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춘천 산문

사랑니

by 이희소

하나 남은 바나나를 먹으려다 말았다. 오늘 남편이 사랑니를 뺀다면, 그가 먹을 수 있는 것 중 몇 안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치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네이버 플레이스 영수증 리뷰를 봤는데, 안 아프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아꼈다. 웬만한 일에 걱정이 없는 낙천적인 남편이, 내 말에는 유독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경솔하게 남편에게 사랑니 뺐던 경험을 얘기했던 걸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일의 대부분은 결과를 모른 채 겪는 편이 나았다.
내게 일어난 일은 내가 불안해하거나 걱정해도 남편은 흔들림 없이 잘 될 거라 말해주는데, 정작 남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있어서는 걱정하는 내 말에 따라, 혹은 괜찮다고 하는 내 말에 따라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나에게 그의 말과 지지가 절대적인 것처럼, 그에게도 나의 말이 절대적인 건지도 몰랐다. 나는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조금씩 낙천적이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갔다.

나 때문에 겁먹은 남편은 인터넷을 뒤져 사랑니를 안 아프게 잘 뽑는다는 치과를 찾아냈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하고,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병원 소파는 전부 짙은 와인색이었는데, 벽을 따라 스무 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쭉 이어졌고, 2인용 소파 6개는 가운데에 나란히 TV를 향해 놓여 있었다. 다정하게도 모든 소파에는 등받이가 있었다. 소파는 가구점에서 금방 배달되어 온 것처럼 푹신푹신했다. 중력이 통하지 않는 듯 엉덩이가 편안했다. 이 소파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접수처에서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자 두 명이 일어났다. 두 명 모두 간호사에게 걸어갔다. 간호사는 그중 한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남겨진 사람은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더니, 걸어갈 때보다는 덜 씩씩한 걸음으로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나는 그가 어떤 이름을 어떻게 잘못 들었는지 궁금했다. 남편과 속삭이며 의논했다.

“헷갈렸나 봐.”
“이준영 님- 이주영 님- 이런 식으로 이름이 달랐나?”
“오. 헷갈릴 것 같아.”
“이주형은 어때?”
“안 헷갈릴 것 같은데.”
“이주형 님- 하면?”
“헷갈린다.”

남편의 이름에 자음을 바꿔가며 불러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긴장했고 남편은 음식 받으러 갈 때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 리뷰를 굳게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잔잔하게 퍼지는 염려를 다스리며 남편을 기다렸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마지막으로 봤던 위치에 남편이 도로 서 있었다. 뺐어? 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걸어가 그의 앞에 가까이 섰다. 눈물 자국도 없고 찡그린 쓴 표정도 없었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세히 보니 남편의 밝은 갈색 머리가 살짝 헝클어졌고, 오른쪽 입 끝이 살짝 빨갰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은 마취로 굳은 입술과 혀로 평소처럼 이야기했다. 의사가 뺀 이를 보여줬는데, 거의 치아 모양 그대로였다고 했다. 누워있던 사랑니를 그렇게 깔끔하게 빼다니, 잘 뽑는다는 건 사실이구나 생각했다. 내 사랑니는 바르고 예쁘게 났었는데도 다른 병원에서는 산산이 조각을 냈기 때문이다.
남편의 사랑니가 나기 시작할 때쯤 갔던 다른 어떤 병원에서는 사랑니가 누워있는 데다가 신경 가까이 있어서 잘못 뽑으면 안면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병원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 나는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바뀔 일상을 상상해 보았다.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넘치는 불안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상 속의 나는 남편만 괜찮으면 나도 괜찮았다. 남편이 슬프면 나도 슬프고, 이전처럼 잘 지내면 나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나의 행복은 나에게도 달렸지만 그만큼 남편에게도 달렸다는 걸 알았다. 남편의 행복 또한 나에게도 달렸을 것이다. 이제 우리 각자 행복의 지분은 자기 자신 100%와 상대방 100%였다. 서로의 안위와 행불행을 위탁한 사이가 낙관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사이에서 흐르는 동그란 자장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혼자일 때의 고약한 불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람의 마음을 잘 믿지 못하는 내가 타인을 통해 안심하다니. 몇 년 전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운전하는 내 옆에서 쉬지 않고 말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를 힘주어 말할 땐 혀를 씹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많이 말해도 돼?”
“마라지 마라능 마릉 엉서짜나. (말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
“그렇긴 한데...”

남편은 아랑곳없이 수다를 떨었고 나는 걱정하다가도 웃었다. 조금씩 말수가 줄어서 남편을 보니 턱을 부여잡고 있었다. 출발한 지 20분도 안 지난 시간이었다. 아프냐는 물음에 그는 대답도 못 하고 끙끙 앓았다. 신호를 두 번 기다리는 동안 말이 점차 많아져서 남편이 괜찮아졌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를 만나는 4년 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을 꺼냈다.

“여보. 입 좀 다물고 있어.”

집에 도착하고도 남편의 수다는 끈기 있게 계속됐다. 나는 말렸다가, 웃었다가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조용해서 봤더니 또다시 턱을 붙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꽤 오래 아파해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물과 함께 줬다. 그는 약을 먹고도 한참 동안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했다. 걱정하며 지켜보는데 남편이 고개를 들면서 장난을 쳐서 이제 괜찮아졌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손과 발, 코끝이 차가웠고 얼굴이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어두웠다.

저녁으로 쌀과 두부를 짓이기다시피 해서 부드러운 죽을 끓였다. 맛소금, 꽃소금, 다시마, 설탕, 연두, 간장, 참기름을 전부 조금씩 넣었다. 조미료를 잔뜩 써서라도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는 죽을 끓여주고 싶었다.

“바나나 먹을래?”
“우웅.”

바나나 껍질을 벗겨 동강동강 잘라 주었다. 포크와 함께 주니까 잘 먹었다. 남편은 작은 바나나 조각을 한 번 더 작게 잘라 오물오물 천천히 먹었다. 남편이 아픈 건 속상하지만,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그의 여백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에게 필요한 것과 그에게 현재 필요한 것이 일치하는 데에서 오는 나의 쓸모가 기뻤다.

“크림 크루아상에서 크림만 먹을래?”
“아니잉. 크루아상에 대항 예의가 아니야.”

남편은 안 아플 땐 얘기를 쉼 없이 했고, 아프면 턱을 부여잡고 야코의 <사랑니 뽑는 노래>를 유튜브로 들었다. 전에 둘이 그 영상을 봤을 땐 폭소하며 봤는데, 오늘 남편은 앓으며 봤다. “앙 아프다고 행능데...” 라고 하면서.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웃기기도 해서 사진을 찍었다.
요즘 나는 꽃이나 하늘, 맛있는 음식 사진보다는 남편의 뒷모습, 남편의 확대된 얼굴, 남편의 발가락 사진 같은 걸 많이 찍는다. 남편이 잠들면 하나씩 열어 본다. 사진첩에는 온라인에 전체 공개할 수 없는 사진이 쌓여간다. 오직 나만의 이미지, 나만 사랑하는 풍경, 나에게만 힘이 되는 그의 발가락이 사진첩에 가득하다.

저녁 약을 먹이고 우리는 조금 이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고 손을 잡고 나란히 누웠다. 사랑니 뽑은 자리가 아파서 남편은 잠들지 못했다. 손을 놓고 편히 자라고 말해주었더니 몇 번 뒤척이다 곧 잠들었다. 침이 고여서 그런지 숨소리가 불규칙했다. 나는 남편을 만지작대고 싶어서 잠이 안 왔다. 날마다 남편의 따뜻한 몸에 기대어 잠들었는데, 오늘은 내가 가진 온도로 혼자 잠들어야 했다. 전기장판의 온도를 높이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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