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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Jul 22. 2020

13년 베프에게 절교를 당했지만

그리고 오 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쓰는 글

모든 친구 관계는 저마다 다 기울어있다고 한다. 많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작아 당사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지만, 이보다 조금 더 티가 나는 경우도 있다. 나의 13년 차 베프는 나에게만 베프였다. 그녀에게도 내가 베프였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 믿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그녀의 여러 친구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아버렸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생활 반경의 교집합이 무척 작았다.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각자 취업한 회사도 가까운 거리여서, 우리는 서로의 십대 끝자락과 이십 대 전부를 부지런히 공유했다. 하루정도 서로 몸이 뒤바뀐다고 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작은 정보들까지 주고받았다. 우리는 매일 일기를 쓰듯이 서로의 근황을 알렸고 사흘 이상 연락이 없으면 어디 아픈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각자 어울리는 친구들은 따로 있었다. 대학교 때는 각자 동아리와 과 사람들과 어울렸고 회사에 가서도 따로 친구들을 만들었다. 우리의 연결점은 딱 우리 둘 뿐이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었을 때쯤 나는 우리 사이의 기울기를 비로소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으며 또 유일했던 친구에게는 내가 1순위가 아니라는 걸. 나는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할 때는 그 동아리 친구들과, 학회를 할 때는 학회 친구들과, 회사에 입사해서는 부서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그뿐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활동 반경이 달라져도 옛 친구들과의 연락을 이어가긴 했지만 일 년에 몇 번 연락해서 밥 한 번 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무 때나 '심심해'라고 말 걸 수 있는 친구, 남자 친구랑 이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울면서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는 나에게 딱 한 명뿐이었다. 친구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나 말고도 많았다.


당시 나의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그 친구가 나를 떠날 가능성이었다. 갑자기 미국에 유학을 가버린다고 하면 어쩌나, 혹시라도 다쳐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가만히 밥을 먹다가도 그 생각을 하면 공포가 엄습해왔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정말로 친구가 나를 떠났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예상을 못한 방식이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나는 베프로부터 절교 선언을 당한 것이다.



절교를 당한 이유에 관하여 내가 쓸 수 있는 말은 많이 없다. 발화점이 되었던 계기는 있었지만 그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날도 우리는 여느 때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가 그녀를 화나게 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그 이후로 주말 내내 연락이 없었다. 사흘 뒤 그녀는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까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했고, 한 달 뒤 그녀는 공식적인 '절교'를 알렸다. 우리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잘 살라고 하는, 그냥 보통의 연애에서의 끝인사와 같았다.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베프와의 절교 건을 상의했다. 발화점이 되었던 그 '말 한마디'가 왜 친구를 화나게 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전의 관련 사건들, 내가 혼자 추측해본 이유들과 의심들,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들을 털어놓았지만 단 하나의 답을 얻지는 못했다.


어쩌면 친구가 절교 이유를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었기에, 당시의 나는 혼자 가능한 모든 이유들을 떠올려야 했는데 그동안 내가 친구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의 관계가 이미 어긋나 있었다고 느껴졌으며, 결국 그렇기에 친구를 보내는 게 어쩌면 우리 둘 다를 위한 최선을 방안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 내 인생은 그 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더 나아졌다고 해석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인간 관계는 더 이상 단 한명에게만 의존하지 않았다. 매일 같이 연락하던 친구에게 더 이상 연락할 수 없었기에 대신 나는 오랜 친구들에게 하나씩 안부를 전했다. 늘 한 명에게만 늘어놓던 이야기들을 여러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향해 치우쳤던 의존도가 그동안 꽤 무겁게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문득문득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지만 그럼에도 외롭지는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 당시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읽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인간관계는 저마다의 생로병사 운명이 있어서 절친한 관계였다가 도중에 별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연 소멸하거나 서먹해질 수가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 자연 소멸이 될까?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충분히 매료되지 않았거나, 그 관계에서 둘 중 누군가는 좋아하는 척하며 무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가 자꾸 분석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그 관계의 끈을 다시 이어보려고 애썼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나 상대를 위하는 일이 전혀 아니었다.

(중략)

불편한 인간관계를 견뎌내야 할 이유는없다. 당장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만 한번 관계를 자연스럽게 놓아버린 다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피차 홀가분해할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일부러 거론하지 않는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놓아보자.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한겨레 출판사


그 후 오 년이 지났다. 그 새 나는 결혼을 했고 친구도 결혼을 했지만 우리는 그 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고 깔끔한 남이 되었다.


절교의 부작용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꽤 오래동안 스스로를 '13년 베프에게 절교를 당한 친구'라고 인식했다. 내 성격에 결함이 있는 걸까,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는 사람일까 두려웠다. 인간 관계가 조금이라도 위태해질때면, 문제가 나에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도 이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상대가 언짢은 내색을 보이면 친구를 탓하기 전에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 내가 센스가 없어서, 배려가 부족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먼저 다가가 사과를 했다. 그게 아닐 때는 내가 먼저 관계를 끊기도 했다. 서로 어색해진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는 그냥 내버려두는 방법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관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었다. '관계의 생로병사'를 긍정하며 지내다 보니 정말 마음이 편한 소중한 친구들만 곁에 남았다.





(임경선 작가의 책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MBTI 결과. INFP는 원래 인간 관계에 취약한 편이라고 한다. '겉으로 두루두루 친해보이는 관계는 많아도 정작 마음 털어놓을만한 친구는 몇 없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무척 피곤해 하지만 인싸가 되지 못할까봐 두렵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퍼준 후에 그만큼 되돌려받기를 기대한다' 와 같은 설명들을 찾아 보면서 나의 불안함이 절교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냥 태생적으로 이렇게 생겨먹었음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이따금씩 13년 동안 나의 베프가 되어주었던 친구가 등장하는 꿈을 꾼다. 오 년 동안 스무 번도 넘게 꾼 것 같은데, 어떤 꿈에서 우리는 화해를 했고 어떤 꿈에서 나는 상처를 받는다. 나는 아직도 언젠가 그녀와 화해를 하고 다시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면 나도 또 그런대로 잘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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