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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04.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10)

마지막 기회를 위하여

  서파에서 안개 탓에 천지를 온전히 보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말했다.

  "오늘 천지를 못 보셨으니, 내일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내일은 북파에 갈 건데, 거긴 한참 대기해야 돼요. 이도백하에서 가깝고, 서파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거든요.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곳이에요. 일요일이니, 아마 인파가 어마어마하겠죠. 중국 전역에서 기차 타고, 어르신들이 엄청 몰려올 거예요. 내일은 천지를 꼭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조식을 안 먹고 일찍 출발하는 건 어떠세요?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잘 상의하셔서 결정하세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기필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천지를 꼭 보고 싶었다. 다른 일행들도 모두 한마음이었다.  

  전날 밤, 숙소 편의점에서 컵라면 두 개와 구운 달걀 하나를 샀다. 다음날 조식으로 먹을 음식들이었다. 성인 남녀 두 명이 고작 이것만 먹기엔 식사가 너무 부실했다. 하지만, 가진 돈이 없어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상점에서 카드 결제는 아예 불가능하고, 현금만 지불 가능했다. 돈 쓸 일이 없을 줄 알고, 소액만 환전한 게 후회됐다. 다랑이 과거 학창 시절에 중국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쓰고 남은 위안을 챙겨 와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한편, 계획에 없던 선택 관광비를 치르기 위해 귀남 오빠로부터 약간의 달러를 빌렸다.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 노인은 실내에서 흡연 중이었다. 내부 공간도 비좁은데, 코앞에서 연기를 풍기니 숨이 턱 막혔다.

  '중국은 실내에서 대부분 끽연 가능하다던데, 정말이로군. 너무너무 싫다!'

작년에 중국 출장을 다녀온 한 지인에게 중국에서의 생활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식당이고 카페고,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흡연하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웠어요! 중국에서 살기 싫어요."

다랑은 넓은 대륙에서 살고 싶은지 내게 중국에서 사는 건 어떠냐고 의향을 물었으나, 단박에 거절했다.

  "No!"

중국에서 며칠 머물지도 않았으나, 한국이 매우 그리웠다. 


  '화장실에 대부분 휴지가 없음. 기초 시설이 낙후함. 불편함. 서비스가 부족할 수 있는 점을 인지하시고,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백두산이 주는 웅장함과 감동을 즐기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여행 기간을 즐겨 주세요!'


  위 글은 여행사에서 배포한 안내문의 글귀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

공공 화장실에 갈 때 휴지를 준비하는 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별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금연이 의무가 아니라는 건 놀라웠다.

  또, 전세 버스를 타며 이동할 때 본 주택과 상점들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지저분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도백하에서 살던 조선족들 대부분이 한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아, 그래서 한국에 조선족들이 많군. 아무렴, 고향 땅이 최고지!'

  빈약한 조식으로 배를 채우자, 시간적 여유가 넉넉했다. 다랑과 어제 둘러보지 못한 숙소 앞 공원에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는데, 잡상인들을 만났다. 백두산 손수건, 산삼 등을 파는 모양이었는데, 사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처지가 딱했다. 남자 상인이 나를 보더니,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예뻐요."

뭐가 예쁘다는 건지 곰곰이 생각하니, 개구리 모자를 보고 칭찬한 것 같았다. 게다가, 모자에 빨강 하트도 대롱대롱 달렸다.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밤톨 만한 흰 강아지도 주인을 용케 졸졸 따라다녔다.

  "발레 보여 줄게!"

다랑은 그다지 원하지 않았으나, 발레 시작한 지 반년 된 초보 발레리나는 웃으며 열심히 춤을 췄다. 

  집합 시간이 다가왔고, 일행은 제 시각에 빠짐없이 모였다. 간절히 원하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드디어 북파를 향해 출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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