 헤매지도 않겠지 싶어 20분 만에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실패했고 45분쯤 걸려서 요금 세 번 청구당했다.


두 번째 후회, 생각보다 힘들고 오래 걸렸다. 예상외로 워털루 다리 북쪽 극장이 많은 동네(?) 올라가는 길에 경사가 있었는데 따릉이 못지않은 무게를 자랑하는 샌탠더를 몰고 올라가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땀을 삐질삐질 흘렸는데 당황하고 무서워서였는지 고개를 넘느라 그랬는지 솔직히 기억은 안 난다. 구글 경로상 우회전을 해야 되는데 거기서 우회전 하는 방법을 몰라서 직진을 해 버렸다. 경로 이탈하고 길을 다시 찾느라 또 시간이 지체됐다. 뿐만 아니라 하필 퇴근 시간대에 운전을 하느라 자전거가 우글우글했는데, 다른 운전자들과 어느 정도는 속도를 맞춰야겠다는 압박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니까... 그들은 매일매일의 스피디한 자전거 출퇴근으로 단련된 몸... 상식적인 무게의 자전거를 소유했으나... 나는 체감상 따릉이보다 2배 정도 무거운 샌탠더를 끌고... 끙차끙차 하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cq5dam.web.1280.1280.jpeg 기분상 따릉이보다 2배 무거워 보이는 샌탠더 공유(?) 자전거


이제 와서 아는 거지만, 자전거도 우회전은 자동차와 동일하게 운전을 해야 한다. 즉 제일 바깥 차선 끄트머리에서 쭈굴쭈굴해서는 안 되고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한 뒤에 신호를 받아서 자동차들과 함께 우회전을 해야 했다. 그때는 한국인의 정서로 그 방법을 상상할 수 없어서 계속 '어떡하지 어떡하지' 생각만 하다가 근처에 같이 정차 중인 자전거 운전자한테 물어봤다. 그 사람은 '모르겠다면 횡단보도로 건너라'라고 조언해 주었다. 런더너 치고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이제야 다시 알게 된다. 인도로 올라와 끌바(자전거 끌기)해서 횡단보도로 건넜다.

내가 알기론 한국에서 좌회전을 할 때도 도로법상은 똑같은데, 그냥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잘 없으니 자동차들에게 치일까 봐 무서워서 더 안 하게 되고, 그런 사람을 못 봤으니 자동차들도 배려가 없고.. 위험하게 느껴지니 횡단보도 옆에 자전거 건너는 전용 도로가 마련되고.. 이런 순환 속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세 번째 후회 이유. 너무 무서웠다. 이미 계속 얘기했던 것 같지만, 차들 옆에서 다녀야 하니까 실수를 하면 큰 사고를 내겠다 싶어 겁났다. 한국 운전자들에 비하면 자전거랑 다니는 게 일상화되어 있는 런던 운전자들이지만 여전히 일부 운전자들은 너무 빨리 다니거나 너무 가깝게 추월했다. 맑은 날씨, 혼잡 시간대에 자전거 군단과 함께 이동하는 상황이라 운전자가 날 못 보고 칠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빠른 속도로 추월하니까 보고도 칠 것 같아서 무서웠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들조차도 속도를 늦추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는 듯해서 위협적이었다. 퇴근해서 그 누구보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 속도를 맞춰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엔 공감하지만 말이다.


images-2.jpeg 벌써부터 너무나 그리운 서울의 자전거 도로


한강 자전거 도로도 퇴근 시간엔 사람들이 붐비고 온갖 자전거들이 다니니 유난히 빠른 자전거들이 위협적이었지만, 자전거 도로에는 교차로나 신호등이 없어서 주의 분산이 덜 됐다. 게다가 자전거를 갓 타기 시작하는 한국인이라면 한산한 자전거 도로에서 슬렁슬렁 타볼 수가 있다. 자전거 탄 채로 도로 이용하는 법을 완벽히 숙지하지 않아도 일단 앞으로만 가면 되니 가능하다. (물론 위험하게 타다가 접촉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나 비틀거리는 초보보다는 방어 운전 하지 않고 너무 빨리 달리는 쪽에 책임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영국에는 그런 길이 드물다. 도시 내 운전은 대부분 자동차 옆 운전이라고 보면 된다.


초보든 누구든 자전거 모는 법을 정확히 모르면 차에 치여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자전거 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여러 비영리 단체 혹은 자전거 가게에서 도로 운전 트레이닝이나 수업을 연다. 나도 요즘 자전거를 다시 타보려고 이론 공부 중이다. 우리 지역 자전거 문화 로비하는 비영리 단체에 가입도 해 놨다.


근데 의외로 영국은 한국에 비해 그리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는 아니다. 한국이 영국보다 1인당 자전거 주행 km 거리가 2배 이상이라고 한다(확인필요).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뇌피셜주의!!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단 (1) 도시 중심지 사는 사람 아니고는 다들 차를 몬다. 영국은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아서 주거지역 면적이 하염없이 펼쳐진다. 아파트 단지 3분 거리 편의점 이런 건 없고... 지하철 있는 도시도 거의 없다. 즐거움을 위해 자전거를 타기에는 그냥 차 다니는 길이라 재미없을 것 같다. 도시 외곽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하려 해도 자전거 길이 없고 자동차들이랑 같이 가야 하니 위협적이다.


(2) 자전거를 몰기 좋은 도시 내에서는 자전거 도난이 너무 횡횡하다. 집 앞에 묶어놔도 훔쳐가고 D락으로 묶어놔도 잘라 가고 아주 난리다. 한국도 도난이 왕왕 있는 편인데, 영국은 정말 너무 심하다. 한 달에 10파운드 가까이하는 자전거 보험을 흔히들 들 정도다. 자전거를 타보려는 사람들에게 장벽으로 작동한다. 나도 내 애마를 도둑맞으면 한 10년은 자전거 안 탈 것 같다. 심지어 요새는 브랜드 자전거나 전기자전거를 노려서 속도를 늦춘 사이에 그냥 자전거를 낚아채 갈취해 가는 강도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 무섭기 짝이 없다.


(3) 게다가 영국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부실하다. 한국처럼 길게 늘어져 있지도 않은 데다가 보행자나 자동차로부터 완전 차단이 안 되어 있는 일이 허다하다. 자전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외곽으로 나가서 차가 덜 다니는 길에서 타거나 그래블, MTB로 오프로드를 간다. 전 세계 어느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자전거 전용도로 혹은 자전거로 다녀도 안전한 도로를 좋아한다. 다소 단조롭고, 공기가 안 좋을 때도 있고, 일상에서 살짝 동떨어져 있을 수는 있으나 경치 좋고, 도로가 하염없이 깔려 있고, 자동차가 못 들어오는 한국의 자전거 도로가 얼마나 좋은 건지 새삼 느꼈다.


그렇지만 한국보단 사망사고가 덜 일어난다고 한다. 한국만 유별나게 통계 트렌드에서 벗어나 국민 1인당 자전거 주행거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사고가 많이 난다. 아래 그래프의 흰 선이 국민 1인당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 km. 검은 막대가 자전거 이동 거리 당(10억 km) 사망자 수이다. 그래프가 보여주는 트렌드는 더 많이 자전거를 탈 수록 사망 사고가 적다는 건데 한국은 유난히 사망자 수가 많다. (왼쪽 끝 네덜란드 1인당 주행 거리 >>> 넘사벽 >>> 오른쪽 끝 미국 1인당 주행 거리, 네덜란드 자전거 주행 10억 km 당 사망자 <<< 넘사벽 <<< 미국 사망자)

Screenshot 2025-04-01 at 19.57.46.png https://www.youtube.com/watch?v=DKbRL6Opifg&pp=0gcJCfcAhR29_xXO


내 추측으로는 한국은 주말에 날 잡고 장거리 라이딩을 하거나 저녁 먹고 선선하게 마실 나가기 좋은 인프라가 아주 훌륭하지만, 영국처럼 도시 도로나 국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운전자들이 일절 주의하지 않고(일부러라기보단 인식 부족), 자전거 운전자도 교육이 부족해서 사고에 취약한 게 아닌가 싶다. 단순 뇌피셜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주시길. 저 도표도 사실 유튜브에서 본 거 2차 인용이라 진짜인지도 모르겠고 몇 년도인지도 모르겠고 출처 문서가 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원본 확인을 못 했다. (이 통계 찾는 법 아시는 분 댓글 부탁드려요!!)


요즘 한국도 날씨가 아름답고 영국도 날씨가 예뻐서 자전거가 타고 싶다. (아직 영국에 자전거가 없기도 하거니와) 저기 자동차들 다니는 길 가기 싫고, 칙칙한 터널 지나기도 싫고, 그냥 평일 낮에 아라뱃길까지 한산하게 마음 놓고 자전거 도로 쭉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처음 런던에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도 떠올려 보는가 보다.. 자전거 때문에 한국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민자들은 다들 자기가 살아본 나라들의 장점만 모은 궁극의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게 되는 것 같다.


생각이 많아서 인생 살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글이라도 많이 쓰려고요. 누구나 생각에 시간을 쏟아붓지는 않기 때문에, 저의 결과물들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깨달음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구독하고 종종 읽어 주세요.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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