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에세이-샤워를 하는 동안 떠오른 모든 것들의 이야기]
1. 난 샤워를 즐겨하는 타입은 아니다.
예전의 나는 샤워를 즐겨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제는 그 반대라는 얘기겠지?라고 물으실게 뻔하니 가장 먼저 답을 하자면 아니오다. 적확한 표현을 하자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일이기에 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할 건 샤워를 하는 과정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포인트는 있다. 바로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어딘가쯤의 온도일 물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릴 때의 기분이다. 아, 그럼 당신 샤워를 좋아하는 거네.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것 같다. 사실 나도 그 기분을 꽤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엔 샤워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샤워를 하진 않기 때문에 좋아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그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필요에 의해 샤워를 할 뿐이니까.
처음부터 이런 엉뚱한 제목의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전혀 아니었다. 그날도 그저 어느 날과 같이 샤워를 하던 도중이었다. 노란 라이언이 달린 샤워기로 머리를 적시고 샴푸를 하면서 그날의 일이라던가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들의 단상을 해메이던 중이었다. 나는 그렇게 으레 샤워를 하는 도중에 생각 속에 잠기는 것을 곧잘 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떠오른 생각을 바로 메모를 하지 못했기에 그 문장이 뭐였는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건 단순한 생각을 벗어난 하나의 글이었다. 그래서 그걸 글로써 남겨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는 동안 난 그걸 샤워 에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른바, 샤워하면서 떠오르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였다.
머리를 적시고 샴푸를 한 후 다시 머리를 물로 씻어낸다.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물을 짜내고 트리트먼트를 발라 엉킨 머리카락을 풀어낸다. 머리카락이 트리트먼트에 발려 있는 사이 다시 샤워기를 들어 몸을 적시고 분홍색 샤워볼에 적당량의 바디워시를 짜 비벼준다. 하얀색 거품이 일어난 샤워볼로 온몸을 닦아내고 다시 샤워기를 들어 머리카락과 몸을 차례로 씻어내면 끝이다. 주로 손이 일하고 몸은 가만히 있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은 욕실이 아닌 기억의 어딘가로 여행한다. 대체로 오늘이라는 방에서 시작해 과거의 어느 방문을 열기도 하고, 엉뚱한 방을 만들어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아마 이 이야기들은 크게 재미있지도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이상하지도 않을 평범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언젠가 미래의 나에게 있어 이 글이 어떤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쓴 단편소설집에 나온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이야기처럼(소설집이니 실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다소 허무맹랑한듯한 이 에세이가 미래의 어딘가에선 책이 되어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s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