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다시 찾아와 주신 내담자 이야기
어느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상담 신청이 들어왔다는 메시지였다. 신청자 이름이 낯이 익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분이 있었다. 약 3, 4년 전에 상담을 진행했던 분이었다. 당시 나의 퇴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상담을 종결하게 되었고, 다른 상담 선생님께 연계해 드린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새로운 직장에 가서도 종종 이전에 심리상담 하던 분들을 떠올리게 된다. 마무리가 갑작스러워서 더욱 그랬을까, 종종 안부를 떠올리던 분이었다. 낯익은 성함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순간 스쳤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유선상으로 간략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고는 섣불리 말할 수 없어, 약속된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예약일이 되었다. 노크와 함께 상담실 문이 열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반가운 옛 동료를 만난 기분이었다. 웃는 낯을 하면서도, 지난 수년 간 힘든 마음을 추스르면서 묵묵히 견뎌 오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선생님이 어디 계시든 찾아낼 수 있다’며 농담하듯 웃으시는 얼굴 뒤로 그간에 힘든 시간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심리상담센터를 시작하면서, 이전의 내담자들에게 연락하지 않느냐는 동료들의 질문을 많이 들었다. 적어도 그 정도의 홍보와 안내가 있어야, 조금이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나는 은근히 겁도 없고 무모하다. 센터를 개소하면서 이전의 어떤 내담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혈혈단신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다.
심리 일을 10년째 하면서, 퇴사를 하며 종결을 맞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마다 앞으로의 나의 거처를 궁금해 하시며 어디서 상담을 하는지, 계속 상담을 이어갈 순 없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자주 있었다. 지금은 회사나 기관에 소속하지 않고 심리 일을 하게 됐으니 마음만 먹으면 이전의 내담자들과 이어서 상담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과거 내담자 누구에게도 센터를 오픈한 것을 알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혹시라도 내담자들이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염려스러운 마음이 컸다. 주로 나의 내담자들은 어느 기업에 재직중인 직장인들이며, 회사의 복지에 속하므로 무료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심리상담사는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그분들이 앞으로 나에게 상담을 받으려면, 시간당 돈을 내야 한다. 게다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내가 센터를 열었다는 말이 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라는 말처럼 들리면 어쩌나, 내가 먼저 부담스러웠다. 아름답게 종결했는데, 소중한 기억이 돈 때문에 무거워지면 어쩌나. 어떠한 부담이나 찝찝한 마음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기업에 계시는 한, 새로운 상담사에게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중 돈을 내고 상담해도 좋다며 먼저 말하시는 분도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누구에게는 알리고 누구에게는 알리지 않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았다. 공평하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낫겠지, 차라리 운영이 조금 힘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날도 어느 동료가 오픈 사실을 알렸냐고 묻기에, 위의 이유를 들며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담자들이 서운해 하시지 않을까?”
서운해 하신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퍽 좋아했던 상담자가 피치못할 이유로 나와의 상담을 종결한 뒤, 본인의 센터를 차렸음에도 일언반구 없다면 나도 좀 서운할 것 같기도 했다. 나랑 계속 상담하기 싫으셔서 나에게 안 알린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누구에게도 안 알리는 게 가장 쉬운 선택이었다. 나는 내담자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일 단순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기도 했다. 정보를 주고, 선택은 상대의 몫으로 남기면 되는 것을. 내 생각이 과도하다. 하지만 이미 센터를 오픈한지 반 년을 넘긴 시점에서, 갑자기 연락을 드리는 것도 우스운 것 같다. 누구에게 드려야 하나? 생각나는 분들은 많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분들의 연락처도 모른다. 연락이 닿는다 한들, 누구에게는 알리고 누구에게는 안 알리는 건 역시 공평한 처사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이 길어지다 보니, 다시 가장 쉬운 결정으로 돌아간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것.
하지만 어느 내담자 분이 나를 찾아와 준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반갑고 감사할 것이다. 용기내 찾아와 주신다면 열려 있는 문 앞에서 환하게 맞이할 것이다. 필명을 달고 있으면서 찾아내 주시기를 바라다니, 나의 수동성은 끝이 없구나 싶다. 이렇게 쉽지 않은 길에서 시간과 마음을 들여 다시 찾아와 주신 나의 내담자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