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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쫄면을 먹다

서울, 하루 여행 : 명동과 쫄면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by Sunyoung Choi

명동에 가면 으레 코스는 정해져 있다. 4호선 명동역을 내려 타박타박 출구를 올라가 쭉 뻗은 퇴계로를 따라 신세계 백화점 방향으로 걷는다.


대로변의 소월로 방향 소통 원활, 이라고 적힌 전광판을 스치듯 지나며 퍽이나 시적인 길 이름이군, 무심결에 생각했다. 그리고 봄에 남산길에 피어 있을 진달래 꽃을 떠올린다. 정말 김소월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타박타박 걷다 보니 어쩐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 생각이 간절해져, 길거리 음식을 찾아 헤맨다. 정체 모를 건어물과 양말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지도를 뒤적여 한 중화요리 대가가 극찬했다는 분식점에 들어간다. 의도하지 않은 90년대스러운 빈티지한 내부엔 커다란 창문이 있어 명동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살금살금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속삭이는 젊은 프랑스 여인들 두 명 맞은편에 앉아 쫄면과 군만두를 시킨다.



시금치나물과 콩나물 무침을 더한 쫄면이 이채롭다. 아삭한 식감과 알싸한 매운맛이 다른 쫄면과는 분명 다르다. 군만두는 흔한 중국집 비주얼이 아닌, 흡사 찐만두를 그대로 튀겨 난 모양새다. 고소한 육즙을 논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썩 쫄면과 잘 어울린다.


원래 일정에 있던 옛 주한 대만 대사관을 개조한 고즈넉한 목조 카페는 사람이 꽉 차 있다. 명동역 바로 옆에 숨어 있는 조용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간결한 일본식의 창살 사이로 어렴풋이 비치는 대나무를 감상한다. 쌉싸름한 말차 가루가 얹힌 녹진한 치즈크림의 티라미수는 향미가 좋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좋은 조합이다.



커피를 홀짝이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이란 질문에 주저 없이 냉면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불현듯, “아까 먹은 쫄면도 냉면이랑 한 가족인걸!”이라고 덧붙였다.


1970년 인천의 한 국수공장에서 냉면을 뽑으려다 실수로 만들어졌다는 쫄면은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식 마니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냉면용 면발보다 두껍게 만들어진 탓에 폐기 처분될 운명이었던 이 두꺼운 면발은 공장 옆 “맛나당” 분식점에서 새로운 별미로 다시 탄생한다.


코로나로 명동이 유령 도시로 바뀌어 버렸다는 뉴스가 들려온지도 벌써 햇수로 이 년 째다. “폐업”이란 글씨가 곳곳에 붙어 있는 풍경이 서글프다. 하루빨리 이 비극이 종식되어, 극적인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던 쫄면처럼 명동의 부활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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