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다. 나는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어쩌다 보니 집에도 몇 권 있지만, 그의 소설을 '엄청 재밌게' 읽은 적은 사실 없다. 남들이 다 재밌다고 읽으니까 호기심 반, 나만 안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반, 그런 마음으로 언제나 약간은 의무적인 느낌으로 읽었다.
한 몇 년 전 쯤, 친구에게 '나는 하루키 소설은 그닥'이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반색을 표하며 반가워 하면서 '나도 그 사람 소설은 별로인데, 에세이는 되게 괜찮다'고 했다. 오호, 그 사람이 에세이도 썼구나. 나와 독서 취향이 꽤 비슷한 친구였기에 흘려 듣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의 에세이를 한 권 읽고, 꽤나 마음에 들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만 연달아 읽었더랬다. 이후로는 또 몇 년 잊고 살다가, 맘에 들어서 소장하게 된 에세이를 최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참고로 제목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나도 모르던 사실인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賞) 복은 별로 없는 작가다. 이 에세이에는 그가 소설가로 등단한 뒤 상을 받지 못하고 여러 번 미끄러졌던 경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사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여러 번 올랐지만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최근 한강 작가가 상을 탔을 때에도 일본에서 아쉬워했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다. 혹시나 하고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욕' 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을 받지 못한 것이 자신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여러 페이지에 걸쳐 말하고 있다(그가 노벨 문학상에 대해 정말 그렇게 별 거 아니라고 마음 깊숙이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그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내가 노벨 문학상을 타고 싶을까? 노벨 문학상이 대체 뭔데? (...) 애초에 이 상을 타려면 스톡홀름까지 찾아가 정장을 차려입고 연설을 해야 한다. 노벨 문학상이 그런 수고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단연코 노다.' 또한 미국 작가 넬슨 올그런은 문학아카데미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집 근처 바에서 술을 마시고 노느라 수상식에 가지 않았다는 일화도 언급한다.
그는 말한다.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
상담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과 번아웃에 허덕이고 있다. 큰 파이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 받지 못함에 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기울였음에도 승진에 누락되고, 연봉 협상에 실패하고, 이직에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때.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만큼 허탈함은 깊고 아프게 다가온다. 쉬지 않고 돌아가던 기계가 터지듯이 몸과 마음이 작동을 멈추고, 번아웃의 수렁에 빠진다.
자신의 가치를 세상의 인정에서 찾으려면 필히 번아웃이 올 수 밖에 없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테니까. 어쩌다 한 번은 주더라도, 그 다음은 주지 않을 거니까. 운 좋게 매번 인정 받은 사람은 괜찮을까? 아니, 그 사람은 겪어 보지 않은 실패가 두렵다. 내리막길이 무서워서 달리는 패달을 멈추지 못한다. 혹은 성공에 취해 거대하게 부푼 자아를 어쩌지 못하고 둥실 떠다니지만, 그 과대함은 풍선처럼 불안정하다.
그렇다면 ' OO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뭘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사실 이 두가지는 번아웃을 피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너무 길면 읽기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2편으로 써야겠다. (는 사실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서 그렇다..)
무책임하게 끝내는 것 같아서 한 줄 요약을 남기자면,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번아웃이 오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