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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25. 2024

여행은 흐른다

Madrid

이번 스페인 여행은 마드리드 인, 마드리드 아웃 일정이다. 놀랍게도 마드리드 공항에 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2월 스페인에 처음 왔던 때에는 포르투갈에서 세비야행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에 들어왔었다. 이후로는 스페인에 들어올 때마다 발렌시아 공항을 이용했다. 이번엔 마드리드에서 입출국하게 된 건 단지 그 편이 제일 경제적이기 때문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우연한 선택 덕분에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을 다비드(David)와 함께 할 수 있었다. 다비드와의 만남으로 시작해 다비드와의 만남으로 끝난 여행의 안정적인 구성. 그 의도치 않은 수미쌍관이 이 여행을 보다 단단히 매듭지은 느낌이다.


다비드랑은 벌써 17년지기다. 우리의 첫 만남은 2007년 여름, 몽골 산골짜기의 허름한 오두막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만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비드도 나랑 비슷한 나이였을 터. (이제 와서 몇 살이냐고 물어보기도 애매하니까, 서로에 대해 모르던 것은 모르는 채로 남겨두기로 한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고아원 어린이들이 여름 방학을 맞아 산골 마을에 들어와 지내는 동안, 나랑 다비드를 비롯한 다국적 봉사자들은 그곳에서 아이들과 2주를 보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를 기획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짜거나, 뒷산에 올라가 장작을 패 오는 게 우리의 주된 임무였다. 봉사를 마치고 나서도 봉사자들은 2주를 더 함께 보냈다. 몽골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같이 여행하면서였다. 그렇게 쌓은 도합 4주의 시간. 그 4주가 우리 17년 우정의 뿌리가 됐다. 그 사이에 다비드가 한국에 여행 온 적이 한 번 있었다. 내가 스페인에 처음 갔을 때 그를 마드리드에서 만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두 번 재회했던 게 전부인데도 우리 우정은 기어코 이어져 왔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된 일은 아니었을 거다.


대륙을 뛰어넘은 우정을 긴 시간 이어왔단 점 말고도 우리 관계에 특이점이 더 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중간에 한 번 바뀌었다는 점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어로 대화했다. 그때 나는 이미 대학에서 <스페인어 입문 1> 수업을 듣고 난 시점이었지만, 으레 그렇듯 입문자의 회화 실력이란 형편없었다. 우리가 스페인어로 소통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9년 뒤, 서울 인사동에서 다시 만난 날부터였다. 그때 나는 <스페인어 입문 2>와 <스페인어 문학의 이해>까지 수강을 마쳐둔 참이었고, 스페인어권 나라인 에콰도르에서 몇 달 살다 오기도 한 터였다. 이젠 완벽하진 않은 스페인어나마 어쭙잖게 구사할 수가 있었다. 다비드는 자기 모국어로 옹알거리는 나를 신기해했다.


다비드랑 처음 스페인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던 그날을 꼭 상기시키는 표현이 있다. '메 엔깐따(Me encanta)'. '나는 그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메 구스따(Me gusta)', 즉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는 표현보다 강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인사동 골목 어귀의 삼계탕 집에서 9년 만에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인 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메 엔깐따 무초(Me encanta mucho)"라는 표현을 쓰자 다비드가 말했다. 그건 지나치게 반복적인 표현이야. '무초(mucho)'는 '많이, 매우, 무척'이라는 뜻을 가진 부사어다. 즉, 나는 '나는 그것을 무척 무척 좋아해'라고 동어 반복을 한 셈이었다. 네가 무슨 의도로 그런 문장을 구사한진 알겠는데 실제로 스페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보통 '메 엔깐따' 아니면 '메 구스따 무초'라고 하지. 다비드가 웃으며 덧붙였다.


'메 엔깐따 무초'라는 독창적이고도 어색한 표현은 사실 그야말로 나다운 발상이었다. "너는 한국어로도 "너무 좋아!"라는 말을 많이 하더니만, 영어로 말할 때도 꼭 "I like it so much!"라고 하는구나." 오래된 친구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다. 그렇다. 나는 '너무'를 '너무' 많이 쓴다. 아무래도 내 천성이 세련되지 못하는가 보다. 훌륭한 문장가일수록 부사를 지양한다는데 나는 도무지 부사를 떨쳐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차마 절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많은 사람인 것이다.


그래도 스페인어를 할 때만은 뜨거운 화자 대신 세련된 화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그 다짐을 8년째 상기 중이다. 아직까지도 "메 엔깐따"라는 표현을 쓸 때마다 그 뒤에 "무초"를 덧붙이고 싶은 충동이 내 안에 훅 인다. 그러면 나는 그 충동을 의식적으로 억누른다. 그리고 다비드를 떠올린다. 뿌듯해한다.


이번에 스페인에 오고서도 제일 먼저 만난 친구가 다비드였다. 생경한 공항에서 생경한 버스를 타고 낯익은 마드리드 시내에 들어왔다. 예약해 두었던 숙소 앞에 이내 다비드가 나타났다. 어쩜 우린 만날 때마다 한 십 년은 늙어 있고야 마는구나. 다비드의 눈가에 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다비드도 내 눈가를 보고 세월을 실감하는 표정이었다.


다비드를 만나니까 내 말보가 터졌다. 독방에라도 갇혀 있다 나온 사람처럼. 다비드가 내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리란 믿음, 혹은 다비드가 하는 평가라면 내가 그것을 괘념치 않으리란 믿음이 내 안에 있어서였을 테다. 혹은 다비드의 자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동도 없는 눈길로 내 이야기를 지긋이 경청하는 다비드. 그 앞에서 나는 늘 물 만난 물고기가 되고 마는 거다. 어디 한 번 이 기회에 실컷 말해보자, 더 말해보자, 하고.


진, 이번 여행에 네가 바라는 건 뭐야? 듣기만 하던 다비드가 입을 열었다.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가고 싶어. 내가 대답했다.


정말이었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의 힌트를 찾고자 스페인에 온 거였다. 지금이야 당연한 듯 서울에 둥지를 틀고 서울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애당초 당연한 삶이란 없는 것 아닐까. 관성에 힘입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상에 나는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 지금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무수히 떠올려 보고 고민해 본 뒤에 내린 결정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 설령 그 결론과 기존의 일상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을지라도. 성실한 고민 끝에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으로서의 삶이란 사실, 그 확신만이 중요했다.


마침 잘 됐다. 나를 절대적으로 서울에 붙잡아 두고야 마는 닻이 없다. 만 서른여섯. 나는 혼자다. 혼자라서 자유롭다. 어떤 청사진이든 그려볼 수 있다. 가장 많은, 가장 넓은, 가장 극단적인 청사진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그 청사진의 배경이 스페인이 못 되리란 법도 없지 않을까. 2018년 스페인에서 한 해를 보내며 내 안에 남은 실감이 있었다. 내가 키워온 언어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라면 이 나라에서 맞닥뜨릴 어떤 문제라도 차근히 해결해 나갈 수 있겠단 실감. 이 나라에서라면 혼자서도 정착을 도모해 볼 수 있겠단 실감. 이 막연한 실감을 구체적인 계획으로 발전시켜 줄 열쇠를 여행 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여행의 끝에서 실타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실마리는 쥐고 귀국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렇게 세 달을 여행하고 마침내 귀국을 하루 남겨두게 된 5월 어느 날. 그날도 마드리드에서 다비드를 만났다. 다비드 집에서 가까운 또르띠야 식당에서였다. 또르띠야(tortilla)란 감자, 양파 등이 들어간 스페인 식 오믈렛 요리다. 일반적인 오믈렛보다 두껍고, 상온에서 내놓은 요리를 바게트와 곁들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 달 전 여행 첫날에도 우리는 여기에 왔었다. 내가 이 식당의 또르띠야를 무척 좋아했단 걸 기억한 다비드가("메 엔깐따(Me encanta)!" 하고 내가 외쳤던가 보다.) 나를 이곳에 다시 데려와준 거였다. 어쩐지 여행의 시작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하는 공간. 그 속에서 다비드가 내게 홀연히 던져온 질문 역시 여행의 시작을 곱씹게 하는 것이었다. 진, 이번 여행에 대한 너의 기대가 충족되었어?


가볍지 않은 질문이었다. 만족스러운 삼십 대였어?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어? 하는 질문보다야 무겁지 않겠지만, 짧지 않은 이번 여행 기간은 내 인생에서 '유년 시절', '이십 대', 혹은 '삼십 대'처럼 그만의 독립적인 구획을 갖는 기간으로 기억될 만한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더구나 다비드의 질문은 그 기간이 내게 충분한 보상을 주었느냐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 기간을 나 스스로 의미에 걸맞게 보냈느냐의 의미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여행의 열매는 여행이 거저 주는 게 아니니까. 내가 능동적으로 수확해 내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아본다. 삼십 대 중반, 색다른 청사진을 그려 보게 되기를 꿈꾸며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나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켰는가.


음,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내가 대답했다.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못 만났던 건 아니다. 테네리페 섬에서 레베카와 커피를 마셨던 날엔 스페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사는 꿈을 그려 보았다. 여행하다 만난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K-코스메틱', 'K-뷰티'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듣다 보면, 의사 자격증을 활용해 스페인에서 K-뷰티 사업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공상의 나래도 펄럭였다. 하지만 잡다한 생각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안정적인 자산을 형성하기 위해 불꽃처럼 움직여야 할 30대에, 고국에서의 수입을 장기간 포기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나를 훼방했다. 나한텐 사업 수완 같은 게 없는데, 하는 고민은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었다. 스페인에 건너가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일궈나갈 수고를 감내할 만큼 스페인에서 살고 싶은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마저도 이때다 싶었는지 고개를 들었으니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정답을 만난 건 아니니 다비드가 던져온 질문에 주저 없이 "예쓰"라곤 대답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리고 자연히, 내 대답이 "노"는 아니었다. 어차피 실제적이고도 세밀한 계획이 어느 날 내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날 거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얻어가는 작고 몰랑몰랑한 힌트들이 훗날 내가 세워 나갈 세계에서 귀한 주춧돌이 되어줄지 모른다. 상상조차 못 해본 어떤 아이디어인가가 귀국 후에 이 여행의 기억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생겨날지도 모를 일. 혹은 지금은 비현실적이어 보이는 아이디어들을 현실화할 방안이 귀국 후의 일상 속에서 새록새록 떠오를지도 모를 일. 결국은 열린 결말이다. 내 여행도, 내 삶도. 다비드는 오늘도 미동 없는 눈길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만 다비드와 함께 한 건 아니었다. 여행의 중간중간 마드리드에 들렀을 때에도 다비드를 만났다. 어느 날엔가 다비드는 '내가 무척 좋아할 만한 장소'가 떠올랐다며("운 루가르 께 떼 '엔깐따'리아(Un lugar que te encantaria)!") 호기롭게 날 이끌고 시내로 향하기도 했다. 도착한 곳은 중고 레코드샵.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가슴이 콩닥거렸다. 내가 스페인에서 레코드샵에 다 와보다니! 아빠가 쓰시던 오래된 전축을 물려받고서 부랴부랴 엘피(LP)를 사모으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런데 샵에 들어가려고 보니 바로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가게가 눈에 익었다. '발로르(Valor).' 스페인의 유명 초콜릿 브랜드 가게였다. 6년 전 겨울, 다비드가 나를 데리고 와서 핫초코와 추로스를 먹어보게 해 주었던 바로 그 가게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전형적인 관광객 모드였다. 스페인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기만 한. 다비드가 날 발로르에 데려왔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추로스를 핫초코에 찍어먹는 장면은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면서 모두가 한 번쯤은 그려 보았을 그림일 테니까.


"6년 전만 해도 엘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다비드에게 말했다. "지금은 도리어 핫초코랑 추로스를 먹겠답시고 발로르에 들어가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네." 초콜릿 가게는 스페인에 갓 발을 들인 풋내기 관광객이나 들어가는 곳 아니겠냐는 듯이 거들먹거리며 내가 덧붙였다.


"발로르가 진의 과거고, 레코드샵이 진의 현재라면, 무엇이 진의 미래일까?" 다비드가 맞받았다.


몽골에서 처음 만나 한국에서, 그리고 스페인에서 다시 만난 우리. 영어로 대화하다 스페인어로 대화하게 된 우리. 방문객으로서 스페인에 왔다가 스페인에 눌러앉을 궁리를 하고 있는 나. 엘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가 방문하는 도시들에서마다 레코드샵을 찾아다니게 된 나.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고도 아직도 여행에 질리지 않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여행이란 행위에는 본디 질릴 수가 없다. 여행이 매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서다. 보라. 삶이 흐르지 않던가. 삶이 흐르는 한, 여행의 초점과 틀도 계속 변해 가지 않던가. 다비드와 나 모두, 흐름 위에 서 있다. 매일이 다르다.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다시 만난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흐름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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