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 뉴질랜드에 대해 많이 알아봤다. Lonely Planet이라는 관광책자도 많이 읽어보고, 뉴질랜드 지도도 자주 봤다. 아버지는 여러 군데 에서 귀동냥을 많이 하셨다. 그 당시는 그랬다.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 정보를 얻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아버지도 처음이실 텐데 난 우리 둘 모두가 걱정됐다. 그곳에 아버지 후배분이 살고 있지 않았다면, 나의 유학은 첫날부터 문제 투성이었을 것이다.
학생 비자를 받고 가면 좋겠지만,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뉴질랜드의 학교를 정할 수 없었다. 우선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나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고, 그렇다고 영어학원은 미리 정하고 가고 싶진 않았다. 맘에 들지 않는 영어학원 들어가서 어쩌지 못하고 그냥 다니는 상황이 없길 바랬다. 그래서 관광비자로 입국을 했다. 보통 이런 방법을 쓴다. 그리곤 맘에 드는 영어학원에 등록을 한 후, 수업료를 지불한 그 기간까지 학생비자를 발급받는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처럼 나는 관광 목적으로 뉴질랜드에 입국한 것이다.
공항에서 차에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창밖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늘은 파랗고 깨끗했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는 오른쪽엔 드넓은 잔디밭이, 왼쪽에는 타운하우스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집 앞 잔디를 깎는 아저씨도 보였다. 모두가 마치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도로에는 차량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세 대가 규정속도인 시속 50km/h로 달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50' 말이다!
"역시 선진국 사람들이라 다르구나..."
이것이 뉴질랜드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사대주의 장착 완료
우리는 모텔에 짐을 풀었다. 뉴질랜드는 숙박시설이 크게 호텔, 모텔로 구분이 된다. 그렇다고 한국의 모텔을 생각하면 안 된다. 호텔은 요리가 불가능, 모텔은 부엌이 있어 요리가 가능. 그래서 대부분 가족여행을 가면 모텔에 묵는다. 우리는 체크인하고, 바로 식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남자 세명이 요리를 해서 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잠도 못 잔 어두운 얼굴의 동양인 세 명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아버지 후배 분도 희한하게도 얼굴이 어두웠다.)
가는 길에 아버지 후배분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곳이 미국보다 얼마나 안전한지,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에 대해 얘기를 들으며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매주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식당들도 괜찮은 곳이 많았다. 볼거리도 있고, 음식점들도 많아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배고프니 식사부터 하시죠?"
세명이 주문을 하러 줄을 섰다. 태어나서 외국인들 사이에 줄을 처음 서 봤다. 설레었다. 신기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방구석에서 게임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곳에 서서 음식을 주문하게 되다니..' 어릴 때 보던 미국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난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데, 내가 주문할 차례가 다가오고 있잖아!'
'대신해서 주문해 주시겠지'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은 야속하게도 음식을 주문하시고 자리로 돌아가셨다. 내 차례다. 미국 영화에서 방금 나온 듯 한 식당 카운터 누나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