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대체할 수 있는 인력입니다

퇴사 권하는 여자4

by 호밀밭의 사기꾼

퇴사를 망설이는 이들이 쉽게 하는 생각이 '내가 없으면 이 일은 어떻게 하지?'라는 착각이다.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이들을 붙잡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니가 나가면 남은 일들은 어떻게 하냐' 하는 책임론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굴러간다. 아주 잘 굴러갈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인재가 될 것을 주장하는 <린치핀>이라는 책이 있다. 당신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야 하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남다른 창의력과 독자적인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남들과 다른 인력이 되어야 회사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굉장히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회사는 항상 담당자의 부재를 대비하는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누구도 그 일을 대체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회사의 경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어떤 사람이 이 업무에 투입되어도 무리없이 그 일을 연장하여 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일이다. 회의 일지를 쓰고 업무별 폴더를 정리하고 보고 체계를 만들고 기안서를 작성하여 모든 진행 과정을 가시화시키는 일들은 현재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당 담당자의 부재 상태를 적용하여 바라보면 결국 그 일을 누가 하더라도 이전처럼 똑같이 굴러가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기업화된 조직에서 이는 너무나 당연하다. 담당자가 없다고 그 업무가 마비되면 조직은 굴러갈 수 없다. 세상에 대체 불가한 인력이란 없다. 당신이 없어도 회사는 굴러간다, 아주 잘.

자존심 상할 필요도 없다. 노동 인력이란 게 원래 그렇다. 일자리 수요는 정해져 있고, 일하고 싶은(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자신의 업무가 존나 크리에이티브한 일이라서 해당이 안 된다고? 당신이 예술가가 아닌 이상, 크리에이티브도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예술가라면 퇴사할 필요가 없다. 입사가 없기 때문이다.) 상업적 목적을 위해 진행되는 모든 일은, 그 성격이 단순직이든 개발직이든 연구직이든 당연히 대체될 수 있다.


업무 능력의 차이란 물론 존재한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일을 조금 더 잘하거나 창의력이 있고, 누군가는 조금 더 부족하고 나이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모든 악조건과 개똥과 썅엿을 다 상쇄하고 참고 감내하고 근무해야 할 만한 최상위 조건이 되진 않는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잘해놨는데, 내가 빠지면 이 일들은 어떻게 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보다 부족하고 나이브한 인력이 그 일을 이어받아도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건 퇴사를 생각하는 당신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이미 회사에서 마음이 떠났는데 그 회사 미래 걱정은 해서 뭐하게?


그러니 결심이 섰다면, 죄책감도 자책감도 갖지 말자.

당신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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