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김지용의 강연
위자료를 입증하기 위해 정신과 진단서가 필요해서, 정신과에 방문한 적이 있다. 최초로 방문한 곳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원이었으나, 의사가 불친절했다. 의사는 젊었으나, 의욕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환자의 정신적 피해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의 소극적인 태도를 대하고, 적잖이 실망했다.
의사의 말대로 대학 병원을 방문했다. 예약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전문의가 부족하고 진료는 밀려서 한참 기다려야만 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의사들의 반응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일했다. 그들은 무성의했고, 나를 못 믿는 눈치였다. 상담 내용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길래, 의문이 들었다.
'환자의 말을 왜 못 믿는 것일까? 정신과에 온 사람의 말은 거짓이나 공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렇듯,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몇 주 전, 댄스 수업을 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강연 홍보 포스터를 발견했다. 강연 주제는 '아직까지 정신과 진료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였다.
'정신과 가도, 별 거 없던데. 의사들도 별로고, 진단서 발급도 쉽게 안 해주고.'
정신과 전문의 김지용은 <어쩌다, 정신과 의사>라는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했다. 책을 읽진 않았지만, 정신과 전문의의 삶은 어떨까 궁금했다. 사전에 강연 신청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안 했는데 그걸 당일에서야 알았다.
담당자에게 전화로 강연 장소에 대해 질문했는데, 직원이 안내했다.
"접수하셨어요? 접수는 마감됐고, 약 100명이 접수했어요."
"접수 안 했는데요. 그럼, 저는 강연 못 듣나요?"
"아뇨, 100명이 접수했어도 그분들이 다 오시진 않거든요. 수강 가능하세요."
"아,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빈자리가 없으면, 서서라도 들을게요."
"(웃음) 아니에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강연 장소는 타 구에 위치한 도서관이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갈 일이 없는 도서관에서 강연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서, 낯선 장소에 대한 기대를 품고 방문했다. 주차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빈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청아한 하늘 아래, 햇볕이 쨍했다.
도서관에는 평일인데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강연 시작 시간이 임박해서 촉박하게 목적지로 향하는데, 담당자가 서명하라고 안내했다. 문서에는 신청자들의 이름이 가득했고, 과연 약 100명 남짓한 인원들이었다.
"저는 강연 신청 안 했거든요."
"성함 직접 적어주시고, 서명하시면 돼요."
"아, 네."
자필로 이름을 적는데, 실제로 출석한 지원자들은 몇 없었다. 강연장에서도 눈으로 인원을 확인했는데, 정말 그랬다.
'아까 통화한 직원의 말이 바로 이거로군. 접수를 해놓고, 왜 다들 안 올까? 뭐, 각자 개인 사정이 있겠지.'
강연 시간이 되자, 김지용은 입을 열었다.
"다 오셨으면, 이제 강연 시작할게요. 인원이 많지는 않지만,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여긴 청중과 거리가 가까워서 좋네요. 마치 극장 같기도 하고요."
그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2011년부터 근무했고, 2017년부터 동료들과 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있다.
"전 국민 중 4명에 1명꼴로 정신과를 방문합니다. 10명 중 1명은 우울증과 치매를 겪습니다. 조울증 3%, 조현증 3%, 공황장애 3%, 알코올중독 10%입니다."
4명 중 1명꼴이면 꽤 높은 확률이 아닌가, 생각했다.
"남성보다 여성보다 우울증에 더 잘 걸려요. 그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이죠. 여성은 생리 전후, 출산 전후, 폐경기 등이 남성과 확연히 달라요."
그의 설명은 과연 일리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감정의 기복이 크다고 생각했다.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습니다. 정신과는 누구나 갈 수 있어요.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이재규 감독님과 박보영 배우님과 사진을 찍었어요. 선망하는 직업군 종사자들이 정신과를 찾습니다. 열심히 살다 경쟁에 치여서, 정신병을 얻는 거죠. 정신력과 정신병은 별개예요. 우울증은 뇌의 기능이 저하될 때 나타납니다."
김지용은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생물학적 요인, 사회적 요인, 심리적 요인 중 가장 바꾸기 어려운 건 무엇일까요?"
"사회적 요인이요."
"오, 정답이에요."
취업, 조직 문화 등 사회적 요인은 개인이 바꾸기 가장 어렵다고 한다.
"사회적 요인이 바뀌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바꿀 수 있는 것을 파악하는 사람이 더 빨리 개선됩니다."
그는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실제로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눈이 멀거나, 다리가 마비되는 경우와 기억 상실증 등에 언급했다.
"진짜 기억 상실 환자들은 몇 분 전에 나눈 대화를 실제로 기억하지 못해요. 반면, 가짜 환자는 기억력을 탓하죠. 이게 바로 보험 사기꾼을 감별해 내는 과정이에요."
20대 후반 남성과 20대 후반 여성의 뇌파를 비교하는 그래프가 화면에 보였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빨간색을 보니, 뭔진 몰라도 위험해 보였다.
"델타는 수면 중 나오는 뇌파예요. 귀가 유독 빨간데, 이건 해마예요. 의욕이 없고, 우울하죠.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 분비돼요."
"정신과 의사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담당 환자가 자살했을 때예요. 2년에 1명 꼴로 있어요. 심리적으로 타격이 크죠.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환자가 하루에 약 20명 이상이고, 저는 그 말을 매일 들어요. 유서나 입원을 권유하면, 다수가 거부해요. 경찰에 신고해서 소동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어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자살해도 충격적인데, 실제로 아는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기분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는 그걸 매년 겪어야 하다니 안타까웠다.
"여기, 예술에 대해 잘 아시는 분 계신가요?"
화면 속에는 깨진 접시가 하나 보였는데, 금테로 이어 붙인 모습이었다. 바로 킨츠키 예술이라고 했다. 미술 전공자인데도 불구하고,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킨츠기(金継ぎ) 또는 킨츠쿠로이(金繕い)는 일본에서 유래한 도자기 수리 기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이어 붙이고 깨진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해 아름답게 장식 및 보수, 수리하는 공예이다. 이것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2~3시간은 기본이며 10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킨츠키는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을 반영한다.
킨츠기 자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 제조된 도자기에도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어떤 물건을 오래 사용하여 못 쓰게 될지라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모되거나 부서지는 것도 하나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계속 사용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차이점을 보인다(https://namu.wiki/w/%ED%82%A8%EC%B8%A0%EA%B8%B0).
"불행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WHY ME?'라고 외치죠. 그러자, 하늘에서 신이 'WHY NOT?'이라고 답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최연소 상임 의원이었어요. 그런데, 성탄절에 부인과 아이가 사고를 당했죠. 부인은 죽고, 아이는 다쳤어요. 이렇듯, 사람의 삶에는 누구나 좌절이 옵니다."
"사람과 개가 산책하면, 개는 현재에 집중하며 즐겁지만, 사람은 생각이 많기 때문에 그러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 있어야 합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돼요. 현재에 닻을 내리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예시로는 운동, 명상 등이 있어요. 이런 행위를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이 정신이 건강해요."
과거를 자꾸 떠올리지 말라는 뜻으로 그는 본인의 일화를 소개했다. 김지용은 2013년 결혼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전공의의 월급은 당시 300만 원이었고, 어렵게 2억 5천 전셋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는 형이 신혼집은 사서 시작하는 게 진리라고 조언했다. 집을 매매하려면, 당시 4억 5천만 원이 필요했다. 양가 부모들의 도움을 받고, 마이터스 통장까지 만들어 자금을 끌어 모았으나 그는 결국 집을 구매하지 못했다.
"내 손을 떠난 것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과거는 절대 바꿀 수 없고, 생각할수록 괴로울 뿐이죠."
화면에는 '행복은 무엇이 결정하는가'라는 문장이 나타났다. 김지용은 또 질문했다.
"행복의 요인은 뭘까요?"
"마음?"
"틀렸습니다."
"시간?"
"아닙니다."
청중들은 저마다 대답했지만,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여기가 도서관이고, 여러분들이 독서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그 대답은 안 나왔네요. 대부분 '돈'이라고 대답하시거든요."
씁쓸하게 웃었다. 더 이상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정답을 공개했다.
"행복의 요인은 50% 이상이 유전입니다. 결코 돈이 아니에요. 외향성이 큰 사람이 더 행복하거든요. 우울하고 불행하면, 사회적인 관계가 모두 끊겨요.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죠. 금방 녹아요.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집중해서, 좀 더 자주 먹으면 행복해질 겁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소소한 경험을 자주 하라는 그의 조언은 마음에 와닿았다.
"의외로, 복권 1층 당첨자들은 금방 불행해져요."
의아했다.
'돈이 많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자유로운데 왜 불행하지?'
그는 설명했다.
"20대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었어요. 처음엔 행복했대요.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다 누렸을 테니까요. 그런데, 매주 토요일마다 복권 당첨금을 확인하면서 불행해졌어요. 왜냐고요? 본인이 당첨된 금액보다 다른 사람이 받는 당첨금이 더 커서요."
김지용도 한때 우울증 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정신과 약은 뇌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전공의 시절에, 잠도 부족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우울했어요. 약을 복용했는데, 의국에 거주하던 동료가 알아보더군요. '너, 요즘 약 먹지?' 하고요. 약은 정말 효과적이었어요. 시간이 지난 후 약을 끊었는데, 그때도 역시 동료가 알아보더군요. '너, 요즘 약 끊었지?' 하고요."
김지용은 주 2회 꾸준히 김포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만큼은 다른 일들을 잊고, 몰입할 수 있거든요. 아무리 시간이 없고, 바빠도 꼭 합니다."
질문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청중들의 질문을 듣고 있자니, 다들 정신과를 가보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정신과에 간다고 해서 모두가 정신병자인 것은 아닌데, 아직까지 그런 고정관념이 만연한 모양이다.
김지용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강연을 마칠 시간이 임박한 모양이었다. 마음이 다급해져서,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본 내용인데, 환자에게 살해당한 정신과 의사가 있더라고요. 정신과 의사는 굉장히 위험한 직업 같아요. 만약, 정신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정형외과 의사가 됐을 거예요. 돈을 잘 벌거든요. 하지만, 무대 앞 노동이에요. 만약 정형외과를 선택했다면,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일 외에 다른 뭔가, 무대 뒤 노동을 더 해야만 했을 거예요. 전공의 시절에 흉부외과도 경험했지만, 한 달 만에 그만뒀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일의 만족을 느끼고 싶어서, 정신과를 선택했어요. 정신과는 일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이후 두 명이 더 질문했다.
"외향이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그럼 내향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내향은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모임을 나가려고 노력해야 해요. 대신, 빨리 탈출해야 해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에너지가 빨리 소진되기 때문이죠."
이제껏 만난 내향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기가 빨린다고 늘 표현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했다.
그는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저서와 김주한 교수의 <마음 소통> 영상을 추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단 위의 김지용에게 다가가 천혜향을 하나 건네며, 질문했다.
"이거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드세요. 혹시, 외향이신가요?"
"고맙습니다. MBTI 검사 결과는 내향이던데요."
그의 유창한 언변을 떠올리며, 혹시 외향일까 예상했으니 의외였다.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었으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연이었다. 조만간 그의 저서도 읽어볼 계획이다. 지나간 과거는 흘려보내고, 현재에 집중하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살자(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