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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Aug 05. 2022

고잉홈 프로젝트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지휘자 없이?


한참 전에 대관령 음악제에 대한 글을 쓰면서, 2018년 당시 음악제에서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결성되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외국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강주미, 손열음, 그리고 이들과 함께 연주를 하곤 하는 몇몇 외국인 연주자 등이 대관령에 모여 만든 임시 조직이었다. 강주미 씨가 악장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불행히도 그해의 메인이벤트였을 손열음 협연의 Rach2를 유브에서 사후에 볼 수밖에 없었고, 이후 간간히 대관령 음악제에 다니면서도 같은 개념의 오케스트라가 전면에 보이지 않아 아쉬워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롯데 콘서트홀 다녀오면서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올해 대관령 음악제의 여운이 식지 않은 상태에서 손열음 협연이 포함된 "더 고잉홈 위크"라는 게 잠실에서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다. "고잉홈"이라는 말이 혹시 대관령에 왔던 외국 주재 연주자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손열음 음악감독이 붙잡아 마지막 공연을 서울에서 한다는 의미일까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2018년도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고잉홈 프로젝트"라는 사단법인으로 이렇게 다시 결성된 것이라는데, 여기서 "고잉홈"은 2018년 당시 첫 공연의 제목이었던 "집으로"에서 나온 말이고, 그래서 원래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음악제를 기회로 일시적인 귀향을 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이제는 조금 더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했단다.


2018년 당시의 경험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을 아쉬워한 연주자들이 꽤 있었던 모양인지, 법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참여 음악가 리스트가 어마어마하다. 해외 오케스트라의 종신 단원, 수석, 그리고 부악장과 악장들로 가득 차 있어, 모 기자가 마블의 어벤저스를 연상시킨다고 쓴 것이 과장이 아니다. 2018년 당시에 뒤셀도르프의 종신 수석이었던 김두민 첼리스트가 이제는 서울대 교수로서 중심을 잡고, 손열음 씨가 힘을 보태었던 것 같다.




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악단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점 중 하나는, 이 악단에는 지휘자와 음악감독이라는 전통적이고 수직적인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일부는 올해 대관령에서 Festival String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때 역시 원래는 지휘자 없이 Svetlin Roussev가 악장으로서 이끄는 것이 계획이었다가, 그가 제 때 입국하지 못한 이유로 (아마도 판데믹과 관련되었으리라 추측되긴 하는데...) 지휘자 한분이 급히 섭외되었다고는 한다.


이번 잠실 공연이 이 악단의 데뷔 무대인 셈이었는데, 역시 지휘자를 세우지 않고 공연을 진행하였다. 사실 전반은 20여 명의 작은 현악 앙상블이 홀스트의 소품을 첫 작품으로 연주했고, 여기에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을 위해 손열음과 일부 목관과 금관이 합세하였으나 역시 그 규모는 충분히 작아 협연자와 악장의 리더십이 잘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놀라운 장면은 인터미션 이후였는데, 무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다. 줄잡아도 100명 가까이 되어 보이는 연주자들이  들어온 이 공연에서, 사실 좀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20세기 고전음악의 새로운 트렌드인 dissonance를 시작했다고 흔히 회자되는 이 작품을 지휘자 없이 연주한 셈이다. 이를 계획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대담함과 어쩌면 그 절실함이 이제와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오래전 혼자 즐겨 듣던 작품이지만, 실황은 처음이었다. 처음 가보는 홀이라 일단 간을 본다는 생각으로 저렴한 그러나 연주자들에서 가까운 자리를 찾다 보니, 합창석에서 멀지 않은, 악단의 우측방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이번 공연이 인상적이었던 데는 사실 공연장 역시 한몫을 한 것 같다. 깊은 우물의 바닥과 같은 무대가 있고 그 전후 좌우로 깎아질 듯 올라간 객석들은 마치 연주자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라고 만들어진 듯하다. 홀 자체의 면적도 예상보다 작았고, 특히 합창석과 좌우 측면의 객석들의 경우 1층 제일 뒷자리라도 무대와의 거리가 짧아서 악기와 연주자를 근접해 볼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이러다 보니 평소 잘 못 보던 관악기들과 타악기들의 연주를 직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더구나 이들 악기들이 이 작품에서처럼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일 역시 흔하지 않기도 하다.


지휘자가 없으니, 그리고 이렇게 각 악기들과 연주자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 보니, 각 파트의 연주자들이 테마를 이어받고, 악기들이 잠시 잠시 참견하는 것들을 온 신경을 곤두세워 찾아보게 되었다. 가끔은 악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주기는 했지만, 아마도 지시라기보다는 때가 되었다는 상호 이해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각 파트별 수석들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인데, 어쨌든 연주는 흠잡을 곳이 없었고 그 원초적이고 격동적인 파도에 흠뻑 젖어 200% 몰입했던, 귀한 경험이었다. 사실 연주장을 빠져나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흔한 선입견과는 다르게 이 작품이 혹시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것이 오히려 쉬운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었을 정도로 말이다.


악장 Roussev의 리드로 상당히 길게 지속된 커튼콜에서는 모든 연주자들에게 섹션별로 갈채가 쏟아졌고,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팀파니 연주자는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거의 손열음 급으로.... 그들끼리의 격려와 포옹으로 마감한 이 커튼콜 역시 나와 같은 일개 청중의 입장에서도 감동스러운 모습이었고,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서울시향을 이끌던 당시 정명훈 씨가 국내 관현악단들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했다는 금관 파트는 사실 외국의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측한다. 수십대의 악기 안에 묻히는 현들에 비하여, 작은 실수가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그 특성상, 그리고 연주자 배출이 현악기만큼 원활하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국내 군소 관현악단의 연주회를 가보면 현에 몰입된, 유려하지만 흔히 역동적이지는 않은 소리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손열음 음악감독이 2018년 당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대하여 가장 자신했던 것이 목관과 금관이었듯이, 이번 공연에서도 경험한 관악기들의 존재감은 이런 우려가 왜 있었느냐는 듯했고, 이는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모인 이 악단의 구조에 기인할 것이며, 특히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즐기고 추구하는 한국의 새로운 세대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요즘 와서 특히 느끼는 것은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이다. 가장 가깝게는 10년 정도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수준과 종류의 식당들이 골목골목에 보이기 시작한 데에서도 엿보이듯이 말이다. 이런 곳을 가보면 흔히, 어디선가 제대로 요리를 배운 30대 셰프가 혼자 창업을 하고, 온전히 음식으로 승부하고, SNS를 통해 알려지다 보면, 옛 상식으로는 비싼 밥 먹으러 찾아갈만한 곳에 위치하지 않음에도 젊은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물론 안전한 직업을 더 선호하는 어쩌면 당연한 트렌드가 강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평균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회가 역동적이라거나 하는 말은 실은 그 평균치를 벗어나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의하여 정해지는 게 아닐까 한다. 특히 한국 예술계에서 이런 모습들이 두드러진다고 느끼는데,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들은 최소한 반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세대이고 그래서 이전 세대가 흔히 가지고 있었을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제약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국내의 주류 사회가 이런 특별한 그들을 얼마나 잘 포용하고 충분히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한국 부모들의 남다른 집착과 지원이 그 토양의 일부이긴 하고, 그리고 한예종이나 금호문화재단과 같이 조직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 곳들이 있다. 그러나, 이 천재들이 어른이 되어 홀로 서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게 되어가는 데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사회적인 구조가 필요할 터인데, 이에 충분한 인프라가 국내에는 있을까 하는 우려가 간혹 느껴진다. 어쩌면, 이 "고잉홈 프로젝트"의 결성도 이런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현재 이들과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는 나는 한없이 즐겁다. 다음 시즌에는 아예 전 시리즈를 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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