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늑대가 나타났“지요”

시리즈 "지요"

by 손은경

빨간망토에겐 남편이 있지요

‘모든 우리 아내 먼저’ 라는 제1사랑 지침을 가진 다정한 사람이랍니다

우린 행복하지요 정말 행복하지요

세상 누구보다 예쁜 사랑을 하지요

처음 만난 그 순간 하늘에서 예쁜 눈을 뿌려줬지요

마치 한 장면의 영화처럼 너무 아름다운 그와 내가

눈이 맞았지요 (*god 애수 中)



계절이 흘러 개구리가 튜브 끼고 계곡엘 놀러 갑니다

차갑게 식힌 생맥주 한 잔이 달가운, 여름이 왔네요

소매가 짧아지고 노출이 시작되었답니다

우리를 감싸던 옷 소매도 댕강 반이 되었지요

그날은 그도 반팔 티셔츠를 입은 날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티셔츠 밑으로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드리웠더랍니다

무엇일까

호기심에 그의 팔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빨간망토는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느느느늑…늑대가?’



소매에 감춰진 늑대의 팔이 드러났거든요!

당황하지 않은 척, 빨간망토는 애써 썩은 웃음을 지어 보였답니다

등줄기엔 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렸구요


KakaoTalk_20220624_090115869.jpg 허락받고 찍은 도촬(ㅋㅋ)


늑대는 제법 인간 같았어요

양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

젓가락으로 파프리카를 집어 먹고

식후엔 양치를, 이틀에 한 번 꼴로 면도를 했지요

0.8에 달하는 시력으로 안경을 쓰기도 했답니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Human being인데,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늑대였다니

말과 행동은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했답니다

아무렴요

그이인걸요



빨간망토는 생각했어요

‘그가 늑대인들 달라질 게 있을까. 우리를 경계 짓던 건 고작 껍질 아니었던가.’

그제야 가출한 정신을 되찾은 빨간망토는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어요



“네가 무어라도 좋아. 인간이라도 좋고 설사 늑대라도 좋아. 대신 정글로 돌아가지만 말아줘.

나와 함께 있어 줘.”



정작 늑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지만

아무렴요

빨간망토는 늑대를 꼬옥 안아준 뒤

팔에 덥힌 털을 제 얼굴에 가져다 대었답니다


KakaoTalk_20220624_090006764.jpg 노털과 유털


그날 밤, 빨간망토는 그의 팔털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더라지요



‘사랑하는데 털은 장애가 되지 않아.

겉바속촉이라잖아.

겉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면이지.

그런데 훈남이기까지 해서 고마워. 후훗.’



겨울이면 그를 더 꼬옥 껴안아야겠다고요

자체 난방시스템을 가진 그라면 이 겨울 결코 춥지 않을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