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러스티

백수현, <시호와 러스티>

by 호밀밭의 사기꾼

멍멍이 사진을 주로 올리던 SNS 계정이 아이를 낳은 뒤 아이 사진만 줄기차게 올릴 때 괜히 내가 막 서운하고 그런다. 어쩜 한 장도 없지. 너무해.


반면 시호와 러스티가 좋았던 건 늘 아이와 개를 한 프레임 안에 담아내기 때문이었는데 그 시선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책을 사봤다. 그런데 책에는 러스티가 없었다. 거의 모든 사진에 아이와 개가 함께 등장하지만 개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사진에는 등장하지만 글에는 시호만 있다. 그러면서 제목이 왜 시호와 '러스티'지? 러스티는 거의 언급도 되지 않는데. 되게 서운한 책이었다. 그냥 육아일기였어.

초반에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쭈욱 나올 때 아 러스티 이야기 언제 나오지? 언제 나올까? 러스티는 왜 사진에만 있고 엄마의 이야기 속에는 없지? 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절반이 넘어서야 한 바닥 정도 러스티 입양 이야기가 나왔다. 아 이제 러스티와 시호의 알콩달콩 일상 이야기가 나오려나? 기대했지만 순둥이 같은 러스티가 심정적인 육아를 함께 해줘서 고맙고 든든하고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을 러스티를 통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짤막한 고백이 전부였다.


"나같이 준비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보고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은 충분히 전해지고 담담하게 자신의 시간을 고백하는 깊은 진심은 넉넉하게 느꼈다. 하지만 제목도 <시호와 러스티>니까 나는 시호와 러스티가 공동주연이라고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임신하고 육아를 하면서 개를 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주고 아이와 개가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사진만으로도 애와 개가 얼마나 잘 지내는지 생생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3살 아이와 말 못하는 개가 함께 지내는 일상이 어디 평온하고 평화롭고 다정하기만 할까. 개는 아이의 탄생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던 이 털복숭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둘 다 말을 못하니까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걸 엄마의 시선으로 좀 담아주었으면 했다. 아이가 목을 가누고 짚고 서고 아장아장 걷고 러띠러띠 옹알이를 하며 커가는 과정만이 아닌 개와 함께 크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불과 몇 년의 짧은 기간 동안 그것이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을 생각했을 때 아주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고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다음에는 러스티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

그림자처럼 시호 곁에 있는 러스티가 아닌 엄마의 시선 속에 담긴 시호와 러스티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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