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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도나스

서울, 하루 여행 : 따뜻하던 90년대 서울의 부엌 속으로

by Sunyoung Choi

갓 눈 뜬 강아지처럼 고물고물 하던 내 눈이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라본 우리 집 부엌은, 온통 노란 색깔이었다.


노란색 부엌의 장판, 그리고 샛노란 포장지와 불그스름한 오뚝이를 닮은 로고가 선명히 박힌 채 선반에 놓여 나를 설레게 했던 도나스 가루.


노란 햇살이 비치는 아침 날 졸린 눈을 비비며 본 아버지의 남색 양복 입은 깡마른 뒷모습을 기억한다. 서울 귀퉁이의 노란 장판이 깔린 자그마한 복도식 아파트에 살던 우리 네 가족. 빤한 월급으로 토끼 같은 앞니를 가진 어린 자식 둘과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엄마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아버진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그 얄팍한 월급봉투를 쪼개고 쪼개 큰맘 먹고 산 간식거리. 엄마는 토요일이면 옥색 선반에서 노란 도나스 가루를 꺼내 물에 개었다.


솥에 보글보글, 기름이 끓기 시작하면 내 어린 심장도 설렘에 요동치기 시작하곤 했다. 동그랗게 모양을 낸 도나스 반죽에 구멍을 뚫는 건 언제나 조금 더 큰 내 몫이었다. 내복 차림으로 턱을 괸 네 살배기 동생은 옆에서 그 토끼같이 앙 다문 입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포슬포슬하게 튀겨진 노란색의 울퉁불퉁한 도나스를 베어 물면, 씁쓰레한 소다의 맛이 혀를 감싸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기름에 반질반질해진 손가락을 휘저으며 까르르 웃는 어린 두 남매를 바라보는 엄마의 그린 듯한 까만 눈에는 고단한 행복감이 담겨 있었다.


엄마의 손목은 닳고 닳아 이제 기름 가득한 솥을 들어 올리기엔 너무 연약해져 버렸다.


눈을 감으며, 노란색이 넘실거리던 90년대 서울의 부엌으로 가는 덧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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