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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Oct 22. 2020

나의 전성기 시절 기억의 비밀

당신은 유치원 시절을 아직 기억하고 있나요

유치원 시절은 나의 전성기였고, 나는 철도 없이 마냥 행복했다. 그러니깐, 행복했던 걸로 기억했다고 기억한다. 사실 지금은 유치원 때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제는 아주 작은 조각의 파편으로만 남은 나의 기억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실제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어릴 적에 엄마가 찍어준 사진들을 보고 내가 재구성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그걸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을 자주 조작한다. 다섯 살 때 맹장 수술을 받았는데, (당연히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진행했음에도) 나는 수술실 안에서의 기억을 네 가지 다른 버전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유치원 때 행복했다는 건 중학생이었던 내가 기억한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친구 사귀는 걸 무척 힘들어하다가 2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한창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돌아간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아마도 아주 밝게 웃으면서, 친구들이 참 착한 것 같다고 했고, 내가 유치원 때부터 워낙 내성적인 아이라 사실 엄마가 걱정이 많았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나는 발끈했다.


에이, 나 유치원 때는 친구 잘 사귀었는데?
우리 반에서 제일 이쁘고 착한 애가 나랑 제일 친한 친구였다고.     


그때까지는 유치원 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을 때였다. 나는 내 전성기는 유치원 때였다며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직도 친정집 작은 방 서랍장의 사진 앨범 중 하나에 나의 유치원 친구의 사진이 남아 있다. 눈이 동그랗고 맑은, 많은 사진들 속에서 항상 웃고만 있는 아이다. 아이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는 유치원 행사에서도, 상의 하의 하얀 츄리닝을 입고 흰색 혹은 파란색 머리띠를 쓴 운동회에서도 나의 친구는 유독 돋보였다. 사진들 속에서 그 사랑스러운 아이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당시 내가 기억한 유치원 때의 모습은 친구를 사귀는 일에 대한 어떠한 고민과 걱정도 없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자 엄마가 뜻밖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여태껏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이제는 너도 알아도 되는 때가 찾아왔다는 듯이. 엄마의 이야기는 조금 놀리는 듯한 말투로 시작되었다.  

   

어유, 너. 말도 마라.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유치원 시절은 나의 기억과 사뭇 달랐다. 엄마가 유치원에 나를 처음 데리러 왔던 날, 나는 구석 안쪽에서 혼자 앉아서 놀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로 보러 왔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엄마의 또 다른 기억 하나. 부모님 방문의 날,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을 엄마들이 교실 뒤 의자에 앉아 지켜볼 수 있는 날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아이들은 너도 나도 손을 들어 엉뚱한 답을 말했다. 답이 틀리면 질문한 아이도 다른 아이도 다 함께 와하하 웃었다. 그 와중에 나는 혼자 웃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혼잣말로 정답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할 때마다, 절대로 손을 들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답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모습이 엄마의 눈에는 귀엽기도 했지만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때 엄마의 머릿속에는 은밀한 계획 하나가 구상되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수업받는 모습, 그리고 자유 시간에 각각 흩어져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스캔했다. 가장 말이 많은 아이, 조용하긴 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계속 웃고 있는 아이, 선생님이 질문할 때 가장 힘차게, 높게 손을 들고 틀린 답을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 친구의 답이 틀렸을 때 배꼽을 잡으며 가장 크게 웃던 아이,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 그리고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눈이 동그랗고 맑은, 계속 웃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예쁜 아이를 엄마가 나보다 먼저 발견했던 것이다.      


엄마는 그 예쁜 아이의 엄마에게 먼저 다가가서 소개를 했고, 집 전화와 주소도 알아내었다. 어차피 작은 동네 유치원이었고, 그 아이의 집도 주소만 들으면 어딘지 알 수 있는, 걸어서 십 분 이내에 있는 위치에 있었다. 엄마는 우리 애랑 친하게 지내 달라고 부탁하며 그 아이 엄마에게 직접 요리도 해서 찾아가고 과일도 사서 찾아갔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다가 온 날들의 뒷배경에는, 우리 딸 어떻게든 친구 만들어 주기 위해 아침부터 요리를 준비한 엄마의 정성이 있었던 것이다. 유치원에 가서 나는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소심하게 혼자 구석 자리에서 장난감을 만지작만지작 거렸지만,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내가 하원 할 때까지 준비한 성찬을 싸들고 내 손을 이끌고는 친구네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유치원 밖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친구는, 어느덧 유치원 안에서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나는 자라면서, 그때 엄마가 이면에서 어떤 마음으로 애썼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 내가 반에서 가장 착한 아이와 행복하게 놀았던 모습만 기억으로 남겨둔 것이다.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기억 – 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 목이 마를 정도로 펑펑 울었던 기억, 자괴감에 빠져 닭발 가장 매운맛을 시키고 주량을 넘도록 소주를 들이킨 후 변기를 부여잡고 토했던 기억 –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되새겨보았을 때, 사실 그 기억 속에는 내가 간과한 다정하고 따뜻한 장면들도 함께 묻어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속 쓰릴 땐 매운 걸 먹어야 한다며 닭발 최고 매운 맛을 시켰을 때 내 앞에 앉아 쿨피스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함께 먹어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친구가 있었다. 방에서 펑펑 울다가 힘이 빠져 거실에 나갔을 때, 아무 말도 묻지 않은 채 나를 꼭 안아준 후, 나만을 위한 늦은 저녁을 차려준 엄마가 있었다.     


그렇듯 내 스스로 가장 전성기였다고 생각했던 유치원 시절 기억의 단층에도, 그 층 아래에는 내가 선택적으로 잊기로 결정했던 혼자 놀던 기억들, 모르고 지나쳤던 엄마의 노력들이 모두 내가 기억하기로 결정한 행복한 순간들을 보이지 않게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목 및 본문 첨부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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