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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Sep 16. 2022

마말레이드 샌드위치 어떠세요?

영국 여왕과 패딩턴 베어, 로열 마스코트가 된 곰돌이

은발의 여왕님과 정답게 마말레이드 샌드위치를 나누는 작고 복슬복슬한 곰돌이를 보신 적이 있는지? 때는 2022 엘리자베스 2 영국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 콘서트. TV 콘서트 직전 공개된 짧은 영상 하나가 영국인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호화스러운 붉은 양탄자가 깔린 궁전에서 사뭇 귀여운 , 패딩턴 베어와 영국 여왕이 다정하게 차를 마시는 콩트  편이 방송을  것이다.


사고뭉치 곰돌이는 여왕님과 티에 곁들여 먹을 케이크를 망쳐버리고 만다. 당황한 패딩턴 베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복슬복슬한 손에 들린 것은 오렌지 마말레이드 샌드위치다. 젤리처럼 과즙과 설탕, 과일의 껍질을 넣어 졸여 만든 과일잼의 일종인 마말레이드는 이 귀여운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저는 마말레이드 샌드위치를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곤 하죠.”


천연덕스럽게 샌드위치를 내미는 곰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우아한 손짓으로 늘 갖고 다니는 검은색 핸드백을 톡, 열어 꼭 같은 마말레이드 샌드위치 한 조각을 꺼낸다.


“나도 그렇단다. 난 핸드백에 넣고 다녀."


런던 패딩턴 역에서는 패딩턴 곰의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이후로 이 패딩턴 곰이 여왕의 추모 행사에 부쩍 등장하기 시작했다. 궁전 앞, 여왕의 초상화 옆에 놓인 빨간 장화를 신은 패딩턴 곰인형이 짝꿍을 잃은 것처럼 서글퍼 보인다.


영국 작가인 마이클 본드의 손에서 탄생한 이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곰돌이는 1958년 어린이 책에 처음 등장한 뒤로 영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지금까지 무려 3,000만 부가 넘는 판매부수와 3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본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녀석이기도 하다. 오죽이나 사랑받았는 녀석이었으면 1994년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 터널인 채널 터널을 첫 번째로 건너는 영예까지 안았겠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영국 곰돌이"로 불리는 녀석이지만, 사실 이 곰돌이의 고향은 페루의 정글이다. 런던 패딩턴 역에 기운 없이 슈트케이스 위에 걸터앉아 있던 갈색곰에게 매달린 "이 곰을 잘 보살펴 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노트를 발견한 마음씨 좋은 브라운 가족에게 입양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발견된 역의 이름을 따라 이름도 얼떨결에 패딩턴이 되었다. 페루식의 이름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덕분에 패딩턴 역은 이 곰돌이의 발자취를 좇는 팬들로 북적인다. 패딩턴 역의 한편에는 곰돌이의 작은 동상과, 지금까지 나온 패딩턴 동화책들로 가득한 기념품 샵도 발견할 수 있다.


화가 엘레노어 톰린슨이 여왕을 추모하며 그린 패딩턴 베어와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그녀가 생전 사랑해 마지않았던 웰시 코기의 그림은 소셜 미디어에 등장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화사한 연두색 코트를 입고 뒷모습을 보이는 은발의 여왕은 패딩턴 베어와 손을 잡고 먼 길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의 떠나는 길을 코기 강아지가 뒤따른다.


그렇게 한 시대의 상징이 사라져가는 길을, 패딩턴 베어는 조용히 배웅하고 있었다.




Copyrights © 2022 Sunyoung Choi All rights reserved.

해당 글과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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