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젠가가 되었을 때 오늘을 오늘만큼 기억할 수 있을까
수업 첫날 도예 선생님은 학급을 두 조로 나누어서, 작업실의 왼쪽에 모인 조는 작품의 양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오른편 조는 질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가 방법은 간단했다.
"양 평가" 집단의 경우는 수업 마지막 날 저울을 가지고 와서 작품의 무게를 재어, 그 무게가 20킬로그램 나가면 "A"를 주고, 15킬로그램에는 "B"를 주는 식이었다.
반면 "질 평가" 집단의 학생들은 "A"를 받을 수 있는 완벽한 하나의 작품만을 제출해야만 했다.
자, 평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모두 양으로 평가받은 집단에서 나온 것이다.
"양" 집단이 부지런히 작품을 쌓아 나가면서 실수로부터 배워나가는 동안
"질" 집단은 가만히 앉아 어떻게 하면 완벽한 작품을 만들까 하는 궁리만 하다가 종국에는 방대한 이론들과 점토 더미 말고는 내보일 게 아무것도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 루비박스
글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는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어얼 너 글도 쓴다며? 오올 너 작가야?라는 반응으로 혹여나 나의 글을 읽으러 왔다가, 뭐야 별 거 없구먼 하고 실망하고 갈 것만 같다. 독자를 의식한 글을 쓰기에 나는 무척 소심하고 늘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삶은 글을 쓰지 않았던 삶보다 훨씬 훨씬 훨씬 즐겁다.
늘 나만 읽는 메모나 일기만 써오다가 독자를 의식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그렇지만 내가 글을 처음 쓴 걸 그때로 치기엔, 살짝 애매한 이력이 있다. 고등학교 때의 동아리가 문예부였고, 그때 (우리 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문집에 수록할 글을 몇 편 적었기 때문이다. 그때 쓴 산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언젠가 회사에서도 은퇴를 하고, 내 아이들도 결혼을 시키고 난 후, 남편과 시골에 내려가 그 지역 사투리를 배우며 시와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랬던 내가 한창 회사를 다니는 중에 습작 단편 소설을 대여섯 편 완성했고, 브런치에서는 '작가' 소리를 듣는다. 이제 막 서른다섯 살이 되었으니 원래 계획보다 이삽십 년 빨라진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더 일찍 쓰기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혹시 언젠가, 성공한 후에, 은퇴한 후에, 삶에 여유가 조금 생긴 후에 글을 써보고 싶다면, 그냥 지금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십 년 넘게 언젠가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가 먼저 시작한 내가, 아직 언젠가로 미뤄두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오지랖 넓게 이 글을 썼다.
1. (이건 진짜 욕먹을 각오하고 쓰는 건데, 심지어)
브런치에도 글 못 쓰는 사람 정말 많다
아니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은 0.1도 없다. 맞춤법 띄어쓰기에 매번 헤매고, 어디에 글 한 번 투고해본 적 없는 초초초초보 작가가 다른 작가의 수준을 감히 평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종종 브런치에 올라오는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 비문을 발견하는 일도 종종 있고, 이 사람도 나처럼, 글을 오래 쓴 작가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금은 미숙해 보이는 글일수록 나는 홀린 듯이 빠져서 그 작가의 프로필을 타고 들어가 다른 글들도 더 읽게 되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문장이 전문 작가처럼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았는데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건, 그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통찰력 있게 다루는 글을 쓰기 때문이거나 솔직한 개인의 경험을 고백할 용기를 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내가 구독했던 작가는 나와 같은 경험을 통과하고 있는 작가였다. 그 작가분의 구독자는 오래 동안 일의 자리 수에 머물러 있었지만, 나는 그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격하게 공감을 하며 두 번 세 번씩 정독하고는 했다.
꼭 세상 가장 독특한 경험을 했거나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진게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자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 한 잔 걸쳤을 때 진심을 다해 고백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 혹은 회사 동료들과 점심 먹으면서 함께 욕하는 그 꼰대 같은 상사가,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소개팅에서 어이 상실해서 돌아오는 소개팅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2. 어차피 미룰 거면 오늘 글 한 편을 쓰고 미루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회사도 다니고 있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 / 육아도 해야 하고 어쨌든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당장 글을 쓸 여유는 없으니 '언젠가'로 미루게 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십 년을 미뤘다. 그러다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글 한 편을 블로그에 처음 써서 올렸다. 그 후 매일 아침 오늘은, 내일은, 이번 주는 글을 써야지 다짐했다가 미루기만 하다 어쩌다가 한 편씩 글을 써서 올렸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스무 편의 글이 쌓였을 때, 그중에 세 편을 모아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첫 도전에는 쏙 떨어지고, 두 번째 도전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건 2018년 9월인데, 그리고 일 년 동안 고작 세 편의 글을 올렸다. 나름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수술을 받을 일이 있어 일주일 휴가를 내고 혼자 집에서만 생활을 했을 때였다. 그때 썼던 글 18편과, 그 후에 한 달 동안 쓴 글 3편을 모아서 브런치북을 냈다. 고작 브런치북 하나를 만든 후에 지쳤다고 두 달간 또 글을 쓰는 일을 미뤘다.
2020년에는 더 부지런히 글을 써야지 다짐했는데도 나는 매일을 미루다가 오늘 겨우 노트북을 펼쳐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니까 진짜 성실한 사람 아니고서는, 혹은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글을 쓰기 시작해도 언제든 쓰는 일을 미루게 된다. 그나마 그래도 단 한 편이라도 쓰고난 후 부터는, 어쩌다 진짜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도 하는 날이 생겼다는 게 나에겐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3. 기다렸던 그 '언젠가'에 드디어 도달했을 때,
오늘의 이 감정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까
사실 나에게는 브런치 계정이 두 개가 있어, 다른 계정 하나로 얼마 전에 글쓰기 친구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비슷한 요지의 글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올려두었다. 상당히 많은 지인들이 나에게 연락을 보내주었다. 응원한다고, 자신도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반가운 고백들이었다. 그중에 지인 A는 재테크에 관심이 있어 직장 생활을 하며 꾸준히 경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성공을 해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나의 친구들을 다섯 명도 넘게 떠올렸다.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아서,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사내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참 부지런히 공부하며 살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성공한 후에'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는 삶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내가 A에게 물었다. 성공한 후에 오늘의 이야기를 다 기억하고 글로 쓸 수 있겠냐고.
나는 당장 지난주에 다 읽은 소설의 인물도 가물가물하다. 카뮈의 <페스트>를 일주일 전에 다 읽고 이제야 리뷰를 정리하려는데 등장인물들이 헷갈려서 다시 책을 들춰봐야 했다. 어제도 그제도 사흘 전에도 하루 중에 기뻤던 일도 있었고 짜증 났던 일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나마 며칠 전 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렸다가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던 일이 있어 그때 일기를 SNS에 올렸는데, 그때의 감정만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글로 남기지 않는 만큼의 삶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사라진다. 동시에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지금의 감정과 경험들을 아끼고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잘 쓰게 되면 그때 가서 쓰는 게 아니라, 꾸준히 써야 조금씩 는다. 또한 혼자 비공개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을 읽어줄 누군가를 생각하며 쓸 때 비로소 문장이 쉽게 읽히는지 비문은 없는지 신경을 쓰게 되며, 글을 마침내 발행을 하고 세상에 내놓는 일을 거듭할 때 진짜 작가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