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동안 소진하지 못한 에너지로 너구리눈을 하고도 잠 못 이루는 아들로 고민하는 나에게 육아선배들이 뭐든 두드리는 걸 시켜보라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몇 날 며칠을 어르고 달래어 드럼레슨을 하는 학원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낯선 것은 일단 궁둥이부터 뒤로 쭉 빼는 아이여서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아이를 설득하느라 성대결정 수준의 목상태가 되곤 했다. 다행히도 이번엔 드럼 선생님이 좋다며 그 뒤로 3년을 꾸준히 다녔다.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꾸준한 아이, 전면에 나서기는 싫지만, 또 그렇다고 배경의 나무처럼 서 있는 것도 별로인 아이의 성정에 잘 맞았던 드럼연주. 스틱을 쥐고 있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러워질 때쯤, 아이가 드럼 연주자로 나서는 첫 공연 초대장을 가지고 왔다. 그때 연주곡들 중에 하나가 'Imagine Dragons'의 'Demon'이었다.
그 'Imagine Dragons'이 Phoenix, AZ에 있는 'Talking Stick Resort Amphitheater'에 왔다. 지난번'Glass Animals'도 이곳에서 공연한 바 있다.
매진된 공연이지만,7시경 도착한 우리에게도 주차할 자리를 제공하는 친절하고 거대한 땅덩어리. 다른 건 별 부러울 게 없는데 미국의 너른 땅만큼은 참말로 부럽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잔디 구역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런 도떼기시장통광경은 여기 여러 차례 왔지만 오늘이 처음이다. 사람을 밟을라 땀을 삐질거리며 빈자리를 찾고 있는데, 이제 막 공연을 마친 Opening Act 가수가 커다란 전광판에 보인다.
EaJ다!
EaJ_한국이름, 박제형_는 원래도 핫했지만 근래에 더 불붙은 밴드 'Day Six'를 2021년에 탈퇴하고 솔로로 나선 가수이고 나는 이 친구를 케이팝스타 때부터 봐서 익숙한 얼굴이다. 그런데무려 'Imagine Dragons' 콘서트에서 'Opening Act'로 보게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출발하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깊게 남는다. 이번엔그의 공연을 놓쳤지만, 나중에는 독립투어를 하는 가수로 성장해 꼭 다시 만나보기를 희망해 본다. 파이팅!
10월저녁인데도 여전히 더운 애리조나 피닉스, 무대 위 커다란 전광판이 다시 해라도 뜨듯이 빨갛게 변하고, 반바지와 흰 소매 없는 티셔츠 위로 그물 카디건을 걸친 리드싱어 Dan Raynolds가 'Fire in these hills'를 부르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물 카디건을 입은 의도가 무척 선명했다. 김종국 못지않은 근육질 몸매로, 역시나 김종국처럼 간드러진 보컬로 공연을 시작한다.
콘서트 중간중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았다. 그는 9남매 사이에서 자랐다. 시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붙이며 놀곤 했던 그에게 어느 날, 생업에 치여 고단한, 그래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던 아버지가 그의 노래를 듣고너는 소질이 있어라는 한마디로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다했다.그러면서아이들은 어른의 한마디로꿈을 꿀 수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한마디'라고 했지, 몇 시간짜리 설교라는 말은 아닐 거야, 그치?
이 말을 들은 남편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뜬금없이 내 매운 손매를 번다.
어떤 이들은 앉은 채로, 어떤 이들은 선 채로, 어떤 이들은 몸을 흔들고, 어떤 이들은 나오는 노래를 모두 따라 부른다. 앉았다 일어섰다 흔들었다 따라 부르다가 문득, 나는 어떤 모습으로 공연을 즐기는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콘서트 문화는 떼창으로 유명하다. 많은 해외 공연자들이 그 떼창문화에 반해 내한을 여러 번 한다고도 들었다. 여러 공연을 다니면서 그 떼창문화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데 미국 공연에서목청껏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볼 수는 있지만 전율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떼창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도 한몫하겠지만,익명의 다수가 다 같이 같은 곡을 부르며 터질듯한 애정을 공유하는 그 어마어마한 소속감이 주는 도파민도 큰 몫이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혼자라면 할 수 있을까? 혼자 하기는 좀 그런데 옆사람이 하고, 그 옆사람이 같이 하면 할만해진다. 튀지 않을 수 있어 안전함을 느낀다. 혼자만 하지 않는 것, 또는 혼자만 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한 우리들이라 떼창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내가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옆을 의식하지 않는다.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앉고 싶으면 앉는다. 자기 마음대로다. 그러하니 해외 공연자들로써는 수많은 관객이 하나같은 소리를 내는 전에 본 적 없는 관객들의 떼창이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울 것이다. 마스게임이 주는 감동을 떼창을 통해 느낄 것이다.
남들 따라 꿀렁대고 흥얼대며,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광고를 통해 익숙해진 노래들, 아쉽게도 여자친구 만나러 가느라 함께 오지 못한, 이제는 다 큰 아들이 그 옛날, 스틱을 쥐고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드럼 세트 앞에 앉아, 무대 뒤편에 숨은 듯, 숨지 않은, 숨은 것 같이 드럼 연주를 하던 그날이 생각나게 하는 노래들, 'Thunder'를 비롯해서, 포레스텔라가 팬텀싱어에서 불러 준 'Radio Active', 그리고 마지막곡 'Believer'까지 이어진다.
어떠한 공연이던 공연때마다 느끼지만 인디 밴드이던 대형 가수이든 그들의 예술 세계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팬들의 다양성과 수용성이 부럽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음악을 존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다.
Imagine Dragons 공연을 다녀와 후기를 정리하던 중,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뻗어 나오는 예술의 힘이 이렇게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순간을, 타지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지금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김구 선생님이 바라고 바라던 이 광경을, 우리는 이제 현실 속에서 마주하고 있다.
내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강 작가의 책을 구매하고 읽으려는 이 떼창과 같은 뜨거운 열정에, 남들이 다 앉아 있어도 나만큼은 혼자 일어서서 리듬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과 열정이 더해져서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네 도서관에 수많은 한국 작가들의 책들이 곳곳에 꽂히기를. 그러자면 일단 나부터 공연장에서 남들 눈 아랑곳없이 더 씨게 꿀렁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