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믿음을 빌려다 잭다니엘을 사마셨다

시리즈 "지요"(?_?)

by 손은경

네 캔에 만천 원도 비싼 것 같아 한 캔에 천육백 원 하는 발포주를 주로 마시며 여름을 나고 있다. 발포주로 더위를 식히다 이대로 가을이 오는 건 아닐까 싶은 동일성의 연속. 필라이트를 마시고 다시 필라이트를 마시니, 필라이트 2캔이 반쯤 구겨진 채 종이백에 쓰러져있다. 장마가 끝나니 매미가 운다.



*

필라이트는 심리선의 반영이었다. 우리 마음엔 선이 그어있다. 그 선으로 지출을 결정하고 ‘무리’와 ‘안 무리’를 가늠한다. 냉장고 전면에 ‘네 캔에 만천 원’이라 붙은 스티커를 보고 멈칫하고 대신 천육백 원짜리 발포주를 집는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비싸다거나 저렴하다는 판단 없이. 물론 발포주도 맛만 좋고 취하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니 서운해는 마시게 필라이트 제조사여.



*

그날도 필라이트와 보낼 한여름 밤을 계획하던 주말이었다. 낮은 낮대로 분주했는데 오후께, 그에게 톡이 왔다. 얼핏 보니 ‘그리고’로 시작해 ‘…’가 보이는 게 말이 이어지다 말았다. 창을 열어 …에 가린 말들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마지막 마침표(.)까지 읽어낸 뒤 나는 밤의 계획을 수정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고는 남편을 대동해 집을 나섰다. 근처에 가장 큰 GS25로 향했다. 편의점에 도착해 곧장 주류코너 앞에 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은 맥주 말고 위스키 마시자. 그러고 싶어.”


그런 내가 낯선 듯 남편 나를 빤히 쳐다보며 “괜찮아? 너무 비싼데?”라고 했지만 나는 곧장 메시지를 떠올리고는 괜찮다고 했다. 삼만 원대로 적당히 타협해 그곳을 나왔다.


집에 와 얼음이 가득 담긴 잔에 위스키와 콜라를 제 비율따라 홀짝였다. 위스키와 콜라 향이 뒤섞여 목젖을 타고 식도로 내려앉았다. 발포주와 달리 배부르기도 전에 취기가 올라왔고 그러자 그의 메시지가 보고 싶었다. 조금 취했는지 화면이 240p로 보이기는 했지만 거기 분명히 적혀 있었다.


*

그리고 은경씨,

성장을 거듭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어 있을 거예요.

반드시!!



KakaoTalk_20220722_133824838.jpg 그밤 우리는 낯선 손님을 들였다





당신의 믿음을 꾸어다가 잭다니엘을 사마셨다.

전해 받은 믿음이 내게 자리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튕겨 나가던 때가 있었는데 그제는 살포시 가라앉아 가슴에 스미더라. 피가 되어 온 몸을 뜨겁게 흐르더라.


그게 여유가 되더라.

그래서 천육백 원에도 종종대던 내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위스키를 선호해서도 일평생 친해본 적 없는 위스키 맛을 알아서도 삼만 원짜리 위스키로 폼 잡고 싶어서도 아니라, 해방하고 싶어서. 가격 앞에 쭈뼛대지 않고 대범하고 싶어서 기분 같은 걸 내보고 싶어서, 그 믿음이 정말 내 것이 됐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호기 같은 것을 부렸다.

천육백 원짜리 필라이트 말고 삼만 원짜리 잭 다니엘을 사 마셨다. 무얼 마셔도 취할 수 있다는 걸, 위스키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진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이 경험은 흩어지지 않고 남아 때마다 떠올리게 할 것이다. 당신의 믿음으로 잭다니엘 사 마실 용기가 났다는 것. 굴하지 않고 쓰게 했다는 것.


당신의 믿음을 빌려다 잭 다니엘을 사마셨다.





ps.

그 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로또에 당첨 되면 이런 기분일까요. 명랑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아 하늘로 둥실둥실, 나를 띄운 것 같았고요, 자칫 오토바이 사고 싶다는 남편에게 ‘사사사! 당장 질럿!’ 할 뻔도 했습니다. 어쩜 위스키도 그저 지른 걸까요.


너는 써야지. 쓰는 사람이지. 그러니 써야지, 끝까지.

라고 해준 것 같아 그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줄 게 없어 글로 마음을 대신합니다. 빌려준 믿음은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