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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떠난 하노이(11)

여성 박물관과 녹색 음식들

by 슈히 Feb 18. 2025

  여성 박물관으로 향하던 도중, tet이라는 문자를 발견했다. 이번 여행 내내 식당과 카페에서 지겹도록 접한 단어였다. 연휴 기간 동안 대부분 20%의 할증이 붙었는데, 돈이 아까웠다. 다음엔 절대 연휴에 베트남에 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tet이 연휴 할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검색하니, 베트남의 설을 뜻했다.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를 가지며, 베트남 문화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다. 음력으로 1월 1일부터 1월 7일까지 해당하는 긴 연휴이다. 베트남인들은 친지들을 만나 바인 쯩 등 전통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연휴를 보낸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7%8F)


  다랑이 말했다.

  "베트남에선 토끼띠를 고양이띠라고 한대."

  "아, 그래? 신기하네. 우리나라에 고양이띠는 없잖아."

  "누나가 토끼띠잖아. 여기선 고양이띠네."

  "그래서, 작년에 호찌민에서 만난 안마사가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나?"

당시 내 담당 안마사는 1987년생이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우리는 동갑이라고 말하며, 토끼띠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못 알아 들었다.

  바인 쯩이 뭔지 궁금해서 검색하니, 호텔에서 아침마다 먹은 음식이었다.

  "진득진득한 녹색 쌀이 이곳 명절 음식이구나. 와, 새로운 걸 알았어! 신기해!"


  베트남의 새해(뗏) 음식이다. 바나나 잎이나 코코넛 잎, 또는 라종 잎에 불린 찹쌀과 간 녹두, 양념한 돼지고기 등을 넣고, 네모나게 싸서 삶아 만든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C%9D%B8_%EC%AF%A9)



  인터넷에서 검색한 여성 박물관은 별로 볼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가보지 않고는 어떤 곳인지 판단할 수 없기에 방문했다.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제일 젊었다. 60대 이상은 돼 보이는 노인 관광객들이 다수였고, 서양인들이었다. 할머니 4명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오, 여자 4명이서 여행을 오다니 부러워! 노년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천장에는 베트남 전통 모자를 길게 이어 붙인 장식들이 즐비했다. 문화 해설사가 조각상 앞에서 관람자들에게 영어로 설명 중이었다. 청중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 중이었다.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는 건 지루해서, 이동했다.

  유아를 안고 있는 황금색의 어머니상 앞을 지나며, 다랑이 별나게 말했다.

  "여자 가슴이 엄청 커! 베트남인은 아닌 것 같은데."

조각상의 수박만큼 거대한 가슴을 보며, 싱겁게 웃었다.

  전시물들은 전체적으로 볼거리가 없었다.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트남 전통 의상과 혼례복이었다. 화려한 문양이 수 놓인 아오자이를 보며, 한벌쯤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복과는 달리 평소에 입어도 간편할 것 같네.' 

  전통 의식 영상이 있길래 잠깐 멈춰서 봤는데, 볼수록 가관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20~30대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가 막춤을 추고 있었다.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무형 문화재인가? 저게 무슨 전통 무용이야? 저건 나라도 출 수 있겠다. 왜 이런 영상을 틀어놨지......"

  여성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다. 오후에 탕롱 수상 인형극을 관람하기 전까지 숙소에서 잠시 쉴 예정이었다. 다랑이 제안했다.

  "유니클로에 잠시 들리자."

  "왜?" 

  "여기서만 판매하는 특이한 상품이 있을 수도 있잖아. 구경하러 가자."

  "응. 특별한 일정 없으니까, 그렇게 하자."

  다랑은 진열된 제품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구매할 것만 사서 서둘러 상점을 나서는 편이었다. 살 것도 아니면서 구경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과연, 유니클로에는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특별한 제품이 있었다. 바로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가 그려진 반소매 티셔츠였다. 그림 속의 그들은 아오자이를 입고 있었다.

  "예쁘다! 이거 사서 같이 입자. 두 번째 커플티!"

그러나, 다랑에게 맞는 크기가 없었다.

  "4XL는 돼야 입을 수 있어. 2XL까지밖에 없잖아."

  "맘에 드는데, 입을 수 없다니......"

  "그냥, 누나 혼자 입어."

  "......"

둘이 함께 맞춘 옷이나 반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구매하지 않았다.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반미를 먹었다. 제대로 갖춰진 식당에서 훌륭한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취향에 맞는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았다. 정상 영업 중인 곳이 드문 탓이었다. 불만스러웠으나, 배가 고픈 나머지 그냥 길거리 음식을 선택했다.

  작은 공간에서 모녀가 장사 이었다. 10대 소녀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계산했다. 그녀는 잠옷 차림이었는데, 그 점이 다소 민망했다. 가장 비싼 반미를 골랐다. 맛은 있었으나, 환경이 더러웠다. 상인이 사용하는 작은 선풍기는 새까만 먼지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저 오염된 선풍기로 고기를 굽는단 말이지...... 휴, 이런 데서 식사를 대충 때우고 싶진 않았는데!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이번 여행 맛집은 정말 망했어! 슬프다......'

  매연이 가득한 거리에서 서둘러 끼니를 때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콩 카페 앞을 지나는데, 녹색 떡이 보였다. 다랑에게 물었다.

  "저거 궁금해. 어떤 맛일까? 맛있을까? 전통 떡인가?"

  "그럼, 사서 먹어보자. 시간이 너무 많이 비는데, 우리 콩 카페 갈까? 음료랑 곁들여서 떡 먹게."

  "어, 그래. 좋은 생각이다."

탕롱 수상 인형극 상영 전까지,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게다가 콩 카페는 성 요셉 대성당 앞에 위치했다. 성당의 경치를 보며 차 한잔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수락했다.

  콩 카페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층은 실내와 실외가 모두 붐볐다. 2층으로 피신했다.

  "화장실이 어디지?"

화장실은 2층이었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의 한 여자가 줄곧 앞에 서있었다.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어요?"

내가 묻자, 그녀는 10분 이상 대기했다고 대답했다. 어떤 이가 화장실을 이렇게 오래 점령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안경 쓴 젊은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화장실에서 급히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가 그토록 오래 차지한 화장실의 공기가 마냥 쾌적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급하진 않아서 일부러 화장실에 가지 않고 견뎠다. 

  떡을 감싼 포장 겉면의 글씨를 스마트폰으로 번역하니, 녹두라고 했다. 특별히 맛있다고 할 순 없었으나, 새로운 경험이기에 의미 있었다. 한편, 길거리에서 파는 녹색 쌀을 맨손으로 집어 씹는 사람을 봤다. 과연 어떤 맛일까 호기심이 일었지만, 시도하지 않았다.

  주문이 밀려 있어서, 음료는 한참 후에 나왔다. 음료를 들이켜자, 찰진 녹색 쌀이 씹혔다. 쫀득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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