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1일 차
많은 관식이들, 애순이들, 금명이들과 은명이들을 울렸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가 절찬리 방영 중이던 3월 말,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4년째 방한이다.
매주 부모님과 여행계획이 있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많은 계획이 없다. 예약이 힘들다 해서 한 달 전 동생이 미리 잡아둔 동해망상리조트 2박 일정 외에는 없다.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잘 보내는 것, 돌아가는 날 공항에서 미련이 남지 않도록, 잘 보내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물론 달력 가득 빼곡히 채운 계획을 도장 깨기 하듯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첫날부터 불안하다. 오늘은 뭘 할까, 내일은 뭘 할까. 퇴직 후, 꼭 지켜할 일이 사라져 불안하다 못해 공황장애가 온 아빠의 딸이다.
미국행 이후 6년 만에 처음 본 한국의 초 봄, 보고 싶던 벚꽃은 아직 없다. 따수워질랑말랑 하루 따수면, 하루 싸늘했다. 내가 가져간 옷들은 애매해서, 하루는 두장, 다음날은 세장씩 겹쳐 입었다. 사람들은 겨우내 입던 시커먼 겨울재킷들을 놓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나는 그들 틈서리 꽃처럼 설치고 다녔다. 가져가 옷들이 죄다 봄 색이었기에.
아침 5시 공항에 도착하는 딸과 누나를 데리러 오느라 새벽부터 잠을 설친 온 가족,-부모님과 남동생까지(참고로 나는 단연코, 바득바득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했었다.)-은 집에 들어서자 냉장고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죄다 꺼내 내 코앞에 들이민다. 비행기에서 닭장의 닭처럼 3번의 식사제공을 받으며 사육당하다 왔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몰고 온 낯선 곳의 공기가 사라질 즈음, 긴장을 놓은 부모님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조신다. 다음은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눈 대화.
엄마아빠, 집에 도착하면 눈 좀 붙히셔요.
에이, 우리는 낮잠을 못 자
그 모습, 사진에 담았다. 두 분은 모르신다.
1. the 천혜향
한국에 올 때마다 들었던 야속한 '그' 천혜향 이야기. 그렇게 먹고 싶던 천혜향을 당신은 안 사다 주고 넘 사다준 아빠가 아직도 야속해서, 엄마는 나만 보면 그 얘기를 하신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힘들어 온 가족 다 떠나보낼 뻔했던 학씨 아저씨처럼 미안하단 말 한마디를 못해 수년째 원망을 듣고 있는 아빠다.
아빠, I'm sorry. 아직도 안 하셨어요? 얼른 하셔요.
아빠가 사과하시면 엄마도 That's okay 하시고. 이제 고마 이 사건(?) 정리하입 디데이.
나, 영어유치원 교사 시절, 싸우고 서로 벽 보고 우는 아이들에게, 영어는 가르쳐야겠고, 상황은 정리해야겠고 해서, 사과할 마음도 사과를 받을 마음도 없는 아이들에게 급히 사과와 용서를 종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천혜향에 맺힌 한을 푸는 데는 적절히 사용이 되었지 싶다.
2. the 보자기
여행가방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작은 것은 지퍼 닫아 한구석에 세워두고, 큰 것은 지내는 기간 내내 펼쳐둔다. 정리된 상태로 지내려고 애는 쓰지만 잘 되지 않으니, 정리정돈의 왕, 부모님 눈에는 참 거슬릴 것이다. 첫날 잠시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니, 떡집 같은 데서 주는 커다란 보자기로 내가 펼쳐놓은 여행가방이 덮여있다. 갱년기가 다가오는 딸에게 이래라 저래라는 할 수 없겠고,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릴 수도 없으니 생각해 내신 방법이시겠다. 지내는 내내 나는 꼼꼼히 나갈 때마다 보자기로 가방을 덮어두었다.
3. the 불안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지낸 친정집에 들어오면 색이 바랜 불안이 책꽂이에도 옷걸이에도 베란다에도 들어있다. 옷을 물려입듯이 물려받은 불안인가 싶기도 하다. 이 불안도, 저 불안도 아닌, 그 불안을 스스로 떨춰낸 것이 아니라, 잠시 멀어져 있었던 것이기에, 근처에 오면 작아서 힘을 못쓰던 불안의 조각들이, 녹아 흩어져있던 기억합금처럼 요동을 치는 느낌이다. 친정집 가까이에 지은 지 얼마 안 된 시설 좋은 시립 도서관이 있다. 읽고 싶던 책들을 빌렸다.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책을 여러 권 빌렸다. 그중에 이 말을 꼭꼭 씹는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
아니, 불만
불만을 품으면 불행해진다. 불행해지면 불안이 생긴다. 불안해지면 불만이 생긴다. 불만은 기준이 높아서 생기는 것이고, 기준이 높으면 불안해진다. 그러면 불행해진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무리 걸어도 불만, 불안, 불행, 그 안에 갇힌다. 내가 사랑하는 친정집은 내가 품던 이 불안과 불만과 불행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불러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