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소년 앤드류’와 ‘천재소년 두기’를 안다고 하면 너무 나이 들어 보일까. 심지어 나는 초등학생 시절 앤드류 역의 제리 오코넬에게 심각하게 빠져 지냈음을 고백한다. 잘생긴 외모와 초능력을 가진 그가 종횡무진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섹시한 어린이 같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나는 앤드류와 함께 성장하며 언젠가 멋진 어른이 되어 그와 만나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그때의 어린 나를 불쑥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1983년, 조용한 호킨스 마을에서 윌이라는 소년이 실종되며 시작된다. 윌과 늘 지하실에 모여 게임을 하는 절친 루카스와 더스틴, 마이크는 잃어버린 친구를 직접 찾아내기로 한다. 사실 그들은 학교에서 괴짜로 놀림 받는 4총사인데다 겁도 많아 그다지 미덥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마을의 비밀스런 연구소를 의심하는 경찰서장 호퍼나 윌의 엄마 조이스가 결정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거라 예측하고 이야기를 따라갔다. 과연 그 예측이 맞았을까?
여기서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198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이야기>가 그 시대를 완전히 재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야흐로 80년대는 영웅의 시대였다. 어김없이 모든 이야기에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고 그가 홀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내가 사랑한 앤드류를 비롯해 슈퍼맨, 소머즈, 육백만 달러의 사나이, 맥가이버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왠지 조금 서글퍼지기 때문에 그만해야겠다. 아마도 그때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기였기 때문에 탁월한 능력에 대한 선망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처럼 고전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물론 환타지 장르인 만큼 여기에도 초능력을 가진 소녀 ‘엘’ 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주인공들의 활약 또한 눈부시다. 나는 그들의 매력에 푹 빠져 단 삼 일만에 시즌3까지 정주행하고 말았다.
모든 시즌의 골격은 비슷하다. 괴물 데모고르곤이 호킨스 마을을 위협하고 주인공들이 이를 물리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악당은 결국 패배하고 승리는 선한 이들의 차지가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안심하고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기느냐이다. <기묘한 이야기>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괴짜 4총사는 물론이고 초능력이 있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던 엘이나 다혈질에 고집불통인 경찰서장 호퍼, 망가진 전화기를 새로 살 돈이 없어 월급을 가불하는 윌의 엄마 조이스, 똑똑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낸시, 우울한 조나단, 골빈 날라리 스티브 등. 모든 인물을 다 호명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는 테마가 있다. 바로 ‘성장’이다. 실제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성숙한 외모로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스토리 역시 이들이 성장하며 겪는 고민과 갈등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그러면 어른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아도 되는 걸까. 여기에 <기묘한 이야기>의 진정한 매력이 숨어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 이면의 뒤집힌 세계와 그곳에 존재하는 괴물을 직접 보지 않고 믿는 어른은 흔치 않다. 조금 더 잔인하게 말해보자면 보고도 가능한 한 여러 이유로 모른 척 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윌이 집안 어딘가에 살아있고 전구를 통해 자신과 소통한다는 조이스의 말을 사람들이 광기로 받아들이는 동안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엘의 말에 영민하게 반응하며 함께 친구를 찾아 나선다. 이들은 평소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 쓰던 무전기와 언젠가 과학 선생님에게 들은 평행우주론(물론 선생님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곡예사와 벼룩의 개념으로 풀어주긴 했지만), 게임에 등장하는 괴물과 세계관, 새총까지 활용하며 견고하고 좁은 어른들의 세계를 허문다. 과연 저런 것이 가능할까 의심하는 과정이 없기에 아이들은 빠르고 강력하다. 특히 시즌3에서 러시아 최고의 두뇌가 설계하고 최강의 군인들이 지키는 요새에 간단하게 들어가는 장면은 통쾌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허를 찌르는 단순 명료함과 유연함이 무모한 시도로 끝나지 않는 것은 한편으론 그들에게 기꺼이 동화되어 힘을 합치는 어른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야기 속에서 어른들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위계를 무너뜨린다. 어찌보면 이미 지나온 어린 시절로의 복귀같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기에 나는 이것 또한 성장이라 부르고 싶다. 엘을 자신의 딸로 삼은 후 여느 아버지처럼 사춘기가 된 딸과 다투던 호퍼가 남긴 편지의 내용은 그런 면에서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엘을 만나고 오랫동안 갇혀있던 동굴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던 호퍼는 엘이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변하고 움직이는 것이 삶의 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겁이 나서 막아보려 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말한다. ‘계속 자라다오, 내가 막지 못하게……. 하지만 제발, 괜찮다면 불쌍한 네 아빠를 생각해서 문은 10센티만 열어 놔라.’
내가 어린 시절 만났던 세상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별다를 건 없다. 한 사람의 영웅이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한해를 보내며 나는 누구 못지않게 두려우니까. <기묘한 이야기>는 아이들을 통해 낙천적인 위로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나이도 잊은 채 그들의 모험에 동참하게 되고 슈퍼소년 앤드류까지 떠올리게 됐는지 모르겠다. 시즌3에서 더스틴과 그의 여자 친구 수지가 ‘네버엔딩 스토리’를 함께 열창하는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자라서 아이가 된다. 기묘하게도 그렇게 우리 모두는 평생자라기를 반복하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그들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