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권하는 여자2
퇴사를 권하면서 정작 본인은 퇴사를 하지 않고 죽을똥 살똥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이게 뭐하는 짓이냐 혼을 내시겠다면 그 혼, 달게 받잡겠나이다. 이 씨리이-즈는 훗날 퇴사를 결정해야 하는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다. 조금이라도 행복에 가깝게 퇴사하기 위해서.
퇴사를 결심하고 사직서를 쓰고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하고 짐을 싸서 택배를 부치고 마지막 출근을 하면 정말 말도 못하게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퇴사를 한다고 그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덩실덩실 어깨춤이 춰지지는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이직할까? 이직할 데는 있나? 이직이 안 되면 어떡하지? 만약 이직처가 확정되었다면 더더욱 심난해진다. 와 쉬지도 못하고 바로 다음 회사 출근이라니. 새 회사는 괜찮을까? 더 병신같으면 어쩌지? 가서 언제 적응하고 언제 노련해지지? 미친 상사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과연, 기쁘게 퇴사하는 길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그럴리가 없자나!
게다가 퇴사를 하게 되면 여러 종류의 똥을 맞게 될 확률이 높다. 조직 내 상대평가를 하는 회사라면 퇴사가 예정된 사람이 반드시 최저점 혹은 최저 등급을 받게 되어 있다. 물론 퇴사하는 마당에 그깟 평가 A를 받든 F를 받든 뭔 상관인가 싶지만, 너나 나나 알다시피 우리는 감정이 있는 동물이므로, 당연히 유쾌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내가 했던 업무에 대한 평가를 받는 건데 그래서 내가 일을 잘했다는 것이냐 못했다는 것이냐를 전혀 알 수도 없다. 그냥 넌 나갈 사람이니까 똥 하나만 부담해달라는 조직장의 요구에 지난 시간들이 아득-해지는 것이다. 나는 대체 이 회사에서 어떤 존재였는가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보너스나 인센티브 혜택도 안녕이다. 특히 특정 시점에 통상적으로 엥간하면 받게 되는 보너스가 있다면, 퇴사 시기를 제대로 못 맞출 경우 그런 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짐을 싸야 한다. 그러니 퇴사 시기를 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지만, 이직할 회사가 결정되었고 출근일까지 정해져버렸다면 이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받을 수 있는 돈을 등지고 나가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쓸쓸한가!
때론 퇴사예정자에게 일폭탄이 떨어지기도 한다. 니가 시작한 일이니 니가 마무리를 해야 한다거나, 나갈 사람이니 어떻게든 뽕을 뽑아보자는 생각으로 온갖 일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보통은 퇴사예정자에게 새 일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정말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쨌거나 넌 00월 00일까지는 이 회사 직원이니 직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어떤 일이든 내던질 수 잇는 것이다. 평소라면 업무과부하 운운하며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겠지만 퇴사예정자에겐 짤없다. 바로 이 시기에 잘못 대처했다간 퇴사 후 남은 이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거나, 이직할 회사의 평판조사에서 2차 똥을 맛보게 될 수 있다. 10년을 좋게 일했어도 나갈 때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으면 당신은 영영 썅년과 개놈이 된다. 걔가 나갈 때 얼마나 진상이었는지 아니?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진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
쓰고 보니 또 갑자기 빡이 친다. 퇴사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내 발로 희망 찾아 삼만 리 하시겠다는데 왜 기쁨조차 마음대로 주어지지 않는가.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하자,고 외치고 싶다. 그러니 다음 이 시간에는 퇴사의 SWOT 분석을 해보자.....는 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