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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에서 생긴 일(상)

by 슈히

운동하다 만난 수정 언니는 특이한 외형의 가방을 번갈아 가며 들고 다녔다. 최근에 다른 곳에서도 언뜻 본 적 있는 제품이었다.

"어, 이거 요즘 많이 보이던데! 좋아요?"

쉬는 시간에 언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응, 엄청 가벼워. 무게가 안 느껴질 정도야."

"명품인가 보다! 얼마예요?"

"XXX만 원. 일제야."

"비싸다! 일본 여행 가서, 가방도 사 오면 되는데, 뭐 하러 그리 비싸게 샀어요?"

"일본 갈 시간이 없어."

"그냥, 짐을 안 들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니에요?"

수정 언니는 말수가 적고, 차분했다. 어느 순간, 더 할 말이 없어서 이렇게 물었다.

"언니의 관심사는 뭐예요?"

"음, 내가 하는 사업."

"아, 사업을 하시는구나! 어떤 사업하세요?"

그러자, 그녀가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총 3회 관리 무료 체험권이었다. 상호에서 잠시 눈이 머물렀다.

'예전에도 본 것 같은 이름인데, 어디서 봤을까?'

문득 4년 전, 모임에서 만난 모은주 씨가 떠올랐다. 그녀는 내게 마스크 팩을 선물했다. 안 지 얼마 안 됐고, 별로 가깝지 않은데도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궁리하다, 그녀에게 질문했다.

"은주 언니, 혹시 독서 좋아하세요?"

"응, 좋아하지!"

"다행이네요. 그럼, 제가 출간한 단행본 한 권 선물할게요. 따끈따끈한 신작이에요! 언니,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택배로 보낼게요."

며칠 뒤, 택배가 정상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모은주 씨에게 연락해 안부를 물었다.

"은주 언니, 책 잘 받으셨어요? 제 첫 단행본이에요. 다 읽고 나면, 감상 한 마디 부탁해요."

그런데, 모은주 씨는 통 연락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의 SNS를 살펴보니, 겨울 바다를 보러 친구와 여행 간 모양이었다. 다른 게시물도 쭉 훑었다. 그녀는 자신의 순조로운 사업을 찬양했고, 부유한 생활을 은근히 과시했다. 전반적으로 스스로의 인생에 스스로 만족하는 듯 보였다.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 걸까?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이유인진 몰라도, 모은주 씨는 이제 나와 연락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수정 언니를 만나러 그녀의 사업장을 방문하며, 막연히 생각했다.

'혹시, 여기서 은주 언니를 우연히 만나려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첫 방문에 은주 언니를 발견했다. 그런데, 4년 전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대충 걸친 듯한 평상복과 큰 안경은 치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진한 화장도 눈에 거슬렸다.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두꺼운 화장으로 잡티를 대충 가린 느낌이야. 이런 데서 영업하려면, 본인 외모부터 가꿔야 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동일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직원에게 물어 확인했다.

"저분 성함이 혹시 모은주 씨인가요?"

"네, 맞아요. 아는 분이세요?"

"아, 몇 년 전에 잠깐요. 제가 아는 분이 맞나 싶어서 여쭤 봤어요."

"먼저 인사하지 그러세요?"

"음, 아니에요. 별로 반가운 상대는 아니거든요."

두 번째 방문에서도 모은주 씨를 볼 수 있었으나, 굳이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다가가서 할 말도 없거니와, 존재를 알려봤자 별 이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 번째 방문에서 별안간 기회가 왔다.

강사가 예비 사업자들을 교육하는 중이었고, 나는 제품 무료 체험 중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는지 호기심이 들어 좌우를 살피던 중, 대각선 뒤에 앉은 모은주 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분명,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헉, 가깝네! 근데, 방금 날 쳐다보고 있었던 건가?'

"혹시, 오늘 처음 오신 분 계실까요? 앞으로 나와서 자기소개 한 마디 하시면, 선물드릴게요!"

강단에 선 사회자가 말하자, 곁에 앉아 있던 수정 언니가 나를 툭 쳤다.

"어서 손 들어. 너, 처음 왔잖아. 나가서 선물 받아."

그녀가 넌지시 일렀다. 마침, 나갈까 말까 주저하던 터였다.

"그럴까요?"

그때, 나는 우스꽝스럽게도 얼굴에 덕지덕지 팩을 잔뜩 바른 채였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강단에 올랐다. 사회자가 넘기는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아는 언니 소개로 이 자리에 왔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알던 또 다른 언니가 이 자리에 계시네요. 모은주 씨? 제가 책 한 권 선물했는데, 연락이 안 되시더군요. 아, 그리고 제 이름은 슈히입니다."

그러자, 모은주 씨가 앉은자리에서 여자들이 웅성거렸다. 사회자가 넘긴 사은품을 받고, 공손히 인사한 후, 강단을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오자, 모은주 씨가 가까이 다가와 질문했다.

"우리, 아는 사이예요?"

"기억 안 나세요? 저 차단하셨나 봐요. <저 등산 안 좋아하는데요?>라는 책 선물로 드렸잖아요."

"어, 내가 차단할 리는 없는데......"

은주 언니는 그날따라 유독 안색이 까맸다. 나는 하고픈 말들을 톡 쏘아붙이고, 고개를 돌려 강연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수정 언니는 먼저 로비에 나와 대기 중이었다. 그녀에게 질문했다.

"모은주 씨 가까이서 봤는데, 얼굴이 새까매요. 대체 왜 그런 거예요? 좋은 화장품 쓰면, 피부에서 윤기가 나야 하는데."

그러자, 은주 언니가 대답했다.

"직급이 높을수록, 자기 관리하기가 어렵지. 매일 부하 직원들 교육하고, 영업하느라 아마 눈코 뜰 새 없을 거야."

"아, 그렇군요. 안타깝게도, 본인의 건강과 돈을 등가 교환하는 거네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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