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조심스럽게 시작된 위로
지난 달 시험관 시술 10차 이식에 기어코 실패했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은 날, 남편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보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오버하며 서로를 위로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우울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침대에서만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우리는 오천원 짜리 로또 한 장을 샀다가 천 원도 못 건졌을 때 정도의 실망으로, 역시 그렇지 뭐 하는 초탈한 마음이었다. 그 날 점심 나는 흰 쌀밥과 강된장, 계란말이를 만들어 남편과 함께 꼭꼭 씹어먹었고, 저녁에는 냉장고의 삼겹살을 꺼내 온 주방에 기름이 다 튀도록 구워 내장에 잔뜩 기름칠을 했다.
나는 우리가 실패에 무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게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헷갈렸다.
그날 밤, 남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웠는데, 그제서야 왠지 모를 억울함이 스물스물 나를 뒤덮기 시작했다. 왠지 충분히 위로를 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아, 그래도 나 고생했는데, 괜찮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괜찮은 건 아닌데.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렸어야 했던 걸까. 분명 눕기 전까지만해도 멀쩡했는데, 한 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염없이 서운해졌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누운 남편은 이미 잠에 든 듯 조용했다.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호흡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내 배 위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토닥토닥. 느릿하게 나를 달래주는 남편의 손이었다.
아직 잠에 들지 않고 있던 남편은, 옆에 누운 내가 이미 잠들었다 생각하고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종일 별 일 없는 듯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나에게 괜히 말을 잘 못했다가, 별안간 내가 애써 외면하려던 현실을 자각하고 눈물이라도 펑펑 쏟아버릴까 두려워서 계속 기다렸던 것이다. 내가 잠이 드는 순간까지. 무사히 하루가 다 지나갔을 때, 그제서야 주사바늘으로 멍이 들어버린 나의 배 위를 가볍게 토닥토닥 두드리며 그만의 방식으로 언어 없는 말을 건넨 것이다. 고생 많았어, 하고.
나는 자는 척을 하며, 가만히 배 위의 손길을 느끼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너무 빨리 잠에 든 것이 아쉬울 정도로 다정했던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