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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Nov 12. 2020

밥 사는 사람,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

흉내내고 싶은 마음

사촌 동생을 만난 건 여의도의 어느 식당에서였다. 여의도는 그녀가 사는 동네이고, 내 회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걸어서 이십 분 걸리는 거리를 두고 우리는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명절 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뿐이었던, 친구도 동료도 아닌 조금 어색한 친척 사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연년생인 두 아들을 낳고 기르는 모습을 쭉 인스타그램으로 지켜봐 왔다. 그러던 어느날, 무척 충동적으로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잘 살고 있는지 서로 뻔한 안부를 주고받고, 둘 다 여의도에 있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래 한 번 보자 하며 날짜와 장소를 정했다.  


점심시간에 잠시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온 나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온 사촌 동생은 한 시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근황을 주고받았다. 밥을 다 먹고, 나는 같이 계산하자는 사촌 동생을 한사코 말리며 혼자 밥값을 지불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로서 그 정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식당을 나왔을 때, 그녀가 가방에서 기다란 상자를 하나 꺼냈다. 리본 끈으로 단정하게 포장된 마카롱 상자였는데, 여의도에서는 팔지 않는 베이커리 브랜드였다. 전 날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가 내 생각이 나서 구입했다고 했다.   


그 날, 사촌 동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동생의 아이들에게 단 한 번 선물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걸 마카롱 상자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첫 째 아이가 몇 개월인지, 둘째 아이가 몇 개월인지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 흔한 아기 옷 한 벌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걸까.


사실 사촌 동생과의 약속을 잡았던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밥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지닌 센스는 딱 그 정도였다. 이미 밥을 살 생각을 했으므로, 선물에 관해서는 전혀 떠올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달콤한 마카롱을 하나 베어물며 조만간 다시 한번 동생을 만나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그때야말로 사촌 동생과 아이들을 위한 이모의 첫 선물을 준비해 가리라고. 그 후로 어느덧 이 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올여름, 나는 이제 막 가까워진 친구로부터 다정한 선물 꾸러미를 받았다. 멀리 사는 그 친구가 내가 사는 동네에 놀러 온 날, 내가 좋아하는 카페로 데려가 음료와 크로와상, 파이를 사주었다. 친구는 투명한 포장지 안에 제주도에서 사 온 티백 몇 개와 빈티지 샵에서 구입한 아보카도 수제 비누 하나를 담아 선물해주었다. 나는 티백을 우려내어 마시고 비누로 손을 씻을 때마다 친구의 마음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그 친구에게 나를 떠올리게 할 그 무엇도 건네지 못했음을 또 후회했다. 여전히 나는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밥을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사람'에서 안주했다. 친구가 한 번 밥을 사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밥을 사야 직성이 풀렸다. 애매한 순간에는 손해를 볼 지언정 그냥 내가 계산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축의금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과 비슷한 예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니라 예의. 어쨌든 욕은 먹지 않겠다는 방어 기제 같은 것. 누군가에게 밥을 사는 순간들이 모두 계산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나가기 전에 머리를 다듬고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는 일 말고, 정말로 친구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정성껏 준비했던 기억이 나에겐 없었다.


나에게 부족했던 건 센스였을까, 정성이었을까, 마음이었을까?


요즘은 나도 나에게 선물을 건네 준 친구들을 조금씩 흉내 내어 보고는 한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앞서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내 주위에는 한 달에 두 번 이상 보는 친구들보다 일 년에 두세 번, 삼 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이 더 많다. 그렇게 시간의 공백을 두고 만나는 친구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수준으로 준비한 선물을 건넸을 때, 고맙다며 밝게 웃는 얼굴을 보는 일이 좋아졌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선물을 준비할 때 나의 마음은 온전히 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나 스스로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일까. 나는 받는 사람이 기뻐하길 바라는 걸까,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 걸까. 어쩌면 이 모든 게, 그저 내가 준 선물로 누군가가 나를 오래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혹시 내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 마지막 문장만큼은 기억해주기를. 내가 선물을 준비하는 동기가 이토록 불순하고 이기적이었을 지라도, 받는 사람이 뭘 좋아할지 고민하며 선물을 고르는 나의 마음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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