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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Apr 11. 2023

서툰 사람

   어젯밤엔 인상적인 꿈을 꿨다. 어떤 서툰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꿈이었다. 그 사람과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작은 미움이 큰 애정으로 바뀌었다. 그에게서 서툴지만 어떤 진심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진심 때문에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서툴렀기에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일에 몹시 서툰 사람이었다. 그 서투름이 이전에는 내게 상처였다면, 이젠 사랑의 이유였다. 마음의 변화는 다른 두 색깔의 물감이 섞이는 것처럼 느리고도 분명했다. 그것을 본 듯이 느꼈다. 눈으로 분명히 본 것처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감정은 잠들지 않은 시간에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를 향한 마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빛깔이 되었다. 꿈에서도, 꿈에서 깨고 나서도, 그 감정의 변화가 놀라웠다.

   이런 날은 꿈에서 느낀 감정이 오전 내내 맴돈다. 꿈을 떠올리면 저릿하고 두근대고 긴장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꿈을 되새겼다. 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을 땐, 기억과 감정 전부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엔 인상적인 꿈을 꿨다, 는 메모를 남겨놓지 않았다면 완전히 발화되었을 기억.

   오랜 기억 또한 꿈처럼 느껴진다. 어젯밤에 꾼 꿈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된 일 전부 꿈같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겪은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여겨진다. 아마 어젯밤 꿈속의 서툰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과거 어느 한 시기의 내가 나와서 지금의 나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보인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지금이라면 받아들여질 수 있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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