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른쪽 이마 구석에 콩처럼 크고 도톰한 점이 있다. 친가 쪽 어르신 중 누군가의 이마 구석에도 이런 점이 있었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얘기를 하면서 핏줄이 그렇게 티가 난다는 사실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 점이 유일하게 친가 어른들에게 칭찬과 관심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음에도 나에게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넓은 이마와 더불어 큰 콤플렉스였다. 사춘기 시절에 제일 부끄러워한 부분이 바로 이마의 점이었다.
자세히 보면 점에 머리카락까지 나 있는 데다가 툭 튀어나와 있어서 남들이 보면 징그러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TV에서 얼굴에 왕 점이 있는 사람은 웃기려고 망가지는 사람들뿐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심하게 웃기는 사람은 점에 털이 있었다. 왕 점이 있는 캐릭터는 다들 한심하게 여겼고, 이성적인 매력을 어필할수록 끔찍한 몰골이 되었다. 드라마 주인공이나 광고 속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얼굴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 나에게 점이 있는 한 사랑받을 수 없고 개그맨들처럼 우스갯거리나 될 거라는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중학생 때 내 점을 좋아한 친구가 있었다. 가로로 기다랗고 쌍꺼풀이 없는 예쁜 눈을 가진 애였다. 어느 날 머리를 묶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내 옆으로 오며 말했다.
"어, 너 여기 점 있네."
"어... 응. 아니, 근데, 이상하지? 좀 너무, 큰 거 같아. 그래도 평소에는 잘 안 보여..."
하며 빨개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는데 걔는 귀엽다고 만져봐도 되냐고 물었다.
"징그럽지 않아?"
"뭐가 징그러워. 내 동생도 어깨에 이런 점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친구의 대답에 나는 홀린 듯 이마 한구석을 맡기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오른쪽에 누군가 있으면 불편해서 걸을 때는 꼭 맨 오른쪽에 섰다. 사람들은 걸어가다가 위치를 바꾸는 나를 보고 왜 자리를 바꾸냐고 물었다. 보통은 "그냥…"하고 얼버무렸는데 그 친구에게는 "점 때문에…"라고 솔직히 말했다. 걔는 평소처럼 "뭐 어때. 귀엽다니까."하고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친구의 태도를 보고 '정말 괜찮은 걸까?' 싶었다. 안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점이 있어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 애랑 있을 땐 점이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 말고도 신경 쓸 것 투성이었다. 불편한 사람과 계속 부대껴야 하는 회사 내 인간관계가 신경 쓰였고, 적은 연봉과 적은 연봉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 콤플렉스였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신체와 순두부처럼 약한 멘털, 그리고 쉽게 새어 나오는 눈물도 부끄러웠다. 학생 땐 외적인 부분만이 콤플렉스였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는 외적인 면은 물론 내적인 면과 환경적인 면까지 모두 창피하게 느껴졌다. 점에 전전긍긍했던 어린 날이 행복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괴로운 사회생활 속에서 이마 구석에 자리한 점은 점점 잊혀갔다. 내가 잊으니까 세상도 내 점을 잊었다.
어느 날 미용실을 갔는데 머리를 감고 오니 거울에 점이 보였다. 헉, 했다. 점을 자각하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수치심이 올라와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 평소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렸을 때처럼 커다랗게 버티고 있었다.
점은 그 후로 존재감을 드러날 때마다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지금 가진 걱정과 콤플렉스도 어린 시절의 '점'처럼 잊으면 잊을만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은 내 삶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큰일 같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금세 잊게 되는 정도의 일 말이다. 자각하면 존재감이 잔뜩 부풀어 오르지만 때때로 벗어나는 순간도 있다.
없었으면 하는 결점은 내게 항상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한 시간은 미리 한 걱정처럼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곤 했다. 깊고 예쁜 눈을 가진 그 친구처럼.
마음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지만, 사실 콩만 한 결점일 것이다. 창피함에 얼굴이 빨개져도 그리 나쁘지 않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