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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30. 2024

모방한 사랑

새벽 여섯 시 반. 현관문이 열린다. 강아지가 집안으로 달려 들어온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모른 체하기 위해서다. 강아지가 발바닥에 묻혀 왔을 흙먼지와 세균을. 현관 앞에 일부러 놓아두었던 애견용 물티슈가 무색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삼십 분 뒤면 이 집을 영영 떠날 강아지를 붙잡고 발 닦으라 마라 종용하기도 이제 거추장스럽다. 다행히 강아지는 순둥이다. 짖기는커녕 물건 하나 어지르는 법이 없다. 또랑또랑 빛나는 두 눈망울로는 영원한 순정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 네가 행복했으면 그걸로 됐다. 수고는 내가 하마. 조금 이따 퇴근하고 돌아와서 온 집안을 박박 걸레질해야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7킬로그램을 갓 넘긴 하얀색 테리어 믹스 견. 그의 이름은 '스키퍼(Skipper)'. 하와이의 보호소에서 불리던 이름은 '스킵'이었는데, 아다(Ada)는 그 이름이 스키퍼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단다. 아다네 집에 입양 오고서부터 '스킵'은 '스키퍼'가 됐다. "한국에서는 강아지한테 음식 이름을 붙여주면 강아지가 장수한다는 믿음이 있어." 내가 말했다. "그래? 우리 엄마는 스키퍼를 '아레끼뻬'라는 애칭으로 불러. 우리 스키퍼 오래 살겠네!" 아다가 말했다. 아레끼뻬(arequipe)란 남미에서 먹는 캐러멜 잼을 일컫는 말이다.


스키퍼는 특별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안에 들여본 강아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처음엔 걱정이 산더미였다. 스키퍼가 가구를 물어뜯진 않을까. 카펫에 똥오줌을 지리진 않을까. 밖에서 흙먼지를 묻혀오고 온 집안에 털을 날려서 우리 집을 진정한 개판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애당초 스키퍼를 안 들이기로 했으면 됐을 문제. 그런데 내가 그러지를 못했다. 아다가 우리 집에서 자도 되겠냐고 물어오길래 흔쾌히 예스를 했다가, 스키퍼랑 같이 가도 되겠냐는 물음에까지 연이어 예스를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그때 바로 노를 했어야 했다. 나는 제때 진실한 대답을 하지 않은 대가로 끝없는 걱정의 굴레에 갇혀 버렸다.


태산 같은 걱정을 품고도 굳이 스키퍼를 맞은 건 아다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후안(Juan)을 위해서.


아다와 후안은 부부다. 아다는 에콰도르계 미국인, 후안은 콜롬비아계 미국인이다. 그들은 곧 영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삼십 분 뒤에 우리 집에 오기로 한 택시를 타고 인천 공항에 가서. 지난밤은 아다와 후안이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그들은 2년 여 한국살이의 종지부를 우리 집에서 찍었다.


어제오늘 호들갑을 떤 건 나뿐이었다. 후안은 몸집만 한 이삿짐들을 이끌고 우리 집까지 오느라 지쳐 있었다. 아다는 화물칸에서 쓸쓸히 비행할 스키퍼를 걱정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랍시고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 같은 건 부부 중 누구에게도 없어 보였다. 이 구역의 파워 에프(F), 내가 대신 그들의 마지막을 곱씹었다. 그들이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가 만족스럽고 평안한 시간이 되길. 나의 환대로써 그들이 한국을 조금은 더 아름답게 기억하게 되길. 우리가 날 때부터 보고 자란 한국인의 정이란 본디 이런 감성이 아니던가.


긴 비행을 앞두고 새벽부터 분주한 아다네 세 가족. 오늘 같은 집안 풍경은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입 안의 팝핑캔디처럼 일상에서 톡톡 터질 때, 나는 내가 여행을 살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 든다.


우리 인연은 부산에서 시작됐다. 2023년, 겨울 추위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던 11월이었다. 나와 친구가 전포동 골목에서 한 카페를 발견했다. 레트로 감성을 뽐내는 외관이 눈길을 끄는 곳이었다. '트렌디'하고 '딥'하고 '그루비'한 음악이 안에서 멋들어지게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끌리듯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온 감각이 일제히 눈을 떴다. 우리의 감각을 간질인 건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스피커를 타고 카페에 울려 퍼지던 리드미컬한 음악. 턴테이블 위에서 춤추던 엘피의 모션. 매혹하듯 실내를 감돌던 커피 향기. 크고 작은 식물들이 뽐내던 녹음. 부산 시민들. 타지에서 온 여행객들. 그들이 주고받던 낮고 다정한 음성.


그중에서도 바(bar) 자리에 앉은 그룹에 특히 눈길이 갔다. 각각 중년, 청년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었다. 외모에서 강한 스페인어의 향기가 풍겼다. 분명 스페인 또는 중남미의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일 것 같았다. 우리는 또 한 번 끌리듯 그들 옆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가 우리 자리라는 건, 얘기하지 않아도 나와 친구에겐 자명했다. 한국에 살거나 한국에서 여행 중인 외국인들, 특히 스페인어를 쓰는 외국인들의 이야기에 내가 늘 호기심이 많단 걸 잘 아는 친구였다.


옆 자리에 앉고 보니 그들과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외국 감성'은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거였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 대화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어색하거나 음흉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연한 자세.


내 예상이 맞았다. 그들은 콜롬비아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는 콜롬비아계 미국인들. 플로리다에서 오래 살아 영어와 스페인어가 모두 편한 히스패닉이라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건 그들이 부자지간이란 사실이었다. 중년인 측이 아버지 까를로스(Carlos), 청년인 측이 아들 후안이었다. 까를로스는 아들 후안을 방문하러 한국에 갓 여행 온 참이었다. 그에 비하면 후안은 이미 반 한국인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따로국밥이란다. 그는 미국 해군으로서, 해군기지가 있는 부산에서 벌써 1년째 살고 있었다.


두 사람에겐 일행이 더 있었다. 일행은 후안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끼어드는 법 없이 우리 대화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작고 소중한 그 일행. 스키퍼였다. 부자가 그토록 젊고 힙한 카페에 들어와 있던 이유는 그곳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애견 동반을 허용한 카페이기 때문이었다. 스키퍼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후안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거다.


몇 주 뒤 우리는 서울에서 재회했다. 까를로스가 한국 여행을 마치고 출국하기 전, 아들네와 다 함께 서울에 올라온 것이었다. "서울 오면 연락해!" 하고 내가 건넸던 말을 인사치레로만 생각하지 않아 준 부자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그날 아다와 첫인사를 했다. 책과 바다와 여행을 좋아하는 아다. 나는 자연히 까를로스, 후안보다 아다와 더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아다와 나는 서울에서 만나기도, 부산에서 만나기도 했다. 후안을 끼고 만나기도, 후안을 빼고 만나기도 했다. 영어로 대화하기도, 스페인어로 대화하기도, 영어와 스페인어를 한 문장에 섞어서 대화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늘이 온 것이다. 아다와 후안이 한국살이를 접고 영국으로 터전을 옮기기 전, 서울 우리 집에 올라와 하룻밤 묵고 출국하게 된 오늘. 인연이란 참 신비롭다. 이 모든 상황이 작년 가을의 짧은 우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아다네 세 가족을 집에서 떠나보내고, 나는 스팀 청소기로 온 집안을 청소했다. 스키퍼가 우리 집에 온다기에 미리 주문해 두었던 청소기다. 침구도 전부 빨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집에 손님을 들인다는 건 생각보다 품이 드는 일이었다. 돈이 드는 일이기도 했다. 아다네가 다녀간 사이 적잖은 지출이 있었다. 잘 준비해서 맞이하고픈 마음, 잘 먹이고 보내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집을 한바탕 치우고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아다네를 맞았을까? 우정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한국인의 정 때문이었을까? 제법 힘이 들어갔던 나의 환대의 이유를 설명하기엔 무엇도 부족해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 끝에 어떤 얼굴들이 떠올랐다. 튀르키예 북부 도시 트라브존 시내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라마단 기간의 귀한 가족 식사 자리에 나랑 친구를 초대해 배불리 먹여 주셨던 현지인 아주머니. 남인도 휴양 도시 고아(Goa)에서 가졌던 짧은 만남을 기억하고는, 몇 년 뒤 나를 북인도 산간 도시 쉼라까지 초대해 식량과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던 쿵가네 가족. 에티오피아 하라르의 로컬 식당에 혼자 나타난 내게 기꺼이 합석을 제안하고, 며칠 동안 나를 지켜 주고 먹여 주었던 현지인 친구들. 스페인 북부 팜플로나의 소몰이 축제 현장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뒤로, 이제는 내가 스페인에 갈 때마다 나를 코르도바 본가로 초대해 가장 귀한 것들만 내어주는 토니네 가족. 그리고 올해 스페인에 갔을 때에도 나를 자신들의 집에 묵게 하면서, 귀하고 사적인 시간을 나와 공유해 준 사랑하는 스페인 친구들.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는 천사의 얼굴들이 하나둘 뇌리를 스쳤다. 그 얼굴들이 바로 환대의 이유였다. 나는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즉 내가 그동안 받은 순수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선의를 몸과 마음에 익히고 세상에 보답하고자 했다. 미약한 선행의 경험이나마 쌓고 또 쌓다 보면 종국엔 내 얼굴도 천사들을 닮아 있지 않을까.


아다네 가족과 작별하고 한 주 뒤, 나는 대만에 다녀왔다. 최근에 한 여행 유튜버가 대만을 가리켜 가장 친절한 나라라고 묘사했던 건 과장이 아니어 보였다. 내가 겪은 대만 역시 그러했다. 대만은 얼굴에는 미소를, 언어에는 친절을 품은 선량한 시민들이 모여 사는 섬나라였다.


그곳에서도 만났다. 우연히 내 삶에 들어와 특별한 친구가 되어준 천사들을. 


인인과 아롱을 만난 곳은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에 있는 레코드바였다. 좁은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랑 마주 앉아 있던 중년 부부. 눈치를 살피다 쭈뼛쭈뼛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글을 걸어왔다. 휴대폰 어플로 정갈하게 번역된 문장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작은 동네 가게에 외국인 여자 혼자 와있는 연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의 필담이 시작됐다. 입도 뻥끗 안 하고 몇 시간 수다를 떨었다. 귀로는 사장님이 선곡해 주신 80년대 대만 여가수 '양린'의 음악을 들었고, 눈으로는 중국어 번체자로부터 번역되어 온 다정한 문장들을 읽었다. 때는 음력 8월 중순. 한국에서는 추석, 대만에서는 중추절을 기념하는 시즌이었다. 인인과 아롱은 내게 대만식 월병을 건넸다. 중추절에 먹는 빵이란다. 야구공만 한 패스트리 안에 팥 앙금과 계란 노른자가 들어 있는, 말 그대로 둥근달을 똑 닮은 빵이었다.


사흘 뒤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인인과 아롱은 가오슝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 가오슝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내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그날 부부를 따라 가오슝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정오에 만나서 자정 녘에 헤어질 때까지 먹고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단 한 번도 지갑을 열 수 없었다. 내게 미술 특별 전시도 보여주고 현지식을 거듭 먹여 주고도 부부는 내가 결제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나더러 돈은 신경 쓰지 말란다. 오늘 하루 그저 행복만 하란다.


인인과 아롱의 조건 없는 성의에 감동하며 나는 다시금 '페이 잇 포워드'를 떠올렸다. 나 같은 범인은 차마 헤아릴 수도 없을 그 깊은 마음, 그 농익은 인격을 잊지 않고, 다음에 만나는 인연에게 나 또한 비슷하게라도 베풀려고 노력해야지. 


그런데 가만있자. 오늘만큼은 내가 받은 사랑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사랑은 앞으로 나 또한 타인에게 베풀라는 의미에서 선불로 받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아다네에게 베풀었던 사랑에 대한 신의 보상 같은 건 아닐까. 처음이었다. 부채 의식 그 이상의 관점에서 내가 받은 사랑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건. 내가 스스로 베풀어보기 전까진 가져볼 수 없던 관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줄 사랑으로서 미리 받는 사랑인지, 누군가에게 준 사랑의 대가로서 나중에 받는 사랑인지, 사실 그게 뭣이 중할까.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은 물음이 아닐까. 결국 사랑은 돌고 돌고 돌고 또 도는 것. 어떤 사랑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나는 기억하면 된다. 내가 받은 고귀한 사랑을.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베풀면 된다. 내가 받은 고귀한 사랑을 모방한 사랑을.


인인과 아롱이 계획한 당일치기 가오슝 코스에는 승선 일정도 포함돼 있었다. 가오슝과 가까운 작은 섬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 석양을 보는 일정이었다. 


섬에서 하선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등대로 걸어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다를 봤다. 하늘도 봤다. 지는 햇빛에 벌겋게 물들어 가던 하늘 위로 곧 달이 떴다. 보름달이었다. 엊그제 먹은 월병이 생각났다. 그 달콤하고도 짭짜름한 맛이 입안에 맴도는 듯했다.


때마침 아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어떤 대만 음식을 먹었냐고 물어왔다. 아다와 후안도 얼마 전에 대만에 다녀갔던지라 나의 대만 여행기가 사뭇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인인, 아롱과 먹은 음식 사진들을 아다에게 보내 주었다. 둥근 월병과 둥근달 사진도 보내 주었다. 사진을 확인한 아다가 빨간 하트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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