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Nov 23. 2024

내원

  수술 후, 8주가 경과했다. 수라는 서울 금와 병원에 내원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기상했다. 외출 채비를 하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휴, 이걸 앞으로도 쭉 해야 한다는 거지? 정말 골치 아픈 일이로군......'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간 기증자는 퇴원 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수술한 시점에서 2개월 후, 그 후엔 첫 검진받은 시점에서 4개월 후, 또 그다음엔 그로부터 8개월 후 이런 식이었다. 초반에는 검진 빈도가 잦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드문드문해지는 식이었다.

  '아, 아까운 내 수명! 정말, 가기 싫다......' 

  모녀는 대림시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오빠 준우는 예약이 밀려 이날 함께 오지 못했다. 한참 후에나 내원 일정이 잡힌 모양이었다. 모녀는 약 2시간가량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또다시 택시로 갈아탔다. 환자인 수라에게는 고된 여정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병원은 주차장마다 차량은 빼곡했고,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세상에! 전 국민이 여기 다 모인 것 같군.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으으, 1초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은 장소다!'

 실내에서 분주히 오가며 근무하는 의료인들을 보며, 수라는 생각했다.

  '과연, 의료업은 영원히 인기가 식지 않을 직업군이로군. 의료인들은 전쟁이 나도 굶어 죽지 않을 사람들이지!'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대기 시간은 길고도 지루했다. 접수와 수납을 거쳐 수라는 각종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조영제를 투여해 촬영했다.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지? 휴, 걱정된다...... 이번 수술을 겪으면서 수명이 10년 이상은 분명 줄었을 거야.'

  검사를 마치고, 외래 진료 담당의를 만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수라의 차례가 됐다. 모녀는 의사가 앉은 책상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그는 머리가 훌렁 까진 40대 남자였고, 안경을 썼다. 수라는 긴장하며 질문했다.

  "간은 얼마나 자랐나요?"

  모녀의 기대와는 달리, 황 의사의 태도는 무성의했다.

  "안 자랐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안 자랄 거예요. 왜냐하면, 우측 간 70%%만으로도 일상생활은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절개된 좌측 간 30%는 재생이 되지 않는 거예요."

  수라는 너무 놀라서, 동공이 흔들렸다. 입만 뻐끔거릴 뿐,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먼 길을 달려 어렵게 만난 의사는 수라에게 희망은커녕 절망을 안겼다.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서 귀가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간이 안 자란다고? 그럼, 그 사실을 수술하기 전에 고지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건 사기다! 수술 동의서 작성할 땐 그런 설명이 전혀 없었어.'

  다음날, 수라는 병원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치를 따졌다. 그러자, 담당의가 아니라 다른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라가 유선상으로 들은 목소리는 담당의보다 비교적 젊었다. 정 의사가 말했다. 

  "민수라 씨 간은 안 자랐어요. 그런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니 괜찮지 않나요? 문제 될 것이 없잖아요."

  "뭐라고요?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좌측 간을 절제하면 재생되지 않는다는 걸 사전고지해야 옳은 것 아닌가요? 서울 금와 병원장 연결해 주세요!"

  수라는 너무 놀랍고, 기가 막혀서 폭발할 지경이었다. 황 의사도 연락이 없는데, 하물며 병원장이 수라에게 연락할 리 만무했다. 다음날, 정 의사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수라의 좌측 간이 자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눈 가리고 아웅이군. 바보 집단인가? 처음엔 간이 안 자란다고 해놓고, 내가 난리 치니 간이 자랐다고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네?'

  수라는 당장 장문의 호소문을 작성해 인터넷에 게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민수라라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한 기증자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전화 한 통화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요? 아산병원은 환자는 많고 의료진은 부족한 탓을 그저 체계의 한계라며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는 현재 아직도 입원 중이십니다. 본래 간 이식 수술 후 4주 전후로 퇴원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수술 후 10주가 지나도록 여태 병원 신세를 지며 거의 날마다 시술을 받고 계십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의사들은 서로 발뺌하기 바쁩니다. 정확한 상황설명은 언제나 뒷전인 듯 보입니다. 환자가 분노에 찬 항의를 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서울 금와 병원의 무책임한 실태를 고발하며, 정 의사와 통화한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그러자, 게시글에 비공개로 답글이 달렸다. 친구 미영이었다.

  "헉! 의사가 왜 저래? 귀중한 사람 몸에 뭘 해도 정확하게 사전에 얘길 해줬어야지! 아이고, 몸도 피곤하고 맘도 안 좋을 텐데 이번 일 신경 쓰느라 건강 해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얼른 의사가 사과도 하고 조치를 취해야 되고! 의사가 나쁘네!"

  수라가 대답했다.

  "내가 이 얘기를 큰 외숙부께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큰 외숙부가 몇 년 전에 어느 병원에서 쓸개 수술을 했는데, 잘못돼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셨대. 전 병원에 그걸 따졌더니,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더래. 뻔뻔하기가 아주 사기꾼 뺨쳐. 다행히, 큰 외숙부는 자연 치유되셨대."

  게시글을 접한 불특정 다수가 수라에게 간 이식 수술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털어놨다.

 

북극성: 1차 결과 듣기 위해 정 의사 선생님 진료 기다리는 중에 게시글 봤어요. 현재 수라 님과 아버님 건강 상태를 여쭤봐도 될까요? 공여자의 간은 재생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 또한 궁금합니다. 친정 엄마 수혜자 검사했을 때만 해도 12월에 수술해도 예후가 좋을 거라고 했는데, 하루하루 병세가 악화되고 있어서요. 간경화 말기예요. 저는 44살이라서, 35살 이전 공여자들이 부럽네요. 남동생이 먼저 공여자 검사 했는데, 지방간이 보인다고 해서 2차도 미뤄졌어요. 수술만 하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후가 안 좋을까 봐 겁부터 납니다.

 

민수라: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간암 환자세요. 본가는 대림인데, 서울 금와 병원 진료받으러 가끔 가셔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미리 알았더라면 수술 안 하셨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간은 절제해도 재생된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이건 이론에 불과해요. 이론과 실제는 다소 차이가 있고, 차는 항상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잖아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죠. 수술을 결정하셨다면, 서둘러하는 것이 좋을 텐데, 서울 금와 병원은 워낙 환자가 많아서 그냥 기다리는 수밖엔 없어요. 저도 간 매칭 검사하고, 6개월 대기하고 수술했거든요.


북극성: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간 공여하고 나면, 저는 간 면적이 34.7% 남는대요. 40살 넘으면, 최소 35%는 남아야 한대요. 아슬한 크기라서, 2차 검사하기로 했어요. 수술할 거면 빨리 해야 하는데, 점점 두렵네요. 동생이 수술해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수술이 부담스럽고요......


민수라: 서울 금와 병원에서 말하길, 아버지, 오빠, 그리고 저는 원래 간이 작아서 기증할 수 있는 간 자체도 작대요.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저와 오빠가 아버지께 간을 이식해 드렸어요. 1:1이 아니라 2:1로 수술했죠. 저는 30%, 오빠는 35% 떼 드렸어요. 수술비는 약 X억 들었을 거라 추정합니다. 어머니께서 제 명의로 대출 X, XXX만 원 받으셨어요. 저는 각자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서, 간 이식 수술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생명 연장하면 뭐 합니까? 어차피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걸요.


야옹이: 안녕하세요. 간 이식 검색하다가 수라 님 게시글을 발견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오빠 분과 2:1로 수술하신 건가요? 2:1이라서 좌측 간을 절제하신 건가요? 정 의사가 좌측 간이 자라고 있다고 했는데, 정말 자랐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민수라: 안녕하세요. 저랑 오빠랑 아버지랑 셋이 2:1로 간 이식 수술했습니다. 제가 30%, 오빠가 35% 절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좌측 간 절제가 아마 맞을 거예요. 저는 이 사건 이후로 서울 금와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의사들 태도가 영 못 미더워서요. 대림의 가톨릭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는데, 간이 자랐다고는 합니다. 이것도 영 신뢰가 안 가지만요.


하이힘드셨겠어요. 수술은 잘 되신 건가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민수라: 건강 관리 열심히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의료인이라고 다 선한 분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