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간> 김동식 작가의 강연
주민센터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포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주 김지용의 강연이 만족스러웠고, 혹시 괜찮은 강연이 더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회색인간>의 김동식 작가와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의 저자 김민섭의 강연이 남아 있었다.
<회색인간>이라는 책은 다른 도서에서 접한 적이 있어서 낯익은 제목이었는데, 독서한 적은 없어서 생소했다.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유튜브에서 김동식에 대해 검색했다. 과연, 김동식은 놀라운 인물이었다.
그는 특이한 이력의 소설가였다. 평소 독서를 즐겨하지도 않았는데, 1년 6개월간 단편 소설 300편 이상을 뚝딱 창작했다.
'다작이 명작이로군!'
끈기와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공유한 그의 작품들의 가치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김동식에게 다양한 제안을 했으나, 김동식은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김민섭 작가와 인터뷰를 한 후, 작품의 일부를 출간했다. 천재 신인의 혜성 같은 등장이었다.
평소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터라, 김동식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영상을 통해 본 그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예술에는 노동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2017년이면, 내가 굉장히 힘들었을 시기로군. 대학원 석사 논문 준비하느라 학교에서 살았을 때네. 졸업 후엔 간 이식 수술하느라 환자로 지냈고. 한가하게 소설이나 읽을 때가 아니었군.'
강연 장소는 도서관 3층의 강당이었는데, 공간이 아담했다. 무대 좌측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가 바로 김동식이었다. 커튼이 살짝 드리워져 있었다. 객석 맨 앞줄에 자리 잡았는데, 김동식이 나를 보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웃으며, 맞절했다.
이윽고, 강연이 시작됐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인사했다.
"트리플 하트는 이렇게 만들어요."
처음 보는 하트 모양이었다. 다음에 써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김동식은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강연 중간에도 띄엄띄엄 개그를 날렸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들이 칼싸움하면 무슨 소리가 날까요?"
"......"
"스승~!"
칼부림하는 듯한 의성어가 들렸다.
"스님의 목을 치면 무슨 소리가 날까요?"
"......"
"목, 탁!"
"......"
"친일파들이 좋아하는 안마 의자는 뭘까요?"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근육 이완용입니다."
"......"
인상적인 것은 '아이스크림들이 수감된 감옥에선, 누가 제일 나쁜 놈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죠스바인가?'
아이스크림 중에 범죄자형이 있던가, 하고 떠올렸다. 확신이 없어서, 대답하진 않았다. 김동식이 말했다.
"정답은 빵또아입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죠."
'감방에 또 와?라는 뜻이군. 초범이 아니니까, 나쁜 놈이 맞네.'
김동식은 자신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산 출신은 그는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참 잘해서, 동네엔 그의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시내 오락실에서 60연승을 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당시, 저를 보러 온 사람들로 오락실이 가득 찼죠."
그는 군 면제를 받았다. 중학교 중퇴로, 학력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만 했다.
김동식은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대구의 어느 PC방에서 4년간 근무했다. 그는 청중들에게 질문했다.
"당시 저의 시급은 얼마였을까요?"
"3천 원......?"
한 관객이 되물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의 시급을 가늠하려니, 대략 그 정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사뭇 달랐다.
"1,900원이었어요. 하루에 11시간씩 7일 근무했고, 365일 1년 내내 단 하루도 쉬지 못했어요. 명절에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도 없었죠. 노동력 착취였어요. 그런데, 그땐 그게 노동력 착취인지조차 전혀 몰랐어요."
그러던 와중, 아는 형이 김동식의 자취방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만 30만 원을 아는 형에게 도둑 맞고 말았다.
"제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악역은 최무정이라는 이름이 많아요. 왜냐하면, 돈 훔쳐간 그 형이 최 씨였거든요. 이름은 기억이 안 나요. 30만 원은 그 형에게 모델료를 지불한 셈이죠."
안타깝고, 억울한 사연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격이었다.
"20대 초반부터 10년 8개월간 주물 공장에서 근무했어요. 서울 사는 외숙부의 소개로 입사했는데, 가족 같은 회사였어요. 직원 5명 중 3명이 실제로 가족 관계였거든요(웃음). 첫 월급은 130만 원이었어요. PC방에서 4년간 근무했던 월 수입의 2배 이상이었죠. 너무 기뻐서, 피자를 주문했어요. 지금도 상호를 기억해요. '피자 나라 치킨 공주.'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매년 급여가 올랐어요."
김동식은 인생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시기를 공장에서 일만 하며 보냈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지퍼를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하루에 약 5만 개를 생산해요. 그런데, 보람이 전혀 없었어요. 칸막이 안에 갇혀서, 시멘트 벽만 바라보며 용광로 앞에서 단순 노동하는 시간이 정말 지루했죠. 그래서, 내내 공상했어요. 복권에 당첨되면 뭘 할까? 연예인이 되면 어떨까? 등의 망상을 펼쳤죠. 어떻게 연예인이 되는지 그런 과정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길거리 캐스팅이라든가. 또, 초능력 2개 중에 1개만 선택하라고 하면 뭘 고를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여러분들은 순간 이동하는 능력과 투명 인간으로 변신하는 능력 중 어느 걸 고르시겠어요?"
김동식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재밌네. 난 저런 생각 전혀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차피 비현실적이잖아. 어쩌면, 시간 낭비라고도 느껴지고.'
"집과 회사만 오가니, 시간을 때울 만한 것들이 필요했어요. 독서는 안 했지만,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오락거리를 즐겼죠. 작품에서 얻는 소재들은 아마 그때 길러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던 중, 누구나 소설을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을 발견했어요. 정말, 아무나 소설을 막 쓰더군요. 그 공간에서 댓글로 릴레이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김동식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30살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공장에서 보낸 20대가 훌쩍 흘렀고, 그는 우울했다.
"글쓰기로 우울증을 탈피했어요. 첫 소설은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작품인데, 처음으로 관심과 칭찬을 받았어요. 작품을 미리 완성해 놓고, 2부로 나눠서 1부만 게시판에 올렸어요. 그리고, 댓글을 달았죠. '다음 편이 궁금하신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또 올려 드릴게요.' 이렇게요. 1시간이 넘도록 새로 고침(F5)만 계속 눌렀어요. 첫 댓글은 1시간 20분 경이 지나자, 달렸어요. 뭐라고 달렸을까요? '재밌어요. 다음 화 올려주세요.'라고 달렸어요!"
그가 가슴 졸이며 첫 댓글을 기다리는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또, 첫 댓글이 달렸을 때 얼마나 감격했을지 생각하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았죠. 특히 맞춤법을 많이 틀렸죠. 독자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어요. 기분 상해하지 않고, 모두 수용했죠. 정말 몰랐던 부분이었거든요. 역활, 몇일, 두더쥐 등 오타라고 하기엔 너무 자주 언급한 단어들이었어요. 현재까지 단편 소설 1,000편 이상, 개인 도서 24권 이상 보유하고 있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이 정도면 어쩌다 반짝 뜬 풋내기 작가가 아니라, 원로 작가가 아닐까! 그는 소설을 만들 때 유의할 점에 대해 설명했다.
"규칙과 조건, 제한이 있어야 소설이 됩니다. 동화로 예를 들자면, 선녀와 나무꾼과 신데렐라 이야기에도 자녀 인원수와 자정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죠."
김동식 작가가 출간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김민섭 작가의 도움이 컸다.
"김민섭 작가님은 작년에 건물주가 되셨죠."
김민섭의 작품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대리사회> 등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였기에, 김민섭이 마치 아는 사람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와, 지방대 시간 강사였고, 패스트푸드점 상하차 파트타이머였으며, 대리운전기사였던 사람이 마침내 건물주가 됐다고? 대박이다! 그간 피 튀기며 진짜 열심히 살았나 봐. 존경스럽다!'
김동식의 소설 20편은 김민섭에 의해 출판사에 보내졌다. 요다 출판사의 대표는 당장 출간하자고 김동식에게 연락했고, 2017년 9월에 책 3권을 계약했다. 김동식은 과거를 회상했다.
"정말 작은 출판사였어요. 이 강당의 6분의 1 크기였죠. 계약할 때 출판사를 방문했는데, 안 팔린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저 때문에 출판사가 망할까 봐 조마조마했죠. 묻는 말에만 대답했어요. 일부러 시선을 내리깔고, 대화조차 피했죠."
약 3개월 후인 2017년 12월, 김동식의 첫 도서 3권이 한꺼번에 6천 권 출간됐다. 그는 출판사 송년회에 초대받았으나, 가시방석이었다. 출간 3일 차가 지났으나, 그의 책은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김동식은 용기를 내 온라인 독자들에게 출간 소식을 알렸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드디어 저의 첫 소설이 출간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앞다투어 책이 팔리기 시작했고, 독자들은 구매 영수증을 댓글로 공유하며 신간 구매 운동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그들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결국, 출간 4일 만에 6천 권이 완판 되는 신화를 이뤘다.
"대표작 <회색 인간>은 현재 142쇄입니다."
실로 놀라운 기록이었다. 142쇄나 찍은 베스트셀러를 여태 읽지 못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논문 쓰느라 관련 서적 읽기도 빠듯하지만, 조만간 반드시 그의 대표작을 읽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저의 성공 비결이자 원동력은 바로 독자들입니다. 지금은 연결과 소통의 시대예요. 제가 운이 좋았죠! 소통을 잘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 독자들의 응원 속에서 작가가 될 수 있었어요. 서사의 이득을 톡톡히 봤죠. 공장 노동자가 갑자기 작가가 됐다니까, 인터뷰와 온갖 솔깃한 제안들이 쏟아졌어요. 영화, 웹툰 등 수도 없이 많아요. 소설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신인 작가들 소설을 읽는데, 글 잘 쓰시는 분들 정말 많아요! 그런데, 심사위원의 취향이란 게 아무래도 무시 못하죠."
도서관에서 정한 강연 주제가 '작가가 되는 이야기'이기에, 김동식은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전달하고자 애썼다.
"올해에는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운동복도 샀는데, 일주일 만에 포기했어요. 다이어트 달성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바로 즉각적인 보상이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반면, 저는 글쓰기로 즉각적인 보상을 받았어요. 그건 바로 독자들의 응원과 칭찬 댓글이었어요. '작가님, 천재 같아요!',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네요.' 이런 댓글을 보면, 중독되죠. 많은 분들이 소설을 쓰길 원하시는데, '꾸준히'가 어렵다고들 하세요. 그런데, 좋아하는 일은 '꾸준히'가 당연해요. 이럴 땐, 좋은 방법이 있어요. 작품을 하나 완성하면 스스로 보상을 주는 거죠. 예를 들어, 사고 싶은 물건을 산다든지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든지요."
한편, 모두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승승장구하는 김동식이지만, 비평가도 존재했다.
"악플도 물론 있어요.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보면 상처받아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는 거니까, 빨리 휘발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인생을 통틀어 생각하면, 남을 험담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편이라서, 거절을 잘 못해요. 늘 예스맨이었죠. 그것 역시 시간 낭비였어요. 마지막으로, 반박하는 시간 역시 정말 아까워요."
악플러를 마주할 때면 그는 '사이코 패스일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한 다큐멘터를 보고 위로받았다. 미국의 어느 교수가 사이코 패스형 뇌를 연구하던 과정에서, 자신이 바로 사이코 패스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알고 보니, 외가 유전자가 모두 사이코 패스였다. 또한, 외가 친척들 중 1명이 수감 중인 범죄자였다고 한다.
"사이코 패스의 비율은 0.7~1%로 10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늘 동일해요. 아마 100년 후에도 유지될 거예요. 사이코 패스형 뇌가 종(種)에 있으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하대요. 살다가 싫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1%의 사이코 패스가 아닐까 생각하세요."
사이코 패스냐는 말을 실제로 들은 적이 있기에, 다소 씁쓸했다.
'사이코 패스라는 말은 너무 심한 욕이야. 진짜 사이코 패스는 그런 말 들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테지만.'
"어떻게 글을 써야 재밌을지, 늘 고민합니다. 재밌는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예요."
대학원 석사 재학 중, 교수님이 수업 시간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난생처음 보는 낯선 작품이 곧 훌륭한 작품이야."
중간에 10분가량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독자들이 책을 들고 저자에게 다가갔다.
"오, 초기 작품이네요."
심각한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그쪽을 자세히 보진 않았다. 짧은 팬 사인회를 마치고, 김동식은 다시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저에겐 무례한 질문이란 결코 없습니다. 뭐든지 자유롭게 질문해 주세요!"
질문하려고 미리 준비해 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등이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다소 식상해서 망설였다. 김동식은 작가이므로,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게다가, 재밌는 작품을 쓴 소설가로 기억되길 당연히 바랄 것이다. 그래서, 사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작가님은 MBTI가 어떻게 되세요?"
"INTP요. INFP 나올 때도 있어요."
"오, INTP일까 예상했는데 맞았네요. 탐구하는 걸 즐기는 과학자형이시군요."
"수학 엄청 못했어요."
"며칠 전에, 작가님의 세바시 영상을 유튜브에서 봤어요."
"오, 그러셨군요."
"출간 후 첫 연애를 하셨는데, 헤어지셨다고요. 그렇다면, 마지막 연애는 언제이신가요?"
"마지막 연애는 4년 전이요. 2021년, 대구 거주자였어요. 강연 관계자의 누나였는데, 아무래도 장거리 연애라서 힘들었죠. 제가 이별을 먼저 고했는데, 다음날 바로 후회했어요.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상대 마음이 돌아섰더라고요. 2025년에는 작문하는 시간을 줄이고, 장가가는 기간으로 정했어요. 2024년 강연은 무려 410회 이상이었거든요. 작업하는 것보다 강연하러 다니는 게 사람 만날 기회는 더 많겠다 싶어서요."
김동식의 20대는 공장 노동자로서의 무의미한 시간이었지만, 공상으로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노년이 돼서 젊은 날을 회상한다면, 20대의 10년이 단 하루와 맞먹을 거라고 말했다. 김동식의 30대는 재능 있는 작가이자 만인의 사랑을 받는 강연자의 삶이었고, 올해 40세를 맞이했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40대 인생엔 또 어떤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찾아올지, 흥미롭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