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강원도 기차라고 모두 바다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백두대간을 시작하기 전 보았던 어떤 책자에 '검룡소' 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의 한강을 이루는 물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검룡소' 이다. 하지만 검룡소는 한강 발원지라는 의미를 넘어, 그 일대의 풍경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닐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존된 곳이라고 했다.




하늘다람쥐라니!

다람쥐가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니!




게다가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 천지라서, 이 시기에는 금대봉-대덕산-검룡소로 이어지는 꽃길을 꼭 걸어봐야 한다고 했다.




천혜의 자연이 보존된 곳인 만큼 검룡소는 입장신청을 해야만 가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하루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객의 수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리 태백시 관광안내과에 전화해서 검룡소 입장에 대한 문의를 했었다. 그런데 11월 1일부터는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장 자체가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었다.




그래서 아예 마음을 접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막상 금대봉 정상에 도착하고 보니 검룡소방향으로 입산통제 현수막도 없고 감시초소나 감시자도 없는 것이다.




검룡소로 갈까? 확 가버릴까?

순간적으로 고민했지만

나는 검룡소가 아닌 대간길을 택했다.





SE-bca290ea-e172-44ae-8671-6eb4aa8296dd.jpg?type=w1





야생화도 초록풀도 없이 짙은 갈색의 마른가지뿐인 이런 계절에, 다람쥐고 하늘다람쥐고 모두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버린 이런 계절에, 굳이 통제를 무릅쓰고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검룡소는

그곳이 가장 아름다울 계절에

다시 와봐야겠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길이다. 두문동재는 윗고개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국도와 그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도 있다. 나는 오늘 국도와 만나는 두문동재에서 백두대간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다.




금대봉에서 두문동재로 내려가는 길은 등산로 처음부터 끝까지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 목책마다 '출입금지' 라고 씌어있었다. 알고보니 이 일대가 모두 야생화보호구역이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오르면 누구라도 꽃의 유혹에 홀려 꽃밭으로 발을 들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출입금지를 써붙인 모양이다.




야생화가 절정일 때 금대봉과 검룡소를 꼭 다시 와봐야 겠다. 그때쯤이면 풍력발전기가 있는 고랭지배추밭도 초록이겠지? 4박5일 정도 여유를 두고 이 일대를 모두 걸어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거야!




두문동재에 도착하여 오늘의 종주를 마무리하고 국도를 따라 태백시내 쪽으로 걸었다. 두문동재의 산 밑으로 직선으로 뻗은 터널이 있기 때문에 구불구불 이어지는 윗길 국도로는 지나가는 차량이 없었다. 차가 없는 국도의 한가운데를 걸었다. 차도의 노란색 중앙선을 따라 지겨워질 때 까지 걸어보는 것도 나의 로망이었다.




10분쯤 걷다보니 뒤에서 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잽싸게 차도에서 갓길로 벗어나 두 손을 훠이훠이 흔들어 차를 세웠다. 1톤 정도의 작은 트럭이었다. 운전석에도 조수석에도 사람이 있는데 내가 얻어 탈 자리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이미 차는 섰다.




"저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요,

아무데나 시내버스정류장 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SE-0719ec88-10d9-4f19-a2d8-014b3a1f7b5f.jpg?type=w1





운전석의 오빠뻘 청년이 흔쾌히 타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수석의 동생뻘 청년더러 땡겨 앉으라고 한다.




"괜찮아요.

저는 뒤에 타도 돼요~"




트럭의 짐칸을 가리키며 말했더니 아니란다. 다같이 충분이 앉을 수 있단다. 나는 트럭의 짐칸에 배낭을 던져두고 동생뻘 청년 옆에 앉았다.




트럭의 청년들이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공무원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마트 직원들이라고 했다.




"태백에 이마트도 있어요?

우와~ 완전 좋네요?"




"생긴지 얼마 안됐어요.

원래는 마트차량을 타고 다니는데

오늘은 어쩌다보니 일반차량을 타고

외근 나오게 되었네요. 하하."




지금은 외근을 끝내고 이마트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때마침 마트와 터미널이 가까우니 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며 천사같은 말씀을 하신다.




오빠같은 청년은 고향이 충북인데 이 곳으로 발령받은지 한달 조금 되었고, 동생같은 청년은 태백 토박이라고 했다. 동생같은 청년에게




"우와~

정말 좋은 곳에 사시는 군요?" 했더니




"그럼요. 좋지요.

일 년에 반 이상이 겨울인 것 빼곤 다 좋아요.

여기는 어린이날에도 눈 내리는 곳이에요.

들어 봤어요?" 한다. ㅎㅎㅎㅎㅎ




오빠같은 청년에게




"좋은 곳에 오셨으니

많이 둘러보세요~" 했더니




"네. 선배들이 그러더라구요.

태백에 오면 처음 일년은 정말 좋다구요.

그런데 딱 일년만 지나면 갑갑해서 미쳐버린대요."

한다. 아하하하하하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웃었다. 계속 웃었다. 고장난 기계처럼 웃기만 했다. 아하하하하하




태백에는 시외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바로 지척에 있었다. 항상 버스만 타고 다니는 여행길이라 이번엔 기차를 타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이마트 청년들은 친절히도 태백역 바로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덕분에 편히 잘 왔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근무중에 땡땡이 쳤네요. 감사합니다."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쿨하게 헤어졌다.





SE-0de4b479-87a2-4fef-bd79-78005d0679a0.jpg?type=w1





태백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박배낭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어 일반실이 아닌 좌석 넓은 특실로 정했다. 그리고 기차역의 화장실로 가서 여느때처럼 수건목욕을 했다. 깨끗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청량리행 기차에 올라탔더니 오후 4시 40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가 출발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바다가 나타나지 않는 거지?




학창시절에 공부도 안하고 매일 잠만 잤던 나는 태백이 내륙지방인지도 모르고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버스가 아닌 기차를 택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도를 찾아보았다. 삼척이나 양양처럼 내륙도 넓지만 바다를 품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태백은 철저히 내륙지방이었다. 만에 하나 태백이 바다에 인접한 항구도시라 하더라도 서울로 향하는 기차가 바다를 끼고 달릴 일도 없었다.




이런 바보 멍청이... 뭐 어쩔 수 없지. 바다는 없어도 산간지역이니 산 풍경을 보며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해가 짧은 겨울은 5시쯤 되자 이미 창 밖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져 버렸다.




이런 바보 멍청이!!

이 깜깜한 창문이나 쳐다보자고 버스보다 1시간이나 더 걸리는 기차를 선택한 거냐? 학창시절 기를 쓰고 공부안 했던 내 자신과, 서울까지 가는 경로나 시간도 계산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기차에 올라 탄 내 자신을 구박했다.




태백에서 출발한 기차는 정확히 4시간 후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이용한 것 보다 1시간이 더 걸렸지만, 시외버스터미널보다 청량리역이 집과 더 가까워서 서울에 도착하고 난 이후로는 여느때보다 더 편했다. 세상사 무슨 일이든 일장 일단이 있는 것이다.




잘못 한 선택이라도

바보같은 선택이라도

그것이 철저히 나쁜결과만 가져다 주는 일은




세상에 없다.




나의 몸은 완전히 상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몸살기운이 살살거렸다. 딱히 아픈곳은 없는데 기운이 없고 계속 피곤했다. 그래서 또 일주일을 쉬어버렸다.




처음에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본다고 일주일을 쉬고, 그 다음엔 설사병이 나서 일주일을 쉬고, 이번에는 힘이 없어서 일주일을 쉬었다. 백두대간은 이제 겨우 1/3 정도 진행했는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종주를 완주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몸이 아픈 이유가 뭘까? 산에서 잠을 못 잔 탓일까? 추위로 몸이 상한 탓일까? 몸이 상해가는데도 나는 그것이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산에서는 말린국에 누룽지와 양갱 초코렛 등 행동식만 먹었고, 하산하고 내려와도 따로 몸보신을 해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 나는 거의 먹지 못하고 살았다. 새엄마는 새벽 5시면 뺨을 때려 나를 깨웠다. 그리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게 하고 학교로 쫓아냈다. 밤 9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면 불같이 화를 냈고, 10가 넘어 돌아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집에서 끼니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일년 반을 지내다가 고3 5월에 집을 나와버렸다. 알바비를 모아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쪽방을 구해 독립한 것이다.




학교를 마치면 알바를 하러 가서 식당 문이 닫을 때까지 일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달에 20만원 정도. 월세 10만원과 핸드폰 요금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얼마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먹는 것을 줄였다. 최대한 먹지 않고 버텼다.




그래서 나중에 취직을 하고 제대로 된 월급을 받게 된 이후에도 식사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못했다. 배가 고프면 먹었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플때도 어렸을 때 먹지 못한 입에 달고 몸에 안좋은 그런 음식만 먹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허기만 채우면 되는 것인줄 알았다.




열 아홉의 습관이 아직도 몸에 남아 하루 8시간 등산이라는 체력소모를 하면서도 에너지보충은 보통 사람들보다 못했다. 하지만 나는 식습관을 개선해 볼 생각은 못했다. 그저 추위때문에 수면부족때문에 기운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이나 집에서 쉬었는데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이번에는 야간산행에 도전했다.




종주가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몸이 회복될 때 까지 늘어져 있어도 될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벌써 저축의 반 이상을 써버렸다. 돈이 떨어지기 전에 종주를 마쳐야 했다.




그래서 일요일 밤

11시 막차를 타고 태백으로 향했다.





SE-0d179c10-f399-4e73-ba53-3e6441ea3eed.jpg?type=w1





심야시간인데도 터미널엔 사람이 많았다. 예매같은거 하지 않아도 충분하겠거니 했는데 웬걸, 버스가 만석이다. 버스에 오르며 티켓을 받는 운전기사님께 여쭈었다.




"태백에 도착하면 새벽에도 택시 있겠죠?


"그럼. 당연하지. 어디로 갈건데?"


"두문동재로 가서 백두대간 타려구요."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고 택시비 반반하자."




기사님 댁이 두문동재 너머 마을인데 심야 막차라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 한다고 하셨다. 안그래도 태백에 도착하면 택시 동승자를 찾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나는 최대한 돈을 아껴가며 종주를 이어가야 했다.




"오! 좋아요!"




흔쾌히 기사님의 제안을 수락했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15구간

진행 구간 : 금대봉(정선과 태백의 경계)-두문동재-히치하이킹으로 태백역-서울에서 일주일간 휴식

진행 날짜 :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episode40.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 40 -


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월요일에 다시 만나요 ♥








파란동화










이전 19화#39. 영하의 날씨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