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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동화 Mar 10. 2023

연필로 쓰기/ 정진규/ 지워버릴 수 없는 생애







< 연필로 쓰기 >

- 정진규 -




한밤에 홀로 연필을 깎으면 향그런 영혼의 냄새가 방안 가득 넘치더라고 말씀하셨다는 그 분처럼 이제 나도 연필로만 시를 쓰고자 합니다. 한 번 쓰고 나면 그 뿐 지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그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지워 버릴 수 있는 나의 생애,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나의 생애, 용서 받고자 하는 자의 서러운 예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온전치 못한 반 편 반편도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잘못 간 서로의 길은 서로가 지워드릴 수 있기를 나는 바랍니다. 떳떳했던 나의 길, 진실의 길, 그것마저 누가 지워버린다 해도 나는 섭섭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추고자 하는 자의 비겁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오직 향그런 영혼의 냄새로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연필로 글씨를 쓰듯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잘못 뱉은 말은

지우개로 지우듯

금새 사과하고




아름다운 말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게

여러번 겹겹이 눌러 쓰고




모두 잠든 한 밤

홀로 연필을 깎듯

마음을 단정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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