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산동 칵테일바 쉘터

지인에게 추천받은 곳

by 슈히

지인이 가보라고 추천한 곳인데, 그간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에서야 다녀왔다. 지인은 작년 상반기에 잠깐 근무했던 칵테일바에서 처음 만난 언니인데,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세종시로 이사 갔다는 소식은 또 다른 지인을 통해 들었다.

추석이 지난주의 토요일 19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나는 한여름이었는데, 비가 오면서 갑자기 가을이 돼버렸다. 여름옷을 미처 다 입어보지도 못한 채, 여름이 떠나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남자 바텐더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디에 앉으시겠어요? 테이블 혹은 바?"

바텐더가 물었고, 다랑이 대답했다.

"바에 앉을게요."

벽면에는 스크린이 있었고, 흑백 영화 <로마의 휴일>이 상영 중이었다. 거울 앞을 지나며 화장실에 들러 내부를 슬쩍 훑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을 보며, 창가로 나와 가지런히 정돈된 탁자와 의자에 시선을 돌렸다. 부엉이 장식과 즐비한 술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매장 규모도 넓고, 깔끔하다.'

바에 돌아와 앉았다. 첫 잔은 우도 바이브, 다른 매장에선 본 적 없는 특색 있는 칵테일이었다. 제주 알밤 막걸리와 달걀노른자가 재료라길래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고풍스러운 잔에 담긴 하얀 액체는 마치 우유 같아 보이기도 했다. 비터 가니시의 횡단은 절도 있게 느껴졌다.

메뉴판을 펼치자, 시그니처 칵테일들은 친절하게도 그림이 곁들여 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입장에선 낯선 칵테일을 이해하기 쉽고, 고르기 편리하므로 마음에 쏙 들었다.

다랑의 첫 선택은 헹키 펭키, 도수 4단계였다. 나는 주로 낮은 도수의 칵테일을 고르는 반면, 그는 늘 높은 도수를 선호한다.

"여자 친구 따라서 왔는데, 칵테일바는 여기가 두 번째 방문이에요."

다랑이 먼저 바텐더에게 말을 건넸다. 곁에서 나도 거들었다.

"남자 친구는 원래 주량이 소주 5병에 달했어요. 남자 친구가 원래 술을 참 좋아하는데, 지금은 술 완전히 끊었어요."

"어, 왜요?"

바텐더가 이상히 여기며 질문했다.

"제가 술을 아예 안 마셔요. 그리고, 술과 담배를 안 하는 남자를 선호하거든요. 남자 친구는 술 대신 저한테 취하는 거죠."

"술 안 좋아하시면서, 여긴 왜 오셨어요?"

바텐더가 연달아 물었다.

"분위기를 마시러 왔어요."

이윽고, 주문한 칵테일 두 잔이 나왔다. 우도 바이브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한 마디로, 취향 저격이었다. 땅콩을 가미한 우유 느낌이어서 좋았다. 다랑이 맛보더니, 감상을 말했다.

"에계! 이게, 술이야?"

웃으며 대답했다.

"난 이런 거 좋아해. 도수 연한 것만 마셔도, 금방 취하거든."

두 번째 잔은 스윗 제인을 골랐다. C/J라는 글씨가 보이길래, 바텐더에게 질문했다.

"이건 무슨 약어예요?"

"크랜베리 주스요."

이것도 역시, 제일 낮은 도수였다. 재료를 살폈다. 패션 후르츠 시럽과 코코넛 시럽, 파인애플 주스 등 열대 과일 재료들이 다수 나열돼 있길래, 선뜻 골랐다. 풍부한 흰 거품이 마치 흰 구름 같기도 하고, 하얀 맥주 거품을 연상케 했다. 오렌지 필이 중앙에 사선으로 꽂혀 있는 모습이 마치 과일의 꼭지처럼 느껴졌다.

다랑이 두 번째로 고른 칵테일은 프렌치 커넥션.

"여기 추천한 지인이 좋아하는 칵테일이야. 프랑스 술이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뭐였더라? 아, 다 잊어버렸어."

바텐더가 고맙게도 디사론노 새 술병을 꺼내 바에 올려놨다.

"이건, 이탈리아 술인데?"

다랑이 말했다.

"그러네, 아몬드향. 내가 잘못 알았나 봐."

귀가 후, 프렌치 커넥션에 대해 검색하니 프랑스 주류인 코냑이 들어간다는 설명이 나왔다.

'아,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군. 단지 기억이 안 났을 뿐.'

술을 마실 기회도 드물고, 굳이 찾아 마시지 않아서 칵테일잔의 이름도 거의 잊었다.

"이건 하이볼 잔이죠? 그럼, 이건 이름이 뭐예요?"

스윗 제인이 담긴 잔을 들어 바텐더에게 보이며 물었다.

"프렌치 커넥션은 온 더 락 잔이요. 올드 패션 잔이라고도 불러요. 조주 기능사 보유자라면서요?"

"술 공부할 기회가 아예 없어서, 다 까먹었어요. 칵테일바에 연 1~2회 올까 말까예요. 상반기에 1번, 하반기에 1번. 올해 총 2번 왔네요."

세 번째 칵테일은 우우. 처음 접하는 칵테일이었다. 피치 시럽과 크랜베리 주스가 재료였는데, 검색하니 여자들이 좋아하는 칵테일이었다. 다랑의 시선은 추사뮬에 멈췄다.

"추사 김정희?"

내가 묻자, 다랑이 부인했다.

"'한국의 칼바도스라고 불리는 추사.'"

"칼바도스? 익숙한 이름인데...... 섬 이름 같군."

두 번째 잔을 마시면서부터, 이미 알딸딸한 상태였다. 다랑이 선택한 독한 술들을 들이켠 탓 같았다. 마지막 잔을 홀짝였다.

, "사과 같은데."

"아, 애플 마티니?"

애플 마티니는 조주 기능사 출제 문제였던 칵테일이다. 그런데, 다랑은 추사뮬을 고르지 않았다. 바텐더와 대화하더니, 고스트 메리로 결정했다.

"오이는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해요. 오이, 정말 싫어요!"

"오이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더라고요. 난 괜찮던데."

"누나도 오이 보다 당근파 아니었어?"

"그거야, 당근이 영양가가 더 많으니까. 오이는 수분 외에는 양분이 없는 걸로 알거든."

고스트 메리는 블러디 메리를 재해석한 해장술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해장술을 왜 한담?"

내가 툴툴거리자, 바텐더가 재치 있게 대답했다.

"또 취하려고 해장하는 거죠."

설득력이 충분했다. 바텐더가 셀러리와 토마토를 투명한 액체 속에 퐁당 빠뜨렸다.

"그거 진짜 채소예요? 먹어도 되는 건가요?"

다랑이 질문했다.

"네, 먹어도 돼요. 토마토는 생과일 아니고, 젤리예요."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총 6잔, 합계 11만 1천 원. 거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 비싸! 이러니, 칵테일바에 자주 못 오지......'

자리를 뜰 때까지 우리 외에 다른 손님은 전혀 없었다. 큰 매장을 다랑과 둘이서 전세내고, 바텐더와 대화하며 즐겁게 놀다 귀가했다. 서늘한 가을밤이었다.

"고스트 메리, 인상적이었어. 오이냉국맛!"





20240921_191346.jpg 우도 바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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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_191730.jpg 헹키 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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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_193004.jpg 스윗 제인












20240921_193401.jpg 프렌치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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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_194831.jpg 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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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_195246.jpg 고스트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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